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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쉽게 아프고 죽어가야 했던,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보고서[인터뷰]'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저자 김기태 기자
곽상아 기자 | 승인 2012.07.02 08:06

2010년 11월, 네아이의 엄마 이순임(42ㆍ가명)씨는 가쁜 숨을 쉬면서도 계속 눈을 감지 못했다. 이인월 간호사는 "걱정거리가 많은 환자들은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하고,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오래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독방에 들어간 지 이틀째, 저녁 7시를 넘기면서 몸의 곳곳에서 죽음의 징후가 선명했다.…반쯤 감긴 환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라기보다, 그의 몸이 잠기면서 솟아오른 진한 체액 같았다. 간호사가 환자의 눈물을 닦았다. 두 손으로 그의 눈꺼풀을 감겨줬다. 그의 영면을 돕기 위해서였다. 이 간호사의 손이 떨어지자 그의 눈은 다시 천천히 열렸다. 뜬 것이 아니라, 그저 감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저녁 8시 29분. 독방 시계의 초침은 막 숫자 8을 지나치고 있었다. 엄마 이순임씨의 숨이 멎었다.

'가난한 이들은 쉽게 아팠고, 쉽게 다쳤고, 쉽게 죽었다'는 부제가 붙은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에 나오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2008년 11월 위암 판정을 받은 지 2년만에 아이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이순임씨(기초생활수급권자). 지난 8일 발행된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에는 김기태 한겨레21 기자가 서울 길음동의 성가복지병원에서 직접 한달간 자원봉사를 하며 지켜본 수많은 이순임씨가 등장한다.

   
▲ 한겨레21 김기태 기자가 2010년 11월, 서울 길음동 성가복지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당시의 모습. ⓒ한겨레21 제공

김제 부농의 아들이었으나 전쟁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난 사람, 잘나가는 사업가였으나 방탕한 생활로 사업이 기울었고 결국 말기암 판정을 받은 이, 편의점 운영으로 한때 월수입 400만원을 넘겼으나 갑작스럽게 닥친 혈액암에 무너진 부부 등 저마다 절절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공통적으로 묶는 것은 '기초생활 수급권자'라는 단어였다. 이들의 죽음을 과연 '개인적인 것'으로만 볼 수 있을까?

직접 복지병원, 응급실 속으로 들어가 '건강 불평등'의 생생한 사례들을 길어올린 김기태 한겨레21 기자는 27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누지 않은 우리 사회가 어떠한 모습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밝혔다. 더 쉽게 다치고, 아프고, 죽어가야 했던 가난한 이들의 건강 문제를 촘촘한 근거를 통해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내고 이 같은 건강 불평등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김기태 기자가 직접 체험한 의료 현실에는 섬뜩한 대목이 적지 않다. 노숙인을 진료하는 의사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본 환자는 노숙인으로 등록돼 있다. MRI(자기공명영상) 등 고액의 처방은 가능한 한 자제해주시기 바라며, 특진비는 전액 받을 수 없음을 참고하시기 바란다"는 메시지가 뜨고, 가난한 이들이 주로 실려오는 응급실은 "환자 가족들이 병원장실에 칼을 들고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된다. 국립중앙의료원의 한 수련의는 노숙자를 데리고 온 경찰에게 "빈 병상은 일반인을 위한 것이고, 행려자는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며 막아서는 모습도 연출된다. 2010년 4월 특수법인으로 위상이 바뀐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영효율화' 때문이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김기태 기자는 "노숙자를 돌려보낸 수련의가 개인적으로 나쁜 사람이었겠느냐. 개인들은 선의를 가질 수 있지만, 시스템이 바뀌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진짜 섬뜩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지적한다. 돈 안 되는 분야에 대한 홀대로 인해, "부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암센터는 전국에 수십 곳이지만, 응급실과 함께 돈 안되는 대표적 분야 가운데 한 곳인 중증외상센터는 전국에 딱 한 곳밖에 없다." 당시 돈 벌이에 몰두하는 병원 현실을 목도한 김기태 기자는 현재 병원 상업화 문제를 다룬 한겨레21의 <병원OTL> 시리즈에도 참여하고 있다.

   
▲ 김기태 기자 ⓒ곽상아
"가난한 이들이 더 아프다"는 우리의 직관을 사례와 근거를 통해 '진실'로 확인시켜준 이 책은 보는 이들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건강 형평성 제고를 위해 조사ㆍ연구 활성화 방침이 발표됐고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예산 5억원을 들여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한 건강증진 전략 및 사업개발' 보고서를 연구진에게 맡겼으나 정부가 바뀐 이후 보고서가 아예 발표되지도 못하는 등 건강 형평성 사업이 첫 발을 떼기도 전에 좌초됐다는 대목 역시 참담하다.

그러나, 책은 "가난한 이들은 쉽게 아프고, 다치고 죽는다"에서 그치지 않고 "평등해야 부자도 오래 산다"로 나아간다. 사회역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처드 윌킨슨 영국 노팅엄대학 교수가 2009년 세계 각국의 소득분포와 건강 수준의 함수관계를 연구하고 미국의 50개 주에 대해서도 같은 연구를 한 결과 "한 사회나 국가의 전반적인 소득수준이 아니라, 내부 성원들 사이의 불평등 수준이 평균 수명을 좌우"했으며 "소득 불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일 수록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부자 나라'인 일본과 미국을 들여다 보면, 소득 분배가 가장 공평한 나라로 꼽히는 일본은 세계 최장수국이지만 소득 불평등 수준이 높은 미국은 일본보다 더 잘사는데도 불구하고 기대 수명이 일본에 못미친다.

이를 두고 김기태 기자는 "(사회 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범죄율, 사산율, 10대 낙태율 등에 있어서 모두 미국이 일본보다 안좋은 상황"이라며 "지주가 아랫사람을 수탈하면 전체적으로 동네 분위기가 나빠져 아랫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주도 오래살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이어, 김기태 기자는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돈을 더 버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나누는 게 필요하다"며 "도덕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내가 더 잘살기 위해서라도 나눠야 한다는 것을 과학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부자가 양보해야 모두가 건강해진다"는 역설,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결국 우리가 이뤄내야 하는 것은 '소득의 불평등 감소'다. 향후 한국사회가 골고루 건강하게 사는 사회로 나아갈지, 아니면 '모든 계층이 골고루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죽는' 길로 나아갈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곽상아 기자  nell@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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