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한겨레 10면 기사는 조선일보의 'KAL기 사건 보도'에 대한 대응의 측면이 강했다.

조선일보가 연일 ‘KAL 858 폭파사건’에 대한 보도로 열을 올린다. 김현희의 발언을 근거로,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진실위나 과거사 진실화해위의 조사가 그녀의 범행을 안기부의 날조로 몰아가는 공작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이렇게 조선일보가 뜬금없는 이슈를 제기했을 때 진보언론의 대응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무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편 취재원’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번 정국에서 전반적인 진보언론의 대응이 전자였다면 한겨레와 미디어오늘이 한 번씩 취한 방식이 후자였다고 볼 수 있다. 두 진보언론은 ‘유가족 인터뷰’라는 칼을 빼어들었다. 물론 보수언론의 ‘세계관’을 활용한다면 100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을 사망케 한 테러리스트의 발언으로 감히 대한민국 정부를 의심하는 사회불만 세력에게 KAL기 사건의 진짜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환기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대응했다면 모를까 이왕 대응하기로 했을 때 유가족 인터뷰로 KAL기 사건과 김현희에 대한 의문을 한 번 더 반복한 보도는 진보진영의 포지션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든 점이 있다.

이 문제의 논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KAL기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이며 다른 하나는 참여정부가 KAL기 사건의 결론을 뒤집으려 했다는 ‘음모론’이 사실인가란 것이다. 그리고 조선일보가 후자를 옹호하는 한 그들은 매우 극단적인 주장에 스스로 갇힌 것이 된다. 문제는 진보진영이 왜 여기다 대고 “사실 KAL기 사건은 군사정부의 자작극인 것 같은데?”라고 말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 사회엔 KAL기 사건은 조작이라 믿는 사람도 있고 KAL기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긴 하지만 위원회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으며 KAL기 사건에 대해 다시 조사하자는 것은 종북세력이란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각각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첫 번째 부류와 두 번째 부류를 모두 챙기는 것이 정치공학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정치공학을 따지기 이전에 첫 번째 부류만 대변하는 것은 조선일보의 주장만큼이나 부담이 가는 무리한 주장이다. 한겨레와 미디어오늘의 ‘유가족 인터뷰’는 일독할 가치는 있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어 보인다.

왜 논리적으로도, 정치공학적으로도 더 유효한 ‘길’이 채택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두 가지 정도의 이유일 거라고 추측된다. 첫 번째 이유는 진보언론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그 ‘협소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란 것이다. 그런데 이 협소한 생각의 유용함은 그것이 매우 단순하다는 데에 있다. 가령 조선일보의 사고방식은 누군가 KAL기 사건을 재조사하자고 말한다면 그것은 기존의 사건조사 결과를 뒤집기 위함이라는 식의 ‘단순한 가정’에 있다. 이 가정은 재조사가 필요한 원인(기존 조사의 허술함이나 군사정권의 정당성 부재에 의해 생겨난 사람들의 합리적 의심)이나 그것의 효과(KAL기 사건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정리함)에 대한 아주 약간 더 복잡한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진보언론이 사실상 대변하는 그 ‘협소한 생각’도 이 생각에 완벽히 대응한다. 즉 우리가 KAL기 사건을 재조사해야 했던 이유는 KAL기 사건이 군사정권의 날조일 것이라는 심정적 확신 때문일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단순한 사고가 주류적 견해로 유행하는 세상에선, 좀 더 복잡한 생각보단 그 주류적 견해에 정확히 조응하는 가장 단순한 견해가 대항담론이 되곤 한다. 진보언론의 KAL기 사건 보도는 그러한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정당성을 쉽게 확보하려는 '전략'의 측면이다. 가장 적은 지면활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 길을 고민했을 거란 것이다. 기자가 “왜 다른 기자들은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 내용을 요약하지 않았을까?”라고 투덜댔을 때 다른 기자들은 “일간지 기자의 생활에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답했다. 이 견해엔 일리가 있고 그들의 노고를 존중한다. 그러나 보고서를 읽지는 못 하더라도 조선일보가 진실화해위 조사관을 인터뷰하는 상황에서 진실위와 진실화해위 모두에 관여했던 안병욱 교수와 같은 사람을 인터뷰하고자 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상상력도 아니다. 그런데도 기자는 그런 일을 매체비평지 기자가 처음 시도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서글픔을 느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복수의 기자들은 이에 대해 "유가족의 인터뷰를 받는 것이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비극적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진상조사에 대한 정당한 요구마저도 '친북'이나 '종북'으로 매도당했던 유가족들이 김현희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분들의 의심만이 정당하고 그분들의 견해가 KAL기 사건에 대한 올바른 견해인 것은 아니다. 진보언론이라면 좀 더 폭넓은 고민을 해야 하고, 유가족을 활용하는 그 '전략'이 본질적으로는 김현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보수언론의 전략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그런 고민과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진실위가 한 사건에 대해 4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펴내든 말든 조선일보나 한겨레는 그 사건에 대해 예전에 말하던 대로 말하고 또 그렇게 말해도 별반 문제가 없는 그런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진보나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과 소통능력에 대한 회의를 보여주는 상황이다. 우리가 한국의 ‘보수’를 경멸하는 이유가 단지 그들이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진보 역시 자신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특히 정치권의 수준향상을 요구해야 할 언론의 ‘실력’이 한국 사회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건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 보수언론이 결코 이런 성찰을 할 리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슬프게도 매체비평지 기자는 다소 불공평하더라도 진보언론의 기자들에게 그 성찰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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