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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보조출연자는 '인간'이 아니라 '소품'일 뿐인가요"[인터뷰] 문계순 보조출연자노조위원장
곽상아 기자 | 승인 2012.06.11 06:51

   
▲ 문계순 전국 보조출연자 노조위원장. ⓒ곽상아
KBS <각시탈> 보조출연자였던 박희석씨가 버스 전복사고로 4월 18일 사망한 지 벌써 3개월 가까이 흘렀다. 사고 직후 "사력을 다해 보상 처리를 하겠다"던 KBS, 팬엔터테인먼트, 태양기획, 동백관광 등 4개 회사는 장례비용으로 2천만원을 지급한 뒤 아무런 말이 없다. 용역이 또다시 용역을 주는 복잡한 드라마 제작 환경 속에서 숨진 박씨가 자신들과 직접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안타깝지만 우리랑은 상관없는 문제"라는 것.

유족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각시탈> 제작사 측은 8일 공식 입장을 내어 '버스공제조합이 사망보험금으로 1억5천만원을 지급할 것이다' '버스운전사의 형사 합의금으로 3천만원도 지급받을 수 있다' '이미 4개 회사는 장례비를 전달했다' 등의 입장을 쏟아냈다. 그동안 박희석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유족들에게 "보험금도 나오는데 왜 자꾸 그러느냐?" "우리들은 이미 할 만큼 했다"며 자신들의 책임을 외면해온 것을 언론을 통해 '공식화'한 셈이다. <각시탈> 방영주체인 KBS의 고영탁 드라마국장은 "미망인이 돈 때문에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자꾸 데리고 와서 시위한다.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보조출연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2006년 직접 '전국 보조출연자 노동조합'을 만든 문계순 위원장은 7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버스회사인 동백관광이 보험을 들어놨기 때문에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은 당연하다. 소품 취급 하듯이 '버스회사에서 나오는 보험금이 있는데, 뭘 더 원하는 것이냐'는 식은 정말 아니지 않느냐"라며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취급'"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각시탈을 촬영하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고이니까, 원청회사인 KBS가 유족에 대해 도의적 책임과 양심있는 사과를 보여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입니다. 그런데, 돈 때문에 딸 데리고 시위한다구요? 보험금이 지급되는데, 뭘 더 원하냐구요? 단란한 가정에서 남편이 <각시탈>에 출연한다고 나갔다가 시신으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조출연자는 '인간'이 아니라 '소품'에 불과한 건가요? 적어도, 김인규 KBS 사장이 사과 한 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김인규 사장은 5월 23일 <각시탈> 제작발표회에 이례적으로 참석해 '유족에 대한 사과' 대신 '(<각시탈>이 대박나면) 종방연에서 만세를 부르자'고 외쳤다.)

   
▲ 문계순 위원장은 보조출연자 조합원들이 드라마 촬영 도중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곽상아

보조 출연자의 역사는 한국의 방송역사 60여년과 궤를 같이하지만, 사망 사고가 벌어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것이 참혹한 현 주소다. 2008년 서울행정법원은 보조출연자에 대해 '개인사업자'가 아닌 '근로자'라고 판결했으나, 현장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말 그대로 '착취의 역사'라 할 만한다. 문계순 전국 보조출연자 노조 위원장은 각시탈 사망사고에 대해 "구조적으로 참담한 처지에 놓인 보조출연자들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노동조합이 없다보니 방송사들은 보조출연자들을 주먹구구식으로, 주고 싶은 대로 돈을 주며 착취해왔습니다. 그나마 2006년에 노조가 탄생하면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방송사가 워낙 거대한 권력 아닙니까? 2008년 서울 행정법원이 '보조출연자는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근로자'로 판결했다고, 저희가 아무리 법에 근거해서 권리를 주장해도, 힘의 불균형 때문에 전혀 먹히지 않아요. 기가 막히죠."

<서울 1945> <연개소문> <황진이> 등의 드라마에 보조출연자로 참여했던 문계순 위원장은 현장에서의 열악한 대우를 참을 수 없어 2006년 노조를 직접 만든, 말 그대로 '목 마른 이가 우물을 판' 경우에 해당한다. 문계순 위원장은 보조출연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던 2006년 6월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6년 6월 29일이었어요. 낮에 보조출연업체에 등록했는데, 저녁에 곧바로 KBS드라마 <서울 1945>에 투입됐죠. 처음에는 정말 굉장히 설레었어요. 내가 TV에 나온다니? 내가 탤런트와 같이 생활한다니? 너무 환상적인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갔었는데, 웬걸? 보조출연의 세계는 말 그대로 '이상한 나라'였어요. 현장에 투입된 이후 잠 한 숨 못자고 72시간 동안 촬영했는데, 보조출연자들을 지휘하는 현장반장이 나이든 보조출연자들을 '이새끼' '저새끼'라는 호칭으로 불러대더군요. 마치 포로수용소에서 '죄인'을 다루는 것 같았죠. 뭐 이런 곳이 있지? 왜 이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조출연자의 세계엔 '노조'가 없더군요."

문 위원장이 '일'을 친 시점은 보조출연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2개월 가량 지난 2006년 9월 초다. 경남 합천에서 드라마 촬영 도중 현장 반장과 보조출연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졌고, 5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단체로 서울로 올라와 버렸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끼리 불만만 토로하면 뭐하냐?" "어떻게 하면 보조출연자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가 오가다가 결국 '노조 설립'에 대해 합의를 이룬 것.

   
▲ 낮은 임금으로 조합비가 몇 십만원밖에 안 되는 탓에, 문 위원장의 '빚'은 이번달로 2천5백만원 가까이 불어났다. ⓒ곽상아

하지만 노조 설립부터 쉽지 않았다. 서울시에 '보조출연자 노조' 설립 신고를 하려고 하니, 담당자가 '보조출연자의 경우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노조 설립이 안 된다'고 했던 것. 당시 문 위원장은 "일 하고 돈 받아가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왜 사업자냐?"며 2시간 동안 실랑이를 반복한 끝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접수했고, 3일 뒤에 '보조출연자노조 신고 필증'을 받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노조 설립 이후에도 '가시밭길'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합원이 1600명에 이르지만 그 중 실제로 보조출연자 일을 나가는 조합원은 100명 남짓인데다 워낙 임금도 낮아 한 달에 들어오는 조합비가 달랑 몇 십만원밖에 안 된다. 때문에, 문 위원장을 비롯해 노조 간부 수십명은 무급으로 일해야 했으며 200만원의 사무실 임대 비용 중 조합비를 제외한 150만원 가량은 매달 고스란히 문 위원장의 '빚'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빚'은 이번달로 벌써 2천500백만원 가까이 불어난 상태다. 그러나 2008년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보조출연자는 근로자'라는 판결을 얻어내고, 3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2009년 보조출연업체와 임금협약을 체결한 것은 분명한 희망이다.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자녀들이 벌어온 돈을 '착취'하고 있는 셈이죠. 오늘까지 잔고를 보니까 마이너스 2천500만원이 가까워지고 있네요. 다 빚이죠, 뭐. 허허. 그래도 노조가 생긴 이후 현장에서의 언어 폭행 부분은 많이 줄어들었어요. 예전에는 조합원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돈도 주는 대로 받았다면, 이제는 목소리도 낼 줄 알고 고민도 하고 불만도 터뜨리죠. 그런데 2009년 맺은 임금협약의 효과를 아직도 못보고 있어 고민이에요…."

   
▲ 2011년 맺은 임금협약에 따르면, 보조출연자들은 추가 수당까지 포함해 일당 15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수당을 제외한 4만2천원만 받고 있다. ⓒ곽상아

다시 화살은 거대 권력인 '방송사'로 향했다. 보조출연자 노조는 2009년 이후 보조출연업체들과 맺은 임금협약에 따라, 하루 일당 외에도 연장ㆍ야간ㆍ철야 수당을 받기로 했으나 아직까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지난해에는 기획사(보조출연업체)를 상대로 '체불임금 청구소송'을 진행해 '체불임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으나 돌아온 답은 '(원청인) 방송사가 돈을 안 준다는 것'이었다.

"방송사들이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일당'에 대해서는 지불합니다. 그런데 연장, 야간, 철야 수당을 주지 않아요. 그동안에는 중간의 보조출연업체들이 돈을 가로챈 줄 알고 3년 동안 싸웠어요. 계속 자료 확인을 못하다가 지난 4월에 관련 자료를 입수했는데, 방송사가 돈을 안준 게 맞더군요. 왜 돈을 안주느냐고 따져물었더니 KBS는 '근로기준법상 수당을 줘야 하긴 하는데, 좀 더 시간을 달라'고 하고 MBC도 '당연히 주긴 줘야 하는데 추가 수당까지 지급하면 연간 100억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 먼저 KBS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식이에요. KBS가 일단 움직이면, MBC와 SBS도 따라갈 것 같은데 KBS가 꿈쩍하지 않아요.

그런데, 작년 내내 이런 구실만 내세우면서 수당 지급을 미루더니 올해에는 담당자들이 전부 인사발령을 받아서 사람이 다 바뀌었고 새로온 담당자들은 '잘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죠. 아니, 계약서 그대로 이행하라는 건데 저희가 요구하는 게 과도한 건가요? 방송사들이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탓에 보조출연자들은 하루 일당으로 4만2천원을 받을 뿐입니다. 수당까지 다 포함하면 일당 15만원인데, 도대체 나머지 11만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저희가 올해 입수한 자료를 근거로, 어떻게 하면 거대 방송사를 상대로 효율적인 싸움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보조출연자들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곽상아 기자  nell@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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