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민주당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대를 지방 국립대학과 연합체제로 강의와 학점, 교수 및 학점의 교류 등 통합을 이뤄내는 방안“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우는 걸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대다수 언론들에 의해 ‘서울대 폐지론’으로 매도당한 후 ”당론이 아니며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물러섰다곤 하지만 ‘서울대 폐지론’이란 규정에 대해 반대했을 뿐 내용상으론 차이가 없다. 문제의 기자간담회에서 이용섭 의장은 ”그런 공약을 정말 대선에서 내놓을 거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선 공약으로도 나왔었다. 언론이 안 썼을 뿐이지“라고 답했다 한다.

같은 공약이라도 기자들을 앞에 불러놓고 ”이렇게 하면 서울대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해야 파란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조선일보 사설은 ”민주당의 국립대 통합 발상은 지방 국립대와 학부모들의 지지를 끌어내 6개월도 안 남은 대선에서 재미 좀 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선거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서울대 다음에 없애려는 대상은 또 무엇인가. 나라는 3류를 만들어도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심산인가“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중도성향의 한국일보 사설도 ‘호객’ 행위에만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 사설이 이 논쟁을 ‘합리적 토론의 계기’로 만들 것을 주문했을 뿐이요 한겨레 기사 정도가 ‘서울대 폐지’ 논쟁에 갇혀서는 안 되고 국공립대 통합․개혁이 핵심이라고 썼다.

▲ 조선일보 2일자 사설

이에 ‘교수학술4단체’가 어제 오전 11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에 나섰다. 교수학술 4단체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전국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비정규교수노조)다. 기자회견에는 민교협 이도흠 의장, 교수노조 강남훈 위원장, 학단협 한상권 상임대표, 비정규교수노조 박중렬 전남대분회장과 서울대 최영찬 교수, 가톨릭대 신승환 교수가 참여했다. 사회는 상지대 정대화 교수가 봤다.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건가, 말자는 건가

주로 강남훈 교수의 발언으로 소개된 ‘교수학술4단체’의 대학체제개편안은 “통합국립대학(교양대학․공동학위․대학네트워크)” 안이다. 이는 그 동안 진보진영에서 모색되었던 국립교양대학 안(2007~)과 국공립대 네트워크 안(2004~)을 조정하여 더 현실성 있는 하나의 안으로 합치기로 합의한 후 논의 끝에 정리된 것이다(2011). 이번에 민주당에서 던진 안은 국공립대 네트워크 안에 가깝다.

그러나 상관없이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서울대 폐지냐, 존치냐”에 쏠려 있다. 그리고 이는 서울대 이외의 국립대학에 별반 관심이 없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정책의 성공가능성 여부에 대한 본능적인 진단이다.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는 “왜 이 제도가 ‘서울대 폐지론’으로 오해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했다.

▲ '교수학술4단체'는 4일 참여연대 느티나무 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비정규노조 박중렬 전남대분회장, 서울대 최영찬 교수, 학단협 한상권 상임대표, 상지대 정대화 교수, 교수노조 강남훈 위원장, 민교협 이도흠 의장, 카톨릭대 신승환 교수.

이에 대해 한신대 강남훈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 문제가 논의될 때 ‘서울대 폐지론’으로 소개되었다. 당시에는 학벌체제의 폐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서울대 문제’에 집중했던 측면이 있다. 그래서 서울대 자체를 없애는 방안이나 서울대 학부를 없애는 방안 등이 검토되었다. 대학별 특성화 방안이나 서울대 캠퍼스 분리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대안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울대과 기타 국공립대학들이 공동학위․대학네트워크로 엮이는 것만으로도 ‘서울대의 이름이 사라지는 서울대 폐지’라고 파악한다. 이 정책의 찬성자들은 “서울대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대를 늘리자는 것이다”라는 수사로 대항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울대와 기타 국공립대의 격차가 현격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보수언론들도 ‘서울대 폐지’라는 간편한 수사를 고수할 것이다. 비슷한 질문에 대해 강남훈 교수는 “당연히 격차가 있을 것이다. 한동안은 이 네트워크의 서울 캠퍼스(현재의 서울대)가 지금의 권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후 차츰 조정되어 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합국립대학 안에서도 현재의 서울대는 기초학문 전공 몇 개만 할당받기 때문에 여타 전공자들에겐 ‘폐지’로 여겨질 것이다.

사교육 ‘스타 강사’ 출신으로 현재 서울시 교육청 정책보좌관을 역임하고 있는 이범은 좀 더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통합국립대의 순위가 어느 정도 될까. 당연히 연고대보다 밑일 것이고, 제 생각에는 서성한보다도 밑일 것이다. 입학정원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렇다. 상위권에게 진학상담을 할 때 교사가 ‘너는 통합국립대 입학해서 서울 캠퍼스를 노리는 게 좋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초기에 통합국립대가 어느 정도 수능 커트라인이 되느냐가 정책성공 여부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최영찬 교수는 “대학순위를 입학 성적만으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 현재 서울대 등 대학들의 문제가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가서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지만 이범은 다시 “그 판단엔 동의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판단해보자는 것”이라 맞섰다.

이에 대해 강남훈 교수는, “그 문제는 현실적으로 고민해볼 만한 부분이 있고 대안은 열어두고 있다. 서울대는 일단 내버려 두고 비슷비슷한 국공립대끼리 통합하는 안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책의 이러한 ‘변형’은 통합국립대학 안의 취지와 전채 얼개에는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여론전과 이에 영향받는 정책추진력의 측면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가령 조국 교수 같은 이의 경우 <진보집권 플랜>에서 ‘서울대 폐지론’에는 반대하면서 (여기서 조국 교수가 검토하는 ‘폐지론’도 국공립대 네트워크 안이다) 서울대는 분할하고 지방 국립대를 통폐합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따라서 통합국립대학 안이 서울대를 배제하고 추진될 수 있다면 이 논의는 조국 교수 안과도 만날 수 있는 등 적용범위가 전혀 달라지게 된다. 한편으로 이 안이 서울대를 배제한다면 앞서 이범이 우려한 정책 초기 ‘입학 성적’의 결정에서 전혀 다른 값을 가지게 되어 정책추진력이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이는 통합국립대학 안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교육문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양자택일해야 할 길일 수 있다. ‘대학 서열구조 완화’와 ‘학벌철폐’ 쪽에 방점을 찍는다면 서울대를 잡아먹는 안을 택해야 할 것이고 ‘중등교육 정상화’와 ‘교양교육 강화를 통한 대학교육 혁신’, ‘학문의 재생산 구조 확립을 통한 학문 발전’ 등에 방점을 찍는다면 서울대 개혁 방안은 별도로 고민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침 김종엽 한신대 교수가 창비주간논평에서 서울대를 배제하는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가 더 효율적인 방책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참고할 만한 주장이다. (링크)

법인화, 서울대만의 문제인가

여기서 이 문제는 서울대 법인화 문제와도 만난다. 민주당 이용섭 정책위의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국공립대 네트워크가 실현되면 서울대 법인화는 폐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만일 통합국립대학 안이 서울대를 배제하게 되더라도 그렇다면 서울대에 대한 올바른 개혁 방안은 법인화인지 아니면 다른 방안인지가 논의될 수 있다.

▲ 작년말 서울대학생들이 본관 건물 1층에서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자회견장에서 서울대 최영찬 교수는 서울대 법인화 반대에는 함께 하는 이준구 교수가 이번 논란 이후 ‘서울대 폐지엔 반대’란 의견표명을 한 것을 겨냥하며 “존경하는 분이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려면, 서울대에 문제가 많다고 본인도 설명하시는데 그 문제를 해결할 다른 개혁방안을 말씀해 주셔야 한다”고 비판했다. 통합국립대학 안을 반대할 경우 서울대 개혁 문제가 별도로 부각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 법인화 문제도 대학개혁 정책방안 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히 복잡하며 여러 가지 논의의 결이 있다. 대학 측은 재정확보 및 대학 자율성을 근거로 법인화를 추진하는데, 정부는 이런 부분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서울대학생들은 주로 등록금 상승과 기초학문 학과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법인화에 반대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법인화를 찬성하는 교수들도 서울대 등록금은 이미 더 오를 수 없을 만큼 올랐고 기초학문 학과 구조조정도 없을 거라고 단언하고 있다.

문제는 이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서울대측이 등록금 인상이나 학과 구조조정이 없을 거라 자신하는 이유는 서울대가 먼저 법인화에 나서면서 정부 지원도 많이 받을 수 있고 수익사업의 이윤을 기초학문에까지 분배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 있다. 그러나 이 ‘계산’은 사실상 서울대가 다른 대학들의 몫을 갈취하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에 실린 신승욱의 기고문에 따르면, 서울대측은 김영삼 정부가 모든 국공립대를 법인화한다고 했을 때는 한발 뺐다가 노무현 정부가 선별적 법인화로 정책을 선회하자마자 정부 지원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링크) 사실 법인화는 그 자체로 사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법인화 찬성론자들이 주로 언급하는, 국립대 지위를 유지하면서 법인화를 통해 정부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일본의 사례도 있다. 그러나 법인화 찬성론자들은 그들이 주요한 목표로 내세우는 ‘자율성’이 반드시 법인화를 통해서만 실현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숨긴다. 결국 남는 것은 서울대가 정부 지원을 많이 타내기 위한 방법 뿐이고, 대학의 자율성 역시 수익사업을 자유롭게 벌일 권리로 귀결될 뿐이다.

최영찬 교수는 “(법인화 이후) 노벨상 수상자를 교수로 데려오려고 한다. 10억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다섯 명까지 데려온다는 얘기도 있고 두 세 명은 데려올 것 같다. 그런데 10억이면 시간강사 백 명에게 연 천 만원을 더 줄 수 있다. 어느 쪽이 연구역량을 더 올리는 길이냐”고 반문했다. 이는 당연히 서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남훈 교수는 통합국립대학 안에 관련된 정책으로 3만 명의 시간강사를 국가연구교수로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링크) 법인화라는 대안이 연구 역량을 올리는 유일한 대안인양 치장되고 있지만 뜯어보면 자금 지원을 받고 학생 선발권을 보장받는 식으로 외부의 몫을 가져오는 방안일 뿐, 자체 역량을 올리려는 노력은 미비하다. 서울대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법인화’ 방안으로 가능한 것은 서울대의 순위를 끌어올리는 것 뿐 다른 대학이나 사회 전체에 대한 고민은 전무하다는 것이 큰 문제다.

또한 서울대 자체만으로 봐도 세계 대학평가 기준에 맞춘 ‘대학 개혁’으로 올린 순위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최영찬 교수는 “서울대가 49위라고 하는데, 이게 실상에 맞나. 학생들은 다 미국에 유학가려고 한다. (갈 수 있으면) 주립대학에도 가는데, 그런 학교들은 미국에 100개도 넘는다(주립대는 실제로는 600개가 넘으며 주립대학 중 100위권 안이면 한국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이다). 정말로 역량이 49위라면 왜 다들 나가려고 하나. 국내에서 박사를 받아도 일자리가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라고 질타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의 모범으로 삼는 미국도 국공립대 비율이 70%는 넘는데, 국공립대 비율이 20%도 안 되는 현실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도 말했다.

대학개혁 정책 방안이 대선을 주도해야

좁게는 ‘서울대 문제’서부터 넓게는 ‘대학체제 개편’까지 연관된 이 문제는 사람들의 욕망을 관통하는 만큼 삶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무상급식과 혁신교육 등으로 돌풍을 일으켜 당선된 김상곤 등의 진보교육감들도 “대학체제 개편 없이는 혁신교육의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형국이다. 사회개혁의 정책대안들은 총괄적인 기획 속에서 구체적인 정책들이 시너지가 나야 하는데, 대학체제 개편은 초중등 교육과 사교육 문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노동시장 문제 등과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진보진영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서울대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답을 하면서도 그 관심을 좀 더 포괄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 3일자 한겨레 3면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생각보다 이른 관심을 받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학단협 한상권 상임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교육민주화가 쟁점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문제는 새누리당도 용어를 가져가 버렸고, 진정성에서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대중의 시선에서 민주당과 변별력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공약을 갖추었다. 그렇다면 차이를 벌릴 수 있는 곳이 교육민주화 영역이다. 새누리당은 사학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절대로 이 영역에서 개혁을 하지 못한다. 사학은 박근혜의 약점이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개혁세력이) 이 지점을 공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민교협 이도흠 의장은 “보수언론이 대학체제 개편 문제를 서울대 폐지론과 경쟁력 저하 두 개로 몰고 간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사실 대학개혁 정책 방안이야말로 몇몇 명문대학의 순위 상승과는 차원이 다른 경쟁력을 고려한다. 강남훈 교수는 통합국립대학 안의 제도의 목적 중에 ‘초중등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설명하면서 ‘공부 시간의 생애 배분’ 문제를 제기한다. 순전히 학문 영역에서 성취를 내기 위한 효율성의 잣대로만 봐도 초중등 과정에서는 체력을 길러놓고 대학에 간 후 경쟁에 매진하는 것이 유리하다. 미국의 한국 교포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고등학교 때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밤을 새워서 공부할 체력이 안 되기 때문이라 한다. 아시아권 학생들에게서 많이 드러나는 이 문제를 살펴보면 우리가 늘상 얘기하는 ‘경쟁력’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경쟁력인지를 회의하게 된다.

무슨 방안이 나오든 보수언론은 이를 ‘서울대 폐지론’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틀에 붙잡혀 갑론을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가장 많은 토론과 검증을 거친 통합국립대학 안을 중심으로 그것의 문제점과 실효성을 고민하는 것이다. 대선까지 조금 시간이 있을 때 대학체제 개편안을 ‘서울대 폐지론’으로 공격당한 것은 어떤 의미에선 예방주사를 맞은 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사를 맞았으니 이제 질병을 이겨내고 건강을 확보하기 위한 체력단련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다.

(통합국립대학 안을 가장 간명하게 소개한 한국대학신문 기사를 소개한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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