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 방향을 담은 ‘2008∼2009 치안정책 실행 계획’ 책자 3천부를 만들어 일선 경찰서, 지구대 및 파출소에 배포했음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 책자에는 불심검문 대상자의 범위를 ‘위험 야기자’, ‘특정 시설 출입·체류자’로 대폭 확대하고,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관으로부터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은 시민이 응하지 않을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의 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는 현재의 치안 불안을 빌미로 전국민을 범죄자로 간주하는 반인권적 계획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불어 인권탄압을 위한 공안정국 조성 의지가 있는 것은 않은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국민은 어디로든 이동할 자유를 갖고 있음을 우리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권리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 제한할 수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불심검문을 할 수 있는 경우와 그 절차, 동행 및 진술거부권 등을 규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이동할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로 한정하는 것이다.

경찰이 불심검문의 대상자를 ‘위험 야기자’, ‘특정 시설 출입․체류자’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적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치안 대책을 핑계로 추상적인 대상 설정을 통해 모든 국민, 특히 집회장 등과 같은 특정 장소를 출입하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불심검문하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4년 전에 많은 이들이 위헌의 소지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불심검문시 신분증 제시를 하지 않은 시민을 벌금 등으로 처벌 하겠다는 것은 불심검문과 수사의 차이를 구분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민등록법 제26조 1항은 ‘사법경찰관리(사법경찰관리)가 범인을 체포하는 등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17세 이상인 주민의 신원이나 거주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 주민등록증의 제시를 요구할 수 있으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신원을 증명하는 증표나 그 밖의 방법에 따라 신원이나 거주 관계가 확인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한정하여 인근 관계 관서에서 신원이나 거주 관계를 밝힐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신분증 제시요구가 범인 체포와 같은 수사의 방법으로만 허용될 뿐이지, 불심검문과 같은 수사단서의 방법으로는 허용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설령 이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것은 너무도 반인권적 정책이다. 제시 불능자를 처벌하려면 결국 그의 신분을 알아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현장에서 연행하거나 그에 대한 자료를 몰래 수집하여 차후 검거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들에게 순순히 신분증을 제시하여 무고함을 알리거나, 연행되는 길 외에 없음을 선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까닭에 경찰의 불심검문 강화 방안이 ‘치안정책’이라는 책자에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무관한 과거 군사독재정권 방식의 ‘공안정국 조성정책’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범죄자를 검거하기는커녕, 수많은 인권 피해 사례를 양산할 ‘반인권적 정책’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일을 기회로 불심검문 대상자의 불특정성, 경찰관 권한의 불명확성과 같은 현재의 「경찰관직무집행법」 조항을 친인권적으로 개정할 것을 촉구한다. 그것이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안전을 수호할 의무를 갖는 경찰이 진정으로 할 일이다.

경찰은 이번 불심검문 대응조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치안불안 심리를 이용한, 반인권적 조치를 남발하고 있다. 치안불안을 배경으로 쏟아지고 있는 대책들은 CCTV확대설치, 휴대전화 GPS 장착 등 주로 전 국민을 감시대상으로 하는 대책이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의 인력배치 문제 등 실질적인 종합 계획 없이 발표되는 방침 등은 결국 치안부재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경찰은 치안부재의 상황을 틈타, 국민 위에 군림했던 과거로 회귀하려는 발상을 현실화 시키고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가 그동안 이루었던 모든 민주적인 성과를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을 통한 독재 국가의 통제사회로 되돌리려는 반역사적 대응이며, 인권에 대한 동시다발적 도전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찰의 과거회귀 정책과 반인권정책을 결코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경찰은 자신들의 임무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지, 국민을 감시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2008년 4월 28일
인권단체연석회의(전국 37개 인권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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