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가 때아닌 수난을 겪고 있다. 전남 대불공단의 전봇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뽑혀나가면서 전봇대는 우리사회에서 제거돼야 하는 '걸림돌'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전락해버렸다.

대다수 기업들이 규제 완화를 요구하면서 '규제 전봇대'를 뽑아달라고 말하면 더 그럴싸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의 요구와 주장을 대변하면서 '규제 전봇대'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전봇대를 뽑아내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전봇대와 아닌 전봇대를 제대로 가려내는 철학과 전문성이다.

▲ 전자신문 4월 29일자 5면

방송통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고 미디어 산업의 활성화와 진흥을 위해 필요하다면 규제의 실효성과 의미를 따져 완화하거나 없애는 것을 검토하고 추진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지 사업자들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한 규제 완화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게다가 사업자별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중첩돼 있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때 언론이 놓쳐선 안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바로 '미디어 공공성'과 '이용자'의 관점이다. '산업적 성과'와 '공익적 목표'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디지털 전환과 융합의 혜택이 이용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업계가 지적하는 '불필요한' 규제와 수용자 권리, 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필요한' 규제가 무엇인지부터 가려내야 한다. 사업자들에게 불리하거나 귀찮은 '규제 전봇대'를 모조리 뽑아내는 것이 효율성과 경쟁력 확보인양 포장한다면 곤란하다.

▲ 전자신문 4월 29일자 사설

전자신문은 29일자 사설 <통방 '규제 전봇대' 빨리 뽑자>에서 "출범 원년인 방통위의 과제는 명확하다. 통신과 방송의 적절한 융합과 시너지로 5년내 160조원의 생산 효과와 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혁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신규 서비스 활성화를 가로막는 여러 '규제 전봇대'를 이른 시일 안에 과감히 뽑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효과 유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산업적' 목표에 따른 신규 미디어 서비스의 활성화, 그리고 이를 위한 규제 완화라는 시장주의 공식에 충실한 내용이다. 물론 이같은 '공식'은 이명박 정부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일관된'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같은 시장주의적 방향에 대해 언론계의 우려와 반발이 큰 것도 사실이다. 언론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규제 정책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이에 대한 고민은 뒷전인 채 사업자 위주의 규제완화, 시장주의 정책만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신문도 이날 사설에서 업계의 수익성과 서비스 품질을 연결시키면서 진입규제 완화 등 공정경쟁의 필요성만 강조했을 뿐 방송통신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과 방안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전자신문은 이와 관련해 "인터넷TV를 비롯해 3세대 이동통신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업계의 수익성은 이전만 못한 상태"라며 "이런 참에 정부가 각종 규제로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이는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오는 하반기 서비스 예정인 IPTV에 맞서 케이블TV의 규제도 보다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IPTV든 케이블TV든 서비스를 저렴하고 좋은 품질로 누릴 수 있도록 시장 진입 규제를 완화하고 공정경쟁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자신문 스스로 지적했듯이 "방송과 통신은 공익성과 주파수 자원 같은 특수성 때문에 오랫동안 규제의 틀에 갇혀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언론을 무조건적인 시장 흐름에만 내맡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방통융합에 따른 신규 서비스 도입으로 미디어 시장이 새롭게 재편되고 있고, 초대 방송통신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미디어 규제 정책의 방향과 내용도 큰 틀을 잡아나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무분별한 신규 서비스 도입만이 능사가 아니라 시청자·소비자 중심의 보편적 서비스 정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언론의 감시와 방향 제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IPTV 등 유료미디어 서비스 시장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가격 규제 정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자'의 관점만 있고 '이용자'의 관점이 빠져선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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