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내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왼쪽), 일각에서 도전자로 거론되고 있는 김두관(중앙), 그리고 여전히 정치권 입문을 하지 않았지만 가장 지지율이 높은 야권후보인 안철수(오른쪽). 세 사람 모두 PK 출신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오늘 저녁 7시 부산대 총학생회가 요청한 대학 특강에서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사실상의 대선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강연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란 주제로 강연 30분과 질의응답 30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원장의 강의 기조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우리 시대에 주어진 과제'를 복지·정의·평화라고 밝히고 이를 이루기 위해 소통과 합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지만, 부산대 총학생회가 보내온 질문에는 대권 도전 문제에 대해 피해가기 어려운 질문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 '출사표'도 'PK 대망론'?

이에 안원장이 특유의 완곡어법의, 그러나 이전보다는 진일보한 답변으로 대권 도전 의사를 피력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안원장이 정치인 출신인 유민영 전 춘추관장을 개인대변인으로 영입했고 부산 지역 외곽조직이 안철수 지지를 말하며 결집하는 정황이 드러나는 등 결단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징후는 뚜렷하다.

그런데 언론과 호사가가 안원장이 부산대에서 출사표를 던질 것을 기대하는 것에서 드러나는 어떤 편향이 보인다. 안철수의 ‘부산 선언’을 기대하는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민주당 등 야권을 감싸고 있는 PK 대망론이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사실상 부딪히는 것으로 알려진 두 주자인 문재인과 김두관은 둘 다 PK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재인 고문은 금년 총선에서 ‘낙동강 벨트’ 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하여 절반의 성과는 거두었고 김두관 지사는 이미 2010년 총선에서 “신라로부터의 가야의 독립”(굽시니스트 시사in 만화의 표현)을 이루었다. 이에 덧붙여 안철수 원장이 대권 행보를 밟는다 하더라도 야권 주자들은 사실상 ‘PK 대망론’을 따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권에서 말하는 소위 ‘PK 대망론’은 민주당의 지역기반인 호남과 수도권의 정권심판 정서에 부산 경남의 지지를 일부 이끌어낼 수 있다면 승리가 가능하다는 정치공학이다. 물론 이것은 한편 1990년 김영삼의 3당합당 이후 분열된 영호남 민주세력의 통합을 복원시키려는 기획일 수도 있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김영삼계와 PK를 영남 민주세력의 상징으로 보는 관점은 많이 상실된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일종의 정치공학일 수밖에 없는 기획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편승하여 야권의 ‘정석’으로 자리잡은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볼 시점이다. 설령 ‘PK 대망론’이 현재 야권에서 가장 매력적인 정치공학일지리라도 적어도 당권·대권 경선과정에서는 다른 종류의 가치연대나 정치공학과 경쟁해야 할 텐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새누리당의 고민이 박근혜와 붙어서 흥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주자가 없다는 것이라면, 야권의 고민은 드러난 주자들의 정치공학이 고만고만하다는 것일 게다.

'지역'보다 '계층' 주목해야

일군의 정치평론가들에게 “야권의 ‘PK 대망론’ 올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물어보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고 이택광 경희대 영문과 교수는 “과거의 경험에 집착하는, 말하자면 'again 2002'에서 나온 착상이다”고 촌평했다. 박권일 <자음과 모음> 기획위원은 “공학적으로 틀린 판단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철희 소장은 이제는 야권이 ‘지역’이 아니라 ‘계층’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호남당의 영남후보’라는 노무현의 전략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전략적으로 지역연합 집권 전략을 추구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이게 유효하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의 ‘출신지 지역주의’가 거주지역에 따라 분화해 나간다고 진단했다. 가령 수도권에 사는 호남출신들은 더 이상 고향의 호남사람들과 같은 의식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소장은 이제 수도권의 호남출신들은 똑같이 민주당을 찍더라도 민주당의 서민정책을 보고 찍는다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의 경우 이미 계층별 지지정당의 분화가 시작되었고, 이 추세를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민주당의 의무라는 것이다. 2002년 선거에선 세대론을 활용하여 2~30대를 동원했지만 이번 선거에선 세대론으로 사회적 약자인 청년층을 동원하는데에도 한계가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이소장은 “대권후보의 출신지역이 PK라면 그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PK 대통령’이란 구호로는 해당 지역 유권자가 동원이 안될 것”이라며, 야권이 기본 키워드나 정체성을 지역이 아니라 서민으로 가져갈 때 희망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또 이소장은 “이번 총선 때 부산 경남에서 40%를 얻었단 사실을 야권이 너무 기계적으로 끼워 맞춰 해석하고 있다. 이 지지율은 이 지역 비여성향 표의 합계를 보여주는데, 총선 대에 가능했던 반MB 정서의 최대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정권심판론이 희석되고 인물론이 극대화되는 대선정국에선 박근혜가 이 표를 다시 흡수해갈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그는 “PK라는 지역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영남의 못 사는 사람들이 지역이 아니라 다른 잣대로 투표할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할 게 아닌가?”라 반문하면서 내세워야 하는 건 지역이 아니라 계층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노무현 전략'의 답습,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투항

이택광 교수는 “수도권이나 전라도나 충청도는 자신들이 커버가 가능하다 생각하고 경상도를 어떻게 갈라먹느냐 골몰하는 것이 'PK 대망론'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이 전략은 ’노무현 전략의 답습‘이라는 것이다. 이교수는 “정치를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고 물은 후 “박근혜의 지지층과 안철수의 지지층이 겹치는 이유를 기존의 정치공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2002년 대선 때 투표했던 70% 중 상당수가 정치영역에서 벗어나 투표유동층이 되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권일 기획위원은 ‘PK 대망론’이 야권의 대선주자를 박근혜의 대항마로만 생각하는 담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박위원은 “대선을 5년간 국정을 이끌어 나갈 최고 지도자를 뽑는 선거로 이해하는 ‘기본’은 사라지고 다들 ‘박근혜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만을 고민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것이 만연하는 상황은 설령 그 전략이 공학적으로 틀린 판단은 아닐지라도 여러 정치세력의 가치 및 철학이 상실되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박위원은 급기야 “결국 ‘PK 대망론’ 자체가 박근혜 중심의 사고이며, 심하게 말하면 박근혜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고 진단했다.

결국 민주당 및 야권이 유일하게 골몰하는 정치공학이 ‘낡은 질서’일 수 있다는 데에 복수의 평론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시대정신에 대한 면밀한 탐구없이 오른손에 나꼼수를 왼손에 통합진보당을 잡고 총선에 임했다 패했던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두손으로 받쳐드는 정치공학이 얼마나 시대를 대변하는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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