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한겨레 1면 기사

정치를 스포츠로 본다면 ‘이쪽 진영’은 한 달 내내 두들겨 맞기만 했다. 정치를 완전히 스포츠로 여기는 이들이 “왜 우리편을 때리냐. 조중동 프레임에 갇혔냐”라고 항변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남한 사회의 모든 언론이 한 정당을 ‘조지는’ 희귀한 상황이 근 한 달 동안 펼쳐졌고 그럼에도 그 정당은 스스로 반등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럴 때에 ‘우리팀’의 맏형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결론은, ‘박근혜를 공격한다’.

한겨레가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한 한 수를 꺼내들었다. 이석기·김재연 제명 논란에서 기획한 것처럼 보이나 마침 임수경 막말논란까지 터진 상황이라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방북시절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을 찾은 박근혜의 국가관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이다. ‘회심의 한수’인지 ‘장고 끝의 악수’인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꺼내든 카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해야 할 말’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이 기사의 메시지가 두 겹으로 중층되어 있다는 것이다. 첫째로 한겨레의 박근혜에 대한 질의는 일종의 ‘패러디’의 성격을 지닌다. 사실 남북교류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만경대와 주체사상탑을 찾은 이의 국가관을 묻는 것은 오로지 패러디로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상규가 북핵·3대세습·북한인권에 비판하지 않을 이유로 들이민 논거의 반만 가져와도 그 정도는 옹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인사가 그런 짓을 했을 때 결코 용납하지 못하고 색깔론을 제기할 집단이란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의 질의는 의미가 있다.

▲ 박근혜의원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3일 저녁 평양 백화원초대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박근혜의원제공/2002.5.14 ⓒ연합뉴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에 대한 질의는 공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5.16 쿠데타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은 ‘패러디’를 넘어 적극적으로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국가에 대한 인식을 묻는 것이다. 정치인이 헌정질서를 존중하는지 여부는 유권자와 언론과 시민사회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간 한국의 보수세력은 “얼마나 민주주의를 업수이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북한을 옹호하는가?”란 질문을 던져왔다. 만일 북한에 온정적인 이들이 국회에 들어오는 게 위험하다면 쿠데타를 찬양하는 이들이 국회에 들어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헌정질서는 ‘북괴’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남한 군인들에 의해 전복되곤 했다. 양쪽 모두 충분한 역사적·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질의는 현실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정치적인 효과에 대해선 의문을 던지는 시선들이 대부분이다.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논리적으로야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이렇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말 갑갑하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표했다. “원래는 경기동부연합만의 문제였다. 근데 이걸 조중동과 새누리당이 자기들 이해관계에 맞춰 통합진보당 전체의 문제로, 민주통합당 전체의 문제로 확대했다. 근데 이제 진보 쪽에서 그걸 새누리당의 문제로까지 만들겠다는 건가. 온 사회가 다 종북이라는 건가. 박근혜도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문제삼는 건 아니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이 논란 자체가 정국을 반전시키는 효과는 없고 오히려 새누리당의 공세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시선이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이철희는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라 본다. 저쪽에서 정체성 검증을 시작했으니 이쪽도 할 수는 있다고 여겨진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만 가지고 전선을 형성하는게, 썩 좋아보이진 않는다. 이런 문제제기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로 볼 때 좋지 않다는 거다. 서민들의 삶을 배려하는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지면서 이런 문제제기도 일어나야 좋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 정국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별로 현실정치 차원에서 어떤 반전을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며 이 전략의 한계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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