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가 어느덧 4주차를 맞이했다. 지난 주말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종북주의가 문제’라고 한마디 했을 정도로 여전히 파급력이 크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이제 뾰족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호 ‘버티기’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혹자는 치킨게임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할 수 있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버티기에 가깝다. 시민들의 관심도 초창기에 비해선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 이와 같은 방식의 관심 저하가 결코 자신들에게 좋은 일은 아닐 거란 것이 야권의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보수언론에게는 ‘아름다운 3주일’이기도 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사건이 터져주었고, ‘부정선거’와 ‘주체사상파’를 증언해줄 사람을 얼마든지 골라낼 수 있었다. ‘소설’과 ‘짜집기’를 통해 무리한 결론을 도출해야 했던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조선일보의 경우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된 다음날 3일 ‘민주주의의 죽음’을 1면에서 말한 이후 12일과 21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통합진보당 관련 기사를 1면에 실었다. 12일과 21일에도 통합진보당은 종합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회심의 반격을 노린 총공세였고, 상대방의 약점을 발라내는 해부실습이었다. 그들이 바란대로 지지율의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 지난 7일 조선일보 1면 기사. 7개월만의 박근혜 역전을 전하면서 얼마나 기분이 째졌을까.

물론 우리는 조선일보의 통합진보당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로 몰상식했는지, 뒤집어서는 어느 정도나 상식적이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통합진보당의 문제와 상황대처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를 평가하는 데 필요한 일일 것이다. "조선일보의 아름다운 3주일"을 유형별로 소개한다.

주워먹기

▲ 3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자극적이지만 부인하기 힘든 제목으로 최초의 사건을 소개한다.

선명한 글씨, 감각적인 조어로 사태의 심각성을 화끈하게 전달한다. 뭘 더 꾸미고 할 것도 없다. 이 사태의 시발을 알리는, 주워먹기의 대표적인 사례다.

▲ 5일자 조선일보 1면.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통합진보당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주워담았다. 왼손은 거들 뿐...

구당권파가 진상조사위 보고서를 부인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선일보는 할 일이 많아졌다. 아니, 특별한 취재없이도 이 문제를 가지고 주구장창 기사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역시 대단한 '주워먹기'다.

▲ 14일자 조선일보 1면.

마침내 문제의 폭력 사태가 터진다. '통합주먹당'이라 불려도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 19일자 조선일보 1면.

구당권파 두 당선자의 새로운 꼼수. 두 사람이 "이만하면 여론이 잊겠지" 싶어 무언가 대책을 강구하면 할수록, 여론은 더욱 더 달아올랐다.

지나간 부정보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사건들이 터지긴 했지만, 이럴 때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만 쓴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과거 통합진보당 출신 인사들의 과거를 밝히는 길을 택했다. 민주노동당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냈던 주대환의 발언을 끌어왔고 대리투표가 없다는 그들에게 노동자의 발언을 들이밀었으며 일심회 판결문을 다시 들춰보았고 민주노동당 출신들의 미심쩍은 재산형성 문제를 파헤친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도 공익에 부합하는 활동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당권파는 '조중동 프레임'이란 이름으로 이것들을 '소설'로 규정하는 마법을 부렸다.

▲ 지난 4일자 1면. 과거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으로 NL과 대립한 경험이 있는 주대환을 불러들여 내부비판을 시도했다.

민주노동당 시절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주사파'의 문제가 부각되었다. 부인할 수 없고 새겨들여야 하는 과거 증언을 가져다 놓되 그 위에 '주사파'란 낙인을 덧씌우는 식이다.

▲ 9일자 조선일보 4면. 그들은 '일심회 사건' 얘기가 다시 나올 줄 몰랐단 말인가?

▲ 9일자 조선일보 4면. 하긴 그들에겐 '일심회 사건'도 검찰의 조작극이긴 하다.

'일심회 사건'의 개략과 이것이 분당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주는 기사들이다. 독자들에게 통합진보당 구당권파가 원래 이런 막무가내들이란 걸 알려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문제는 여기 담긴 내용이, 대체로 사실이라는 거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란 이유로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제명을 거부했던 2008년 민주노동당의 오만은 이렇게 세월이 지나서까지 '빚'으로 돌아왔다.

▲ 23일자 조선일보 4면. 급기야 '주사파'들의 재테크 실력이 화제에 오른다. 정치인의 처신엔 공소시효가 없다.

재산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다면 억울하겠지만 이 정도 의혹제기는 진보세력이 보수 정치인에게도 늘상 해왔던 바가 아닌가?

주사파 불러내기

현재와 과거의 문제를 관통했으니 이제 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차례다. 그대의 이름은 주사파, "안돼! 안돼!! 원내진출 막아야 해!!!! 사람 불러야 해!!!!"라는 조선일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들이 주사파이기 때문에 이러한 짓을 한다는 주장은 섣부르지만 자극적인 편집 속에서 충분한 근거를 갖춘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 15일 조선일보 5면.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저런 선정적인 제목으로 요약했다는 게 참 놀랍다.

▲ 18일자 조선일보 4면. 이석기 당선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똑똑히 전해준다. 이때의 경력이 지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설명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 24일자 조선일보 3면. 어느덧 통합진보당의 문제는 사라지고 그들이 주사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시각만 남았다.

위 기사들 중 강종헌에 대한 증언은 다른 증거를 찾아내기 힘들겠지만, 이석기 등과 관련된 것들은 적어도 재판을 거친 것들이다. 민혁당 사건으로 형을 살았던 이석기가 스스로 전면에 나왔기 때문에 조선일보도 이석기를 주요한 타겟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이석기 본인이야 자신의 '양심의 법정'에서 떳떳하겠지만, 당원들도 잘 모르던 이를 느닷없이 내세워 조직력으로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를 하게 만든 일의 결과가 이렇다.

‘석기’시대의 사냥

대중은 복잡한 서사를 거부한다. 이를테면 모두가 장자연 사건에 방상훈 사장이 개입되어 있기를 바라는데, "방사장은 그 동생 방영훈이었더라"고 하면 오히려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대체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서사적인 구도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그런 부분을 정확히 알고, 이석기를 사실상 주체사상파로 단정지으면서 그의 '지도'를 받는 이들은 당연히 주사가 아니겠느냐는 논리(?)를 펼친다. 단순하지만 먹히는 얘기다.

▲ 9일자 조선일보 4면. 이석기의 견해가 중점적으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 18일자 조선일보 4면. 이석기 당선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똑똑히 전해준다. 이때의 경력이 지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설명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석기의 과거 경력이 현재의 사태를 설명한다고 말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석기로서는 '현재의 이석기'라 하더라도 북한 문제에 대해 답변할 말이 궁하기 때문에 졸지에 과거경력 전체를 호구잡히게 된 상황이다.

▲ 19일자 조선일보 1면, 이석기와 참여정부를 동시에 비판한 기사, 이런 걸 일타쌍피라고 부른다.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이제는 참여정부 시절의 사면 경력까지 문제가 된다. '친북'의 이미지를 민주당으로까지 확대하기 위한 효과적인 기동이다.

부풀리기

마지막으로 부풀리기다. 통합진보당이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그것들을 받아쓰고 과거 경력까지 털었음에도 지면을 채우는데엔 어려움이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건 때 정부를 비판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활용해서 비판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부풀리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 23일 조선일보 3면 기사. 당원명부를 가져간 것은 인권침해의 위협이 있을 뿐, 유령당원 문제를 밝혀냄에 있어 어떤 효과적인 수단이라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신다. 전형적인 부풀리기다.

▲ 조선일보 25일자 1면. 통합진보당 학생당원을 공권력이 다루기 힘들어 했다는 사실이 1면 톱에 나가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경찰이 보이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웃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놀라웠단 말인가?

신문의 주요 지면을 채우는 이 기사들에선 사실이랄 것이 별로 없다. 섣부른 추정이나 단정 혹은 비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일보가 '아름다운 3주일' 동안 이런 기사를 썼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하지만, 이것을 이유로 그들의 통합진보당 비판이 송두리째 오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여러가지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사실보도를 한 측면이 있고 언론으로서 제기할 수 있는 의혹을 제기한 측면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3주간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무책임한 행동은 진보진영 전체가 선 채로 이 매를 다 맞도록 하는 결과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3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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