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폭언 논란 관련해 사과를 하는 임수경 의원 ⓒ연합뉴스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는데….”

소위 임수경 사태에 대한 누군가의 평이다. 사건 자체의 내용은 말 그대로의 해프닝으로 보이기는 한다. 보좌진을 구성한 당일, 처음으로 함께 술을 먹는 자리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하필이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을 만들어 낼만한 상대를 만나게 되리라고 임수경 의원과 그의 보좌진 중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일어나지 않을 만한 일은 결국 일어났고, 그래도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을 만 했던 이 사건이 정국의 뇌관을 건드리면서 사태는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고, 이 사태를 통해 다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우선 해프닝의 발단부터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이 사태의 발단은 임수경 의원과 그의 보좌진들이 정치인의 도(道)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하면서 시작됐다. 누가 자신에게 어떤 입장을 갖고 있든 누군가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달갑지 않은 상대와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침소봉대하지 않을 것을 주문하면 될 문제였다. 그러나 임수경 의원과 그 보좌진들이 택한 방법은 정치적으로 세련된 방법이 아니라 다짜고짜 핸드폰의 사진을 동의도 받지 않은 채 삭제하는 가장 무시무시한(?) 방법이었고 사태는 정확하게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런 무리수를 저질렀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과거에 통일운동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의 탈북자에 대한 일반적 시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통일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정적 입장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다. 지금이야 그러한 일이 많이 줄어들었겠으나 정보가 엄격히 통제되고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없을 때에는 이러한 생각이 꽤 설득력을 가지기도 했다. 문제는 탈북자의 존재가 북한 체제가 사람을 살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그 자체로 증명한다는 데에 있었다. 여기에 대한 통일운동가들의 대답은 ‘탈북자들은 북한 체제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반역을 도모한 자들로 남쪽으로 넘어와 자신들의 목숨을 도모하기 위해 북한의 비극적 실상을 과대포장하여 선전한다’는 것이었다.

소위 ‘고난의 행군’ 등으로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기 전까지 탈북자들에 대한 통일운동의 이러한 시선은 일반적인 것이었고, 오늘날에 와서도 이러한 편견이 일부 존재하고 있을 것임은 쉽게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통일운동의 상징으로 과거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던 ‘통일의 꽃’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 자체로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탈북자에 대한 지원이나 북한 주민의 인권과 같은 문제는 북한 체제에 대한 가장 극렬한 반대 입장을 가진 현재의 새누리당이 선점하고 있는 이슈인데, 오히려 민주통합당은 북한이 주권을 가진 국가이며 주민의 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여기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기본입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에 호의적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어쨌든 긍정적인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앞서 언급한 ‘세련된’ 방식을 굳이 외면한 것은 이들이 갖고 있는 인식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들의 이 쓸데없는 고집은 중국 대륙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일파만파의 사태를 일으키는데, 그것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된다.

첫째는 이미 통합진보당 사태로 인해 일종의 색깔론 정국이 조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임수경 사태가 이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과거 전력 등이 사상검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수경 의원마저 여기에 엮여서 같이 취급당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보수 일간지들은 그야말로 맹폭을 준비하고 있으며 여기에 호응한 보수단체 등이 임수경 의원이 과거 방북을 해 김일성을 만났던 전력을 매우 자극적인 방식으로 부각시킬 것이 눈에 보이듯 뻔한 상황이다.

둘째는 이러한 효과에 의해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로 묶여 있는 민주통합당에 더욱 센 불똥이 튀게 됐다는 것이다. 당장 새누리당이 색깔론 공세를 들고 나왔다. 그동안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 임수경 사태로 인해 그동안 통합진보당 의원들에 한정해서 제기됐던 소위 종북 논란이 민주통합당 측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이는 전통적으로 과거부터 색깔론의 피해를 받았던 민주통합당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는 한명숙 지도부에 의한 공천 책임론이 또 다시 인구에 회자되게 됐다는 것이다. 임수경을 도대체 누가 공천했냐는 물음이 민주통합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올 수밖에 없고 여기에 대한 대답은 ‘친노, 486, 한명숙’ 이라는 형태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 많이 이길 수 있었는데 왜 이 정도 밖에 선전하지 못했냐고 하는, 총선 직후 제기된 ‘친노책임론’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넷째는 치열한 당권 선거의 와중에 임수경 사태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민주통합당은 당 지도부 경선 중이며 차기 당대표로는 이해찬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유력하다. 이해찬 의원이 첫째, 친노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둘째, 19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셋째, 야권연대의 유지를 주장하는 한 축이라는 점에서 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당장 보수 일간지에서는 이해찬 의원의 ‘북한도 UN에 독립적으로 가입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주장을 부각시키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섯째는 결국 당권 선거의 향방에 따라 대권주자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해찬 의원에게 가해지는 타격은 대권주자 문재인 의원에게도 똑같이 돌아오게 돼있다. 이들이 함께 묶여 침몰하면 김두관 지사나 손학규 전 대표와 같은 대권주자들에게 상대적인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렇잖아도 당권선거와 관련하여 벌써 ‘문재인 포위망’이 구축되어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렇듯 임수경 사태는 민감한 정국에서의 사소한 실수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지에 대한 좋은 학습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사태가 앞서 언급한 모든 상황을 다 현실로 만들지는 않겠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도 있듯이 어쨌든 민주통합당 측에는 불리한 요소가 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과연 모 주간지의 진단대로 2012년 대선 국면이 ‘新북풍’으로 치러지게 될 지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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