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근혜 대표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사퇴를 거론하며 “국회라는 곳이 국가의 안위를 다루는 곳인데,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있고 국민들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2011년 8월 27일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날 공개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에 손을 대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박 대표가 말한 국가관의 의미는 ‘색깔론’ 즉 좌익 이념 논쟁인데, 다름 아닌 박근혜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말로 과거 남로당 출신으로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구체적 내용은 오마이뉴스 “좌익혐의로 무기징역… 재심서 구사일생(2004.8.8)” 중 일부를 인용해 본다.

“1949년 2월 8일 구 통위부(미군정 당시 국방부에 해당하는 부서로, 현 위치는 서울 충무로 코리아헤럴드 뒷편 인근임) 건물 장교식당에 임시로 군사법정이 마련됐다… 중략 … 바로 이 군사법정에 당시 육군본부 소속 박정희 소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섰다 … 중략 … 그는 재판장의 신문에 순순히 피의사실을 자백하고 또 시인했다. 이날 법정에서 그는 국방경비법 제18조, 33조 위반으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이 판결로 그는 현역 소령에서 파면됐고, 급료도 몰수당했다.”

쉽게 말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이 ‘좌익’이었다는 걸 자백하고 시인했다는 거다. 그가 좌익 사상에 얼마만큼 깊이 심취했는지(철저한 이념주의자였는지 감상적 공산주의자였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좌익 활동을 한 군 내 프락치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그로 인해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제 5대 대통령 선거에서였다. 제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정당 대선후보였던 윤보선측은 박정희의 이러한 좌익 경력에 대해 해명을 요구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사상 논쟁’의 출발이다. 이로 인해 박정희는 선거 기간 내내 엄청나게 고생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건 해명을 요구한 윤보선측의 공세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 측이 보인 반응이다. 한상범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후보로서 윤보선 후보가 (좌익 경력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자 오히려 ‘중상모략이고 매카시즘적 수법’이라고 최고회의 대변인을 통해 호통을 쳤다.”

한상범 교수의 말에서 특히 눈에 띄는 단어는 ‘매카시즘’이다. 즉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요즘 야권이 색깔론에 대해 반박하는 것과 똑같이 자신의 좌익 전력에 대한 검증 공세를 ‘매카시즘’이란 단어를 써서 반박했다는 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측의 매카시즘에 대한 언급은 한상범 교수만이 아니라 김준하 당시 청와대 대변인(윤보선 측)도 증언하고 있다. 다음은 신동아 2001년 12월 호에 담긴 내용이다.

“서인석 공화당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사가 매카시즘의 악랄한 수법을 쓰게 됐다는 것은 선거 분위기를 극도로 해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매카시즘의 악랄한 수법을 멈추라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박대표와 새누리당은 색깔론 공세를 멈추는 게 어떨까? 더구나 현재 종북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좌익 활동으로 무기징역을 언도 받은 이들도 아니지 않나? 남로당 출신의 좌익사범 경력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존재하는 게 바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다.

정치인에게 중요한 건 ‘사상’이 아니라 그 사상이 민주주의 절차를 얼마나 존중하는 방식으로 현실에서 구현되는지에 대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도 ‘좌익 사상’을 가지고 그의 ‘과’를 평가하기 보단 쿠데타 경력 및 유신 독재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것이고. 그러니 철지난 색깔론에 몰두하기 보단 부친이 했던 것처럼 경제 살리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을 가장 잘 받드는 길이자 박대표와 새누리당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지름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 싶다. 부디 극단적 사상 놀이에 몰입하는 이들에게 휘둘리지 말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선 유력주자와 국회 제1당에게 바라본다.

EBS <지식채널e> 전 담당 프로듀서.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