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진상조사 보고서

통합진보당의 내분 사태가 2차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온 다음에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더구나 최근 실시된 당 지도부 경선이 서버 오류로 중단되는 파행이 일어나면서 구당권파 측에서 혁신파의 퇴장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또 IT 전문가 김인성씨가 2차 진상조사 보고서가 기술검증 보고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온라인 투표의 부정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판단내리기가 여전히 힘든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미디어스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30쪽에 달하는 2차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의 핵심적인 부분을 추려보면서 그 작성자들의 정치적 고민을 추정해 보고자 한다.

보고서가 명확한 '부정'을 밝혀낼 수 없는 사정

먼저 총론의 영역에서 2차 진상조사 보고서는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라는 1차 진상조사 보고서의 결론에서 어휘의 차원에서는 약간 후퇴한 “부정이 방조된 (부실) 선거”라는 결론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표현을 조심스럽게 고른 것일 뿐 보고서 기조의 차원에서 후퇴한 것은 아니라 여겨진다. 문제의 핵심은 지금까지 구당권파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확실한 부정의 증거를 발견하고 그것을 저지른 주체를 밝혀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논란이 된 김인성씨의 주장은 IT 엔지니어들의 입장에선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서 파장이 큰 것이다. 보고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조사위에 수사권 등 강제권이 없어 조사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 둘째, 현실적으로 책임자를 100% 가려낼 수 없기에 책임자 색출식 조사를 할 때 그중 일부만 밝혀지는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는 점, 셋째, 책임의 범위를 한정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 등이다.

수사의 강제권이 없어 조사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가령 보고서는 온라인투표 부문의 동일아이피 비율 문제를 집중 제기한다. 그런데 동일아이피로 투표한 이들이 다수 보인다 해도 이들이 조직적인 대리투표를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노조나 단체 사무실에 자연스럽게 모여 투표를 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이 아이피 투표의 비율이 높다면, 이것이 발견된 모든 곳이 노조나 단체 사무실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워지고 대리투표에 대한 정황증거가 된다. 보고서는 온라인 투표에서 1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5명 이상의 동일아이피에서 투표한 것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부정선거의 확증은 못 된다. 따라서 ‘부실이 아닌 부정’을 확증하려면 투표가 이루어진 장소의 아이피를 확인하고 인증번호가 발송된 휴대폰의 위치를 추적하여 대조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진조위에는 이런 작업을 벌일 수사권이 없다. 현장투표의 경우도 한 사람이 여러 표에 사인을 했을 거라 추정할 수 있는 정황증거들이 있어도, 이 증거들은 필적감정을 실시하기에도 글자수가 너무 적은데다 해당 당원들을 소환하여 필적을 얻어낼 수 있는 권한이 사실상 없다. 또 당직자와 지역 당협에 대한 조사도 당사자들이 미리 말을 맞추고 부인하거나 변명할 경우에도 별로 대처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확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1차 보고서 및 2차 보고서를 믿을 수 없다는 구당권파의 태도는 잘못된 부분이 있다. 진조위가 수사권이 없어서 확증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인데 확증을 안 내놓았기 때문에 승복할 수 없다고 하면 논리적으로는 이 문제는 검찰수사로 가져가는 게 옳고 검찰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통합진보당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되면 통합진보당은 검찰 수사를 비난할 근거를 잃어버릴뿐더러 그 정치력도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것이다. 김인성씨의 경우도 시스템상 확증에 해당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단 점에서 보고서와 차이는 있었지만 검찰 수사 이전에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비록 ‘확증’은 없더라도 법정 다툼이 아닌 정치적 책임 공방의 수준에서 생각할 때 2차 진조위 보고서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은 ‘부정이 방조’되어 ‘총체적 부정·부실’이 벌어진 선거라 판단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단 기존에 화제가 되었던 증거 중에는 ‘부정’의 증거는 아니라고 밝혀진 부분도 있다. 소스코드 변경 문제는 정황상 부정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소스코드가 열린 시점에 각 후보들의 득표율이 유의미하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보고서는 현장투표 부정의 가장 명백한 증거로 미디어스에도 보도된 ‘붙어 있는 투표용지’의 경우에도 투표용지 절단 및 개표 상황을 재연했을 때 붙어 있는 사례가 있었다고 보고한다. 구당권파는 보고서가 이런 내용을 ‘누락’했다고 언론 플레이했지만 분명히 이 내용들도 보고서에 들어 있다.

▲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당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에서 강기갑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보고서 서술만 봐도 소위 ‘유령당원’ 문제에선 통합진보당 경선이 자유롭지 않았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현장투표와 온라인투표에서 모두 조직동원 및 대리투표 정황이 광범위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온라인투표 대리투표 정황은 동일아이피 투표 비율이 높은 것에서 나타나고 현장투표 대리투표 정황은 대리투표가 의심되는 선거인 명부상 서명이나 선거인 명부를 둘러싼 혼란에서 드러난다.

구당권파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통합 과정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로는 관리자 아이디로 미투표 현황자를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특히 예전 시스템에서는 관리자 아이디를 특정 아이피로 제한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 제한을 풀어버려 같은 시간에 다른 컴퓨터에서 복수의 사람들이 관리자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단지 관리자 아이디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미투표 현황자를 확인하고 그들에게 투표 독려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누구가 관리자 아이디를 알고 있고 관리자 아이디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를 중앙선관위원장조차 알 수 없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선거인 명부 확정 이후에도 휴대 전화번호를 수정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까지 겹쳐서, 이러한 온라인 선거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부실은 확실히 ‘부정이 방조된’ 수준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살핀다면 구당권파의 불만처럼 이번 선거의 부정․부실이 구당권파의 문제만으로 치부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또 보고서에서는 김인성씨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해당 문제를 시스템 자체의 문제나 엔지니어의 실수로 몰아가는 부분이 있으나 이도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보고서에서도 적시되었듯 이번 선거 전에 당권자의 기준이 하향되었다. 통합 후 최초로 시행된 비례대표 경선이었기에 통합 주체의 합의를 거쳐 선거권 부여 요건이 완화되었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 명부와 국민참여당 명부를 합친 것 외에도 선거 전 3개월 동안 당원 가입자가 2만 7천여명에 달해 당원이 14만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다.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런 상황은 기존 당원 분포만으로는 민노당 측이 너무 유리했기 때문에 참여당과 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 측을 배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도 적당히 조직동원을 해서 민노당 당권파에 대항할 수 있도록 룰을 조정해준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렇게 룰을 바꿔주면서 ‘밸런스’를 맞춰주려 노력했고 각 정파가 조직동원은 물론 ‘유령 당원 대리투표’를 적당히 했던 게 사실이라면 당원 분토만으론 가장 숫자가 많았던 당권파 측이 억울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라고 지적했다. 구당권파의 전횡이나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선거 이전에 있었던 모종의 정파적 합의들이 경쟁이 조금만 과열될 경우 부정선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토양이었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실적으로 책임자를 100% 가려낼 수 없기에 책임자 색출식 조사를 할 때 그중 일부만 밝혀지는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고 한 보고서 서술의 정치적 의도를 생각하게 한다. 구당권파만 부정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고 이석기 김재연 사퇴 압박에 대해 구당권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인사만 부정을 저질렀다고 말하기 쉽지 않았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현재도 구당권파는 보고서가 오옥만의 부정 증거는 기술하지 않고 이석기만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엔 구당권파의 항변과는 달리 소스코드 변경문제나 ‘붙어 있는 투표용지’가 부정의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적혀 있다. 참여당계 오옥만 후보의 부정 정황이 생략된 것도 아니다.

정파적 이해관계 떠난 위기의식 가져야

결국 구당권파가 ‘가해자로 몰린 억울함’을 근거로 이석기와 김재연의 사퇴를 거부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혁신파의 주장은 구당권파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 아니라 선거가 총체적 부정․부실이었으므로 대표단 및 선거에서 선출된 후보가 함께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재연의 경우 청년비례대표 선거가 문제가 된 국회의원 경선 선거와 별도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퇴는 부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청년비례대표 선거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용되지 못한 부분이 다음 선거의 문제를 곪아터지게 만든 측면이 있으므로, 정치적 책임을 충분히 요구할 수 있다.

보고서에서 ‘책임의 범위를 한정할 수 없다’고 인정했듯 총선 이후 전개된 ‘통진당 사태’는 특정 정파가 정당성을 독점할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 아니다. 지도부 경선 중단을 계기로 비대위 측의 사퇴를 주장하는 구당권파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인 이유도 그래서다. 또 진조위 측도 문제를 혁신파에게 유리하게 몰고 가려는 욕망을 버리고 김인성씨 등의 항변을 받아들여 선거 부정의 실체적 진실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잠정 중단된 지도부 경선 등 통합진보당의 남은 일정이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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