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유전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연구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살려주세요…"

지난달 29일 MBC < PD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시청했다는 한 네티즌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시청 소감이다.

지금 인터넷 공간에는 사이버 민란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논란이 뜨겁게 진행 중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광우병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 PD수첩>이 방송된 이후 네티즌들의 거센 저항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개설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 캡쳐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정치권과 이명박 정부로 향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수입개방과 관련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지난달 6일 아이디 '안단테'를 쓰는 한 네티즌이 대운하 건설 반대와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등을 위해 제안했던 서명운동이 광우병 우려 방송 보도 이후 급속히 번져 5월 6일 현재 120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광우병을 우려한 네티즌들은 사이버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서울 청계광장에 모여들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기 위해 지난 2일에 1만여명, 3일에 2만여명이 청계광장에 모여들었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이후 참여 인원이 가장 많았다. 특이한 것은 10대 청소년 참석자들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청소년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네티즌들의 주장을 단지 괴담 정도로 치부해가며 일부 정치권과 진보 언론들이 지나치게 과장해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했던 보수언론들은 또 다시 촛불집회마저도 반미세력들이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들을 선동한 결과라고 몰아가고 있다. 아마도 이 집회에 참여한 10대라면 보수언론들의 억지라고 바로 증명해 줄 것이다. 이들 10대들은 분명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지금의 10대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미디어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쌍방향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놀이로 생각하는 세대가 지금의 10대들이다. 오프라인 미디어 시대 신문과 방송에서 들려주는 얘기만을 보고 들었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것이 적극적인 의사표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10대들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남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고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의 이러한 의사표현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공감을 얻으면서 눈덩이처럼 불어 난 것이 이번 미국산 쇠고기 파문의 시작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서명운동을 한 포털 사이트에 제안했던 아이디 '안단테'도 18살의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 동아일보 5월 6일자 1면

인터넷을 통해 이렇게 형성된 담론을 그저 담론으로만 넘기지 않고 자신들의 의사가 관철되도록 오프라인 공간으로까지 확산 시키는 데에도 미디어가 한몫 하고 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이들 10대들은 담론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지령을 전파한다. 이번 촛불집회에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가 10대라면 한번쯤 받아 봤다고 하는 것으로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우리의 청소년들은 쌍방향 미디어 또는 개인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일부 보수 언론과 정부는 반미단체의 배후설을 주장하면서 그저 10대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간주하기 바쁘다. 만약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근거없는 우려의 글들이 인터넷에 오르기 시작했을 때 방관하지 않고 10대들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 만큼의 해명과 증명을 했더라면 과연 10대들이 황금 같은 주말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교육부가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경기·인천·울산지역 등의 7개 학교에서 미국산 쇠고기 3105㎏을 학교 급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연필대신에 촛불을 들고 있는 10대들은 바로 이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10대들이 인터넷 공간에 쏟아 내고 있는 많은 우려를 근거가 없는 괴담이라고 하지 말고 단 하나의 우려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해명을 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과거 군사정권처럼 언론의 입을 막고 불도저로 밀어 붙이면 되던 시절에나 있을법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와 비교할 때 미디어 환경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10대들의 주장이 모두 근거 없는 얘기라고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항의성 글들이 너무나 많이 올라 온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 홈페이지를 폐쇄하듯 회피하지 말고 그들의 우려를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조목조목 반박해 주길 바란다. 이들 10대들이 원하는 것은 막연한 불안감 조성이 아니라 광우병에 대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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