5월 6일 여의도에 1만여 명, 청계천에 3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조중동의 선전선동과 경찰의 불법집회 운운 및 시위자 단속 등 거짓선전과 사기협박에도 불구하고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왔습니다.

여전히 그리고 당당하게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의 '아름다운 참여'와 '거침없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야비한 어른들과 간사한 조중동의 위협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촛불문화제를 축제로 승화시킨 주역이었습니다. 나약한 어른들의 자기보신을 한껏 비웃어주는 주체였습니다.

▲ 6일 저녁 7시부터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주최 인터넷모임 '미친소닷넷')에 3천여명이 참석했다. ⓒ윤희상
아십니까? 중고등학생들의 여의도와 청계천 문화제 참여를 원천봉쇄하는 작전이 걸렸다는 것을. 비겁한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촛불문화제 참여를 가로막기 위해서 두 가지 작전을 걸었는데, 그것이 하도 어이없는 작전이고, 아스라이 스러져가던 작전입니다. 독재정권의 망령이 여의도와 청계천 하늘을 배회하며 오늘 이 시대를 반동의 시대로 전락시키는 작전….

하나는 여의도와 청계천에 수백명의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파견되어 감시의 눈초리를 희번떡거리는 작전이었습니다.

제 나이 올 해로 43세.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 던 70년 말과 80년 대 초. 저와 제 주변의 친구들이 유기정학을 맞으면, 1주일 동안 교실에 들어가지 못했지요. 1주일 짜리 유기정학. 제 기억으로 거의 대부분의 유기정학은 '극장'에서 선생님들께 걸린 친구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19'를 보겠다고 들어갔다 나올 때 걸린 경우입니다.

또 어처구니 없는 징계도 적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극장 근처를 지나가다가 선생님 손에 걸려 징계당하는 경우도 허다했지요. 극장에 들어가려고 근처를 배회하던 친구들은 그나마 덜 억울하겠지만, 다른 약속이 있어 지나가다가 선생님께 걸려 징계를 받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만나도 그 때 그 선생님을 욕합니다.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이름까지 거명하며 시쳇말로 '씹고 또 씹는 추억'을 새기고 또 되새기지요.

아마도 어제(6일) 청계천이나 여의도에서 선생님들의 손에 '걸린' 중고등학생들도 학교에 가서 징계를 당하겠지요.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시절에나 있었던 '교외활동 금지조치'를 어긴 우리 청소년들이 30년 전에나 있을법한, 그 고통을 21세기 오늘에도 당하겠지요.

▲ 6일 저녁 7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주최 인터넷모임 '미친소닷넷')에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3천여명의 시민이 참석해 "우리는 미친 소 먹기 싫다"고 외쳤다. ⓒ윤희상
민주주의? 막연히 부르짓는 추상적인 필요성이 아니라, 비겁하고 야비한 어른들에 의해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반민주적 반인권적 반교육적 작태를 어제(6일) 청계천과 여의도 현장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의미가 추상성에서 구체성으로 더욱 진화해야 할 이유를 깊게 인식했고, 막연함이 절실함으로 뜨겁게 다가오는 현장을 우리는 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작전은 5월 7일을 시험보는 날로 긴급통지하는 작전이었습니다.

지난 주말 갑자기 '7일은 시험보는 날'로 연락받은 중고생들이 허다하다는 것인데요. 5월 6일 저녁,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학교에서 7일을 시험보겠다고 기습적으로 통보했다는 것인데, 또 다른 독재정권의 망령을 오늘에 되살려 다시 구경시켜주는 어리석고도 무모한 어른들에게 감사를 할까요, 욕을 할까요, 돌을 던져 줄까요.

대학생들이 데모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 박정희가 '중간고사'라는 희귀한 교육정책을 구사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희 때도 전두환 군사정권이 서슬퍼런 학교통제를 자행하고 있었기에, 근처 대학교에서 4.19혁명 기념일과 5.17광주항쟁 기념일에는 반드시 시험을 봐야했습니다. 또한 대학교 근처에 얼쩡거리지 말라는 학교장의 지침이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전달되고, 반 평균을 까 먹는 '놈'은 '빳따 10대다'는 협박의 말씀까지 들어야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꼭 한 말씀 덧붙입니다. '공부 못하는 놈들이 꼭 데모현장에서 얼쩡거리다 빳따 맞고 정학당하더라. 만약에 우리 반에 한 놈이라도 데모현장이나 대학교 근처에서 '발견'되어 잡혀 오면 담임인 내가 가만 두지 않겠다'는 말씀. 때마다 들어야 했던 그 말씀을 오늘에도 되살릴 수 있을만큼 너무나 생생합니다.

▲ 6일 저녁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주최 인터넷모임 '미친소닷넷')에 참가한 학생ㆍ시민들 ⓒ윤희상
5월 6일. 그러니까 어제 저녁. 7일인 오늘 오전에 시험이라는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도, 징계라는 위협 속에서도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이명박계 신문 '조중동'이 말하는 것처럼, 연예인들의 선동에 속을 나이가 아니라는 것은 저들이 더 잘 압니다. 제 자식들이 얼마나 '까지고 야무진 지' 일상적으로 확인하며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19혁명의 주역들이 고등학생들이었듯이, 지금 청계천과 여의도의 주역들이 청소년들임을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험날짜를 촛불시위 다음 날 잡고, 현장에는 교사들을 파견해 징계 협박을 가한 것입니다.

그 꼬락서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청소년들의 힘. 그들의 정의감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무서워 하면서 왜 청소년들이 원하는 바대로 정치와 외교를 하지 않는 것일까'는 의구심도 들고요.

축제. 그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촛불문화제를 시위장의 처절하고 엄중한 문화가 아니라, '축제의 장'으로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는 '뿌듯함'과 '당당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냈고요, 또한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친구들은 전문 용어를 동원하면서 정부의 헛된 '일간지 광고'나 '반박논리'를 조목조목 재반박했습니다.

조기 논술교육의 힘일까요. 허허허.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닙니다'는 작은 종이를 들고 나온 청소년들을 보면서 농구장이나 콘서트장에서 특정 선수나 연예인을 연호하며 흔드는 청소년들과 그렇게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논리를 통해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을 향해 한 편으로는 날 선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한없이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축제를 옆에서 지켜보며 '참여자의 신분'에서 '관중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어른의 시선을 초라하게 체험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 중 일부, 아주 일부만 보았지만, 그들의 꿈틀거리는 분노와 함성은 즐거움과 축제로 승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지금 외치는 그리고 진보시키려는 '민주주의'가 낡은 이데올로기성 구호가 아니라 절실한 현실의 필요성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나와 우리, 우리 가족과 우리 이웃을 위해서, 타는 목마름의 절실함으로 또 다시 붙들고 가야 하는 지향점으로서 민주주의.

비록 조중동이 민주주의를 향해서 '좌파'니 '좌익'이니 지랄하지만, 좌파니 좌익이 바로 독재정권의 망령들을 다시 무덤 속으로 되돌려 보내는 행위이자 사람들이라면, 기꺼이 그리고 행복하게 나는 좌파라고, 나는 좌익이라고, 나는 민주주의자라고 외치고 실천해야 하리라. 적어도 청소년들에게 조롱과 희롱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들의 분노와 함성이 더 이상 제지당하는 현실을 지켜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거리에서 정당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요구를 당당하게 말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청계천과 여의도에서 만난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주먹 불끈쥐고...독재정권의 망령들을 고이 무덤에 다시 파 묻어야 하는 싸움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양문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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