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중앙일보 16면 기사

지난 16일에서 17일 사이엔 어떤 경로로든 뉴스를 소비하는 이들이라면 ‘나이트 꽃뱀’이란 말을 한 번쯤은 들을 수 있었다. 방송뉴스, 중앙일간지, 스포츠신문을 막론하고 수십 개 매체에서 이에 대한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방송도 신문도 보지 않는 이라도 피하기 어려웠다. 포탈 사이트 메인화면에 그 뉴스들 중 하나 정도는 링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도는 술집주인에 의해 고용된 여성들이 나이트에서 만난 남성을 미리 짜둔 술집으로 유인하여 부당이익을 챙기는데 협조하고 일정 수당을 받는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수법 및 내용은 지난 몇 년간 익히 들어왔던 것이지만 다시 보도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물론 실제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경찰서 출입경험이 있는 다수의 일간지 기자들은 “당연히 그런 일이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 사실 경찰서에 있다 보면 별별 사건을 다 본다”고 말한다. 익명의 한 기자는 “그런데 경찰이 각을 잡고 미리 보도자료를 써서 뿌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여러 매체가 받아간 경우는 그런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16일과 17일에 나온 모든 기사는 서울 강서경찰서의 수사내용을 ‘소스’로 삼고 있다. 확인해본 결과 실제로 강서경찰서가 보도자료를 뿌린 사건이었다. 지난 9일에도 ‘나이트 꽃뱀’ 기사가 쏟아진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대전 둔산경찰서의 보도자료가 ‘소스’였다. 한 달 사이에 두 개의 경찰서가 ‘나이트 꽃뱀’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발송한 것이다.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왜 하필 ‘나이트 꽃뱀’일까. 기자들은 “경찰서 입장에서는 수사성과를 자랑하고 싶을 때, 언론들이 좋아할 ‘야마’의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뿌리는 것이 쉬운 방법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나이트 꽃뱀’은 분명히 보도되기 좋은 아이템이다. 그래서 이것은 끊이지 않는 사건 중에서도 경찰이 언론을 위해 던져주는 ‘떡밥’으로 간택될 수 있다.

▲ 지난 17일 경향신문 12면 기사
이런 보도가 방송으로 가면 정치·시사 이슈를 밀어내는 데에도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민언련은 뉴스브리핑에서 15일에서 16일 사이 민간인 불법사찰에 청와대가 관여된 정황이 속속들이 발견되었음에도 방송3사에서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민언련은 “특히 SBS는 '술자리 폭행사건', '나이트 꽃뱀' 사건보다도 뒤에 사찰 관련 보도를 배치해 기준에 의구심을 자아냈다”고 비판한다. 미모의 여성에게 홀려 비싼 술값을 지불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이 청와대가 관여한 불법사찰에 대한 문제의식은 흐려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극적인 뉴스는 신문사에게도 좋은 장사거리가 된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오른다면 엄청난 트래픽을 잡아챌 수 있을뿐더러, 포털에 걸리지 않는 경우라도 클릭수를 늘리는데 도움이 된다. 무슨 종류의 기사를 읽었든 간에 독자들은 관련 기사 링크에 ‘나이트 꽃뱀’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가 적혀 있다면 일단 클릭하고 본다. 검색으로 확인해본 결과 다수의 언론사에서 ‘나이트 꽃뱀’ 기사를 사건사고·스포츠·연예기사는 물론이고 정치기사에서도 관련기사로 배치하고 있었다. 이 제목이 독자들의 클릭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꽃뱀’이란 키워드엔 물론 ‘나이트’만이 붙지는 않는다. 최근 뉴스만 확인해 봐도 ‘여고생 꽃뱀’, ‘여대생 꽃뱀’, ‘탈북자 꽃뱀’, ‘도박단 꽃뱀’ 등 조합은 수도 없다. ‘여대생 꽃뱀’은 주로 ‘나이트 꽃뱀’과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조어이고, 최근 회자된 ‘여고생 꽃뱀’과 ‘탈북자 꽃뱀’은 채팅에서 만난 남성을 밖으로 끌어낸 후 음주운전을 유도하여 돈을 뜯어내는 사기단에 여고생과 탈북여성도 끼어 있다 하여 각기 다르게 붙인 이름이다. 사건이 제각각이라도 ‘꽃뱀’이라는 키워드를 붙일 수 있고 사건이 대동소이하더라도 ‘꽃뱀’ 앞에 다른 조합을 갖다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한 일간지의 경찰서 출입기자는 “사기사건의 유인책으로 여성이 동원되는 사건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의 경우는 대개 보도에서 ‘꽃뱀’으로 표기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경찰이 언론에 뿌릴 수 있는 보도자료의 개수도 엄청나게 늘어난다.

▲ 물론 이런 꽃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연합뉴스
‘꽃뱀’이란 말의 용례가 처음부터 이렇게 넓은 것은 아니었다. ‘나이트 꽃뱀’이란 키워드로 기사검색을 해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의 사건들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때의 ‘꽃뱀’은 술집과 짜고 부당이익을 챙기는 수준이 아니었고 나이트에서 만난 남성을 모텔에 데려가 잠자리를 같이 한 이후 간통죄나 혼인빙자간음죄로 협박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2008년까지 진행해 보아도 나이트클럽을 무대로 다수의 유부남들을 꼬셔 성관계를 맺은 후 금품을 갈취한 사건이 ‘강남 꽃뱀’ 혹은 ‘20대 꽃뱀’으로 호명되어 나타날 뿐이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시점부터 성관계까지 암시하지 않더라도 여성을 활용한 사기사건 일반에 ‘꽃뱀’이란 표현을 붙이게 된 것이다. 2009년으로 넘어가면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성을 도박판으로 유인한 후 약물을 먹인 뒤 사기도박을 벌여 수천만을 뜯어내는데 협조한 여성들을 ‘꽃뱀’이라 칭하는 기사가 나타난다. 그리고 드디어 “2차 술값 바가지 씌우는 나이트 꽃뱀 ‘주의보’ ”란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2009년 9월 주간동아의 한 기사 제목은 <돈독 잔뜩 오른 ‘꽃뱀의 진화’>다. 단발성 범죄에 해당했던 고전적인 꽃뱀이 다양한 장기 범죄 수법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다룬 기사다. 당시 경찰 관계자들은 “요즘은 사기사건 중에서도 꽃뱀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라고 말했고 기자는 “경기불황을 꽃뱀 범죄 증가의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와 권위 향상, 이혼 급증, 독신녀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범죄율을 높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범죄가 늘어났다는 식의 분석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건 단견일 것이다. 사건이 늘어나는 것 이상으로 보도가 늘어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앞서 시사했듯 ‘시사뉴스를 싫어하는 이 정권의 속성’을 질타하며 “이것은 모두 이명박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인터넷 포탈을 통한 뉴스 소비가 증가하는 새로운 미디어환경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없을까. 한국 사회가 ‘나이트 꽃뱀’을 이런 방식으로 소비하는 이유에 대해 문화평론가 이택광은 이렇게 말한다. “ ‘상품은 창녀다’라는 말에 드러나듯 자본주의 자체가 성매매를 내재하는 측면이 있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려면 ‘유혹의 기술’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표상된다”. 그래서 여성이 유혹을 통해 남성의 몫을 갈취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여성은 사회적인 이슈의 전면에 등장하며 비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 2010년 여성들이 낀 사기도박단 사건 조직의 계보를 설명하는 전북 군산경찰서 수사과장의 모습. 물론 이 사건 역시 '꽃뱀'사건으로 호명되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비하는 두려움에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이택광은 “자본주의가 어려워지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생각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유럽에서 근대화의 진행과 여성 노동계급의 윤락화라는 현실을 두고 ‘팜므 파탈’이란 개념이 창궐한 것과 비슷한 문맥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시선에서라면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는 걸그룹에 대한 열광과 XX녀에 대한 지탄, ‘나이트 꽃뱀’에 대한 공포는 함께 엮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유혹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 대가가 너무 비싸지는 않기를 바라는 모순된 욕망의 시대를 관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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