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사건’이 오늘자(30일) 한겨레에 실려 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력 사건과 사립학교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 전혀 상관이 없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100명이 넘는 대규모라는 점에서 그렇고 △2년여에 걸친 기간 동안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태가 이렇듯 심각함에도 해당학교가 교사들에게 이 문제를 공개하지 말도록 종용해온 점 역시 충격적이고 △보고를 받은 대구시교육청도 실태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사건을 감춰왔다는 것도 놀라울 뿐이다. 일단 오늘자(30일) 한겨레에 보도된 내용을 일부 인용한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는데 주력한 해당학교와 대구시교육청

▲ 한겨레 4월30일자 8면.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100명이 넘는 집단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29일 학부모단체, 전교조,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대책위원회가 파악한 실태를 보면, 2006년 1학기부터 최근까지 5-6학년 남학생들이 3-4학년 남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 성폭행과 성추행, 성적 괴롭힘, 성폭력 강요 등 갖가지 성폭력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성폭력은 대부분 남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났으며, 여학생을 상대로 한 집단 성폭행 사건도 여러 차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주로 인터넷에서 포르노물을 보고 이를 흉내내는 방식으로 성폭력을 저질렀으며, 학교 안, 놀이터, 부모가 없는 집 등에서 이런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성폭력 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거론된 학생 중에는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이름도 들어 있어 이런 성폭력이 이 지역의 다른 학교들에서도 광범하게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11월 이 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교실에서 성행위를 흉내내는 학생들을 발견해 상담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하지만 해당학교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그쳤고, 교사들에게 이 문제를 공개하지 말도록 종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보고를 받은 대구시교육청도 실태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사건을 감춰왔다.”

파문이 일 경우 ‘자리’가 온전하지 않은 해당 학교와 시교육청 일부 간부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사안 자체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쉬쉬’는 ‘가중처벌’ 감이다. 피해학생들이 느꼈을 ‘일상적 절망’을 생각하면 이들의 행태는 사실 죄가 무겁다고 봐야 한다.

비정규직 교사,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 가능할까

보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 사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 해당학교가 교사들에게 이 문제를 공개하지 말도록 종용한 것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이 그것이다. 학교 측이 ‘공개불가’라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진상조사 등을 요구한 교사가 없었을까.

물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 사건을 처음 ‘확인’했으면서도 오늘자(30일) 한겨레를 통해 보도되기 전까지 해당 학교에서 ‘공식적인 문제제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상황이 있었겠지만, 피해학생들의 입장을 고려하면 이 또한 쉽게 납득이 되질 않는 부분이다.

▲ 한겨레 4월30일자 9면.
오늘자(30일) 한겨레에 실린 또 하나의 기사를 주목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겨레는 9면에서 사립학교 교사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싣고 있는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일부 인용한다.

“2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16개 시·도교육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신규 채용된 초·중등 사립학교 교사 가운데 비정규직이 무려 85.6%를 차지했다. 특히 경북지역에서는 기간제 교사는 486명을 채용한 반면 정교사 채용은 9명에 그쳐, 비정규직 비율이 98.2%나 됐다 … 서울 ㅈ고등학교 2학년 ㅇ아무개군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 새 학기에 갑자기 등장하면 100% 임시직’이라며 ‘잠시 있다가 갈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말을 잘 안 듣게 된다’고 했다.”

물론 이번 초등교 성폭력 사건과 사립학교 교사 비정규직 증가가 직접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어떤 점’이 있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생존에 급급한 비정규직 교사가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학생들은 비정규직 교사의 말을 잘 들을까, 이런 현실에서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제대로 작동이 될 수 있을까 등등.

이번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은 한국의 교육현장이 어느 정도까지 무너져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의 ‘궤변’

그런 점에서 오늘자(30일) 동아일보에 실린 <전교조, 자녀교육도 전교조식으로?>라는 제목의 홍찬식 논설위원의 칼럼은 좀 엉뚱하다 못해 궤변에 가깝다.

홍 위원은 “교사 집단은 자녀교육에 몇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교육에 관심이 높고 정보에 앞서 있다. 교직의 특성상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는 편이다. 교사들이야말로 자녀를 어떻게 이끌어야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리한지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갑자기(!)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이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계획’에 반대하며 지난 25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 동아일보 4월30일자 31면.
그리곤 이렇게 주장한다.

“교직이라는 안정된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는 교사들이지만 이런 바깥 현실을 모를 리 없다. 교사를 부모로 둔 학생들의 높은 성취도를 보면 오히려 교사 집단이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의 자식들이야 어떻게 되든 ‘전교조식’으로 말하고, 집에 돌아가서 내 자식에겐 현실에 맞춰 대응하도록 하는 건가.”

홍 위원이 말한 교사집단은 아마 정규직 교사에 한정된 집단을 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현장에는 이미 비정규직 교사들이 급증하는 추세에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입시위주의 경쟁체제도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한 몫 거들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특히 전교조가 반대하고 있는 ‘학원 자율화 계획’에는 비정규직 교사 남용을 막기 위해 마련한 ‘계약제교원 운영 지침’을 폐지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 지침이 폐지가 되면 앞으로 비정규직 교사가 더 늘어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럴 경우 교육현장이 어떻게 될까.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건 다 논외로 치더라도 홍 위원이 강조하는 ‘교육수준’과 관련해서도 비정규직 증가는 주목해서 들여다 볼 부분이다. 신분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교사가 늘어날 경우 교육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홍 위원은 ‘교직이라는 안정된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는 교사들’ 운운하며 ‘학생들을 생각하고 배려하라’고 주장한다.

홍 위원이나 교육현장의 실태파악을 좀 제대로 하는 게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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