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특공대를 부각시키며 관객을 '용산 참사'의 증인으로 소환하는 <두 개의 문>의 포스터

2009년 1월 19일, 서울시 용산 4구역 재개발의 보상대책에 반발하는 철거민들의 남일동 건물 위 망루 시위를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중 화재가 발생하여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은 묻지 않았고 투쟁한 철거민을 기소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이 ‘국민적 공분’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현실’은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케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좌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이 참사의 진실규명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했다. 참사 이후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기 시작한 다큐멘터리만 해도 십 여 편이 넘는다.

<두 개의 문>은 그중 가장 먼저 개봉되는 다큐멘터리다. 오는 6월 21일부터 개봉되어 극장 상영에 들어간다. 그런데 <두 개의 문>은 극장 개봉을 후원하기 위한 ‘배급위원’을 모집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바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 <화차> 변영주 감독, <경계도시 2> 홍형숙 감독, 정혜윤 CBS 프로듀서, <미실> 김별아 작가, 칼럼니스트 김규항, 문정현 신부,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등”이 참여했고 총 834명이 2,921만 8,658원을 모금했다. ‘배급위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영화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배급위원을 모집하는 것이 다른 독립 영화에도 의미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을까?

▲ <두 개의 문> 배급위원이 되어 달라 호소하는 주최측의 포스터

배급위원이 필요한 이유는 얼마 전 극장 개봉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열사 다큐멘터리인 <어머니> 극장 개봉 텀블벅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에서 유추할 수 있다. <어머니> 제작팀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극장 개봉 비용을 모금하여 후원자 169명에게 총 822만 7천원의 후원금을 얻어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어머니> 극장 개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독립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기 위해서는 제작비와 맞먹는 정도의 개봉 비용이 필요합니다. 개봉한다고 하더라도 홍보마케팅이 잘 되지 않아서 관객이 적으면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몇 번만 상영이 되다가 1-2주 만에 극장에서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처럼 수 억 원의 마케팅 비용이 없기 때문에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텀블벅을 찾았습니다.

<어머니> 극장 개봉 비용 마련을 위한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세요.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여 모인 500만원의 후원금은 개봉포스터 디자인, 제작, 인쇄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링크)

<어머니>와 <두 개의 문>을 배급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 시네마달 측은 이러한 모금이 극장 개봉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두 개의 문> 배급위원들의 모금의 경우 주로 홍보물을 만들거나 극장을 대관하는데 쓰이고 있다. <어머니>와 <두 개의 문>은 영화진흥위원회의 2012년 상반기 다양성 영화 개봉지원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각각 2천 5백만원과 3천만원을 지원받았다. <두 개의 문>의 경우 배급위원 모금으로 거의 영진위 개봉지원금에 육박하는 돈을 지원받은 셈이다. 시네마달 측은 “그래서 <두 개의 문>의 경우 약간은 여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배급위원 모집이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독립영화 제작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먼저 독립영화 제작에 드는 비용이 극장 개봉 비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경향신문 [김규항의 좌판]에서 <두 개의 문> 감독인 김일란·홍지유 씨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먹고 사는 문제는 따로 해결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찍는 실정을 토로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독립다큐의 경우 제작비 산출이 곤란한데, 자신들의 인건비를 계산에 넣지 않기 때문이다. 김일란씨는 제작비에 대해 “둘이 작품에 집중했던 기간이 1년 정도인데 한 사람이 월 100만원씩 치면 2400만원이잖아요. 거기에다 촬영이 붙고 사운드 믹싱, 음악, 번역 등 후반 작업을 다 계산하면 1억원을 훌쩍 넘죠”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소속된 연분홍치마는 현재 매달 5천원 1만원씩 내는 후원회원이 100명이 조금 못 되는데 300명이 된다면 소속된 다섯 명 모두 활동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링크)

▲ <두 개의 문> 관련 정보를 담고 있는 포스터

<두 개의 문>의 경우 제작지원금도 3천만 원을 받았다. DMZ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제작 지원작에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제는 경기도콘텐츠진흥원 산하 경기영상위원회가 주관하는 것이다. 결국 경기도라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끼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다큐멘터리의 경우 한국적 실정에서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런 지원도 눈치가 보일 수 있다. 영화제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사실 제작 지원작들을 보면 용산, 강정 등 진보적 이슈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공무원들이 평소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어머니>도 지원작이고 <Jam Docu 강정>도 지원작이다. 근데 <두 개의 문>의 경우 언론노출이 많다 보니 공무원들도 무슨 내용인지 찾아 보게 되고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공공 영역의 독립 다큐멘터리에 대한 제작 지원이 아직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이루어질 만큼 성숙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부족한 부분을 ‘미래의 관객’들의 모금으로 메꾸는 것에는 사실상 한계가 있다.

또 배급위원 모집이 용이한 영화의 종류가 제한될 것이란 점도 분명하다. 아무래도 관객들이 미리 기대하는 소재를 다룬 영화에 대한 모금이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네마달 측 역시 “과거 (노근리 학살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에 대해서도 배급위원 모집을 한 적이 있지만 이번이 호응이 더 좋다. 아무래도 ‘용산 다큐’ 중 가장 먼저 개봉한다는 선점 효과가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때부터 시작해서 대중운동을 통해서 독립영화 관객의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지만 가시적으로 큰 성과가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SNS가 나오면서 사정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규모가 작은 영화에는 SNS를 통한 홍보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고 지적한 그는, “지금까지의 활동도 저변을 조금씩 넓히는 데엔 기여했다 볼 수 있다”며 “SNS 등의 뉴미디어를 활용하여 앞으로도 이런 운동이 계속 생기고, 그 효과가 입증되는 경험들이 쌓여 나갔으면 좋겠다. 패배하는 경험 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승리하는 경험이 쌓여 나가야 다음의 작업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며 희망을 말했다.

배급위원 모집이 완료된 지금 <두 개의 문>을 도울 수 있는 다음 방법은 현재 개봉한 극장의 점유율을 높여주는 것이다. <두 개의 문> 상영관은 아직 20개에도 못 미치고, 기존에 확보한 상영관에서 흥행한다면 상영관이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실정이다. JYJ 팬덤 일각에서 단체 관람 조직이 진행되는 가운데 주최측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용산 CGV’를 개봉관으로 확보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정했다. 기존 상영관들, 특히 CGV 개봉관인 대학로와 부산 서면 등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여줄 경우 <두 개의 문>의 ‘용산 CGV’ 입성이 가능해진다. SNS의 호응 속에 첫 발을 내딛은 <두 개의 문>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두 개의 문> 극장 점유율을 올려달라는 주최측의 당부를 담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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