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이 1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면담 여부와 관련해 “그런 면담은 계획돼 있지 않다(No such meeting is planned)”며 공식 부인했다. 망신이다. 그냥 망신이 아니라 국가적 망신이다.

▲ 한국일보 10월3일자 8면.
이 같은 어이없는 해프닝이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일까. 오늘자(3일) 아침신문을 살펴보면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강영우 정책위원과 한나라당의 ‘오버’에서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황을 종합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명박-부시 면담 성사…확정적으로 보도한 언론

우선 강영우 위원과 한나라당의 ‘처신’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번 면담과 관련해 강 위원은 백악관으로부터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이 서한 자체가 면담계획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검토하겠다고 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외교적인 어법’을 통해 백악관이 완곡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강 위원이 이를 확대 해석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강 위원이 면담과 관련해 너무 성급히 공개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맥락이 닿아 있다. 한국일보는 오늘자(3일)에서 “강 위원이 면담과 관련된 사전 정지작업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면담 추진 과정을 밝힌 것은 ‘자신이 관여해 성사시킨 일’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보도했다.

한나라당의 경솔한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겨레가 3일자 사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면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떠벌린 셈이 된 한나라당과 이 후보 쪽이 크게 망신스럽게 됐다.”

사실 이번 면담 추진은 △대선을 불과 3개월 정도 앞둔 시기에 ‘추진’됐고 △공식적인 외교통로가 아니라 ‘사적 라인’을 통해 면담을 추진했다는 점 △특정후보에 대한 미국의 ‘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면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 한겨레 10월3일자 사설.
보수신문의 ‘오버’ …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 우회적 표출?

하지만 이 점을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중앙일보의 경우 지난달 30일자 1면에서 ‘이명박-부시 면담’이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번 면담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정치적 부적절성’은 아예 언급하지 않은 채 정부에 대한 불만이라는 식의 ‘정치적 해석’을 내린 셈이다.

▲ 중앙일보 9월30일자 1면.
중앙일보의 이번 면담과 관련한 보도는 ‘문제’가 많다. 지난 2일자 보도 역시 논란을 빚었다. 중앙은 이날 1면에서 “부시와 이명박의 면담을 막기 위해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압박을 넣고 있다”는 강 위원의 인터뷰 내용을 싣었는데 근거가 매우 불명확하다. “부시 대통령과 이 후보의 면담 결정이 알려지자 미 행정부에 많은 항의와 압력이 들어왔다고 들었으며, 이는 면담을 막아보려고 한국 정부가 그랬을 것이 뻔하다"는 식이다.

별다른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인 셈인데, 중앙은 이를 1면에 배치했다. 이해가 안간다. 상식적인 판단 영역을 벗어날 땐 '정치적으로' 읽어야 한다. 중앙일보 지면 전략의 ‘정치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는 말이다.

이번 해프닝은 공식적인 외교통로가 아니라 ‘사적 라인’을 통해 면담이 추진되면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이 말은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강영우 정책위원 ‘발언’을 유심히 살피기만 했어도 단정적인 보도를 피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공식통로를 벗어나 사적인 라인을 통해 특정 국가의 야당 대선후보를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대다수 언론은 강 위원과 한나라당의 일방적 발표를 근거로 면담 성사를 기정사실화 했다. 심하게 말하면 강 위원과 한나라당의 ‘언론플레이’에 언론이 ‘놀아났고’ 이로 인해 국가적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언론 책임론'을 제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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