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지난 2006년 4월6일입니다. 대학 노조 사상 최장기간인 215일 동안 파업을 벌였습니다. 당시 노조의 파업을 두고 사회적 논란은 물론이고, 대학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이른바 ‘파업권’과 ‘학습권’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해야 하는 지를 두고 교직원과 학생들간에 ‘마찰’까지 빚어졌기 때문이죠.

당시 한국외대 노조가 파업을 강행했던 이유는 단체협약이 파기됐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학교 측이 인사·징계위원회의 노조원 수(위원 9명 중 4명이 노조)를 줄이겠다며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자 노조가 이에 반발해 전면파업에 돌입한 것이지요. 지난 2006년 4월18일자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언급돼 있습니다.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파기하면서 시작된 노조 파업

▲ 경향신문 4월28일자 12면.
“노조는 ‘한국외대 당국이 19년 간 노조와 맺어왔던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30년 근속한 직원을 사유없이 직위해제 했다’며 ‘조합원 48명 개개인의 가정에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엄중 조치하겠다는 총장 명의의 공문을 수차례 보내왔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이후 학교 측은 일부 노조원에게 ‘노조에서 탈퇴하면 단체협약을 하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단체협약이 지난 2월 만료되고, 학교 측이 3월 초 해지 통보를 해오면서부터 학교본부와 교직원 노조 간의 대화는 단절됐다.”

하지만 215일간의 기나긴 ‘싸움’은 노조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반발이 상당히 거셌던 데다,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한국사회의 여론과 대다수 언론의 ‘반노조적 시각’ 등의 요인이 얽히면서 외대노조 입장에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파업 장기화로 조합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네요.

당시 한 신문의 사설은 한국외대 노조의 파업사태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비타협적 노동활동은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없어 결국 실패한다는 점, 그리고 툭하면 파업부터 벌이는 잘못된 노사관계를 바로 잡는 데는 무노동 무임금 등 사용자의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의 필요성을 보여준 것이다.” (서울경제 2006년 11월8일자 사설 ‘한국외대 노조 장기파업 실패의 교훈’ 중)

‘학습권 침해’에 가려진 노조의 기본권 침해

노조의 파업종결 직후 외대측은 “자신의 권한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주장해온 노조에 맞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관철하는 등 법과 원칙을 중시해온 학교측의 승리”라는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 감히(?)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잊혀진 사건이 돼버린 ‘외대노조 파업 사태’가 엉뚱하게(?) 법원에 의해 다시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법원이 당시 노조의 파업에 대해 상당히 ‘전향적인 판결’을 내렸기 때문인데요, 많은 언론이 외면했지만 4월28일자 경향신문이 사회면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 소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일부를 소개합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27일 한국외국어대 노조원 정모씨(37·여) 등이 파업 기간 중 내려진 징계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단체행동권 보장을 위한 단체협약 규정을 어긴 징계는 무효’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 파업 당시 학교 측은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조합원 15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 노조 측 징계위원들이 불참한 상태에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노조 측은 노동위원회에 ‘징계가 부당하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쟁의기간 중 조합원에 대해 징계 등 인사조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단체협약 조항을 들어 노동위의 결정을 뒤집었다.”

학교측의 징계에 대한 법원의 판결 자체도 이례적이지만 더 주목해서 들여다볼 부분은 단체협약에 대한 재판부의 다음과 같은 ‘판단’입니다.

▲ 서울경제 2006년 11월8일자 사설.
법원 “한국외대측의 행위는 부당 노동행위”

“단체협약 조항은 징계에 따라 노조 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고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파업이 정당한 목적과 절차에 따라 시작됐기 때문에 쟁의 방법상 잘못이 있더라도 파업 도중 조합원을 징계한 것은 무효다. 학교의 행위는 노조 운영에 개입하려는 의도 아래 이루어진 부당 노동행위다.” (경향신문 기사에서 인용)

경향신문도 해당 기사에서 언급을 하고 있지만 “이번 판결은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 확산과 이에 힘입은 무리한 징계가 잇따르는 가운데 법원이 노조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는 곤란하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노조가 정당한 절차에 따라 파업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파업에 돌입했다면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내릴 수 없다는 말이지요. 단체협약에 그런 조항이 명시돼 있을뿐더러 파업은 법률이 명시한 노조의 기본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 학교 측의 징계조치는 법적인 테두리를 뛰어넘는 ‘여론재판식’ 성격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대다수 언론이 외대노조의 파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점 그리고 학생들이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습권 침해’를 주장하며 파업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배경 등에 힘입어 학교 측이 ‘부당한 징계’를 감행한 성격이 짙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회적인 여론은 정말 소수였습니다.

물론 ‘쟁의 방법상 잘못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법에 명시돼 있는 노조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징계조치를 학교측이 행사할 권한은 없습니다. 사실 이건 상식에 속하는 영역인데, 우리 사회는 노조의 파업과 관련해서는 이 상식의 힘이 잘 작동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비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하자

아쉬운 것은 학생들의 학습권의 침해에 대해선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노조의 기본권 침해를 너무 당연시했다는 점입니다. 학생들 역시 자신들의 학습권만 침해받는다고 생각을 했을 지 몰라도 그들도 ‘예비노동자’들입니다. 노조의 기본권 침해는 예비노동자 입장에서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입니다.

사실 당시 외대 노조가 파업 중일 때 교수 한 명이 파업참가 여성조합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프레시안 등에서 이를 보도했는데, 이 사안 역시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수라는 신분으로 이 같은 발언을 용감히(?) 할 수 있는 것은 당시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배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점에서 이번 법원 판결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시 프레시안에 난 기사 일부를 인용합니다.

“외대 노조의 한 여성 노동자에게 이모 교수가 ‘가슴 보인다. 가슴이나 닫고 다녀라’는 발언을 해 성적 수치심을 준 것이다. 가해자였던 이모 교수는 다른 여성 조합원에게도 ‘예쁜 것하고 얘기하니까 말도 잘 나오네’라며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다. 당시 한국외대 노조는 학교의 일방적인 단협해지 통보와 조합원들에 대한 파면, 해고, 정직 등의 중징계에 맞서 100여 일 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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