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언론에 대해 어떠한 규제도, 지원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시장주의에 입각한 언론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언론계의 우려와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립하고, 부당한 혜택 제공과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일견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한 사회의 여론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언론을 시장의 흐름에만 맡기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규제도 지원도 없다? 특정 자본 의도적으로 대변하려는 것인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지난 25일 제주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등 4개 학회가 공동 주최한 학술세미나에서 △5공 체제 청산 △미래적 관점 △종합적 접근 등 3가지를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 기조라고 소개하며 "정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입법, 행정적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동아일보 4월 28일자 8면
신 차관은 이날 "언론계에 여전히 5공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데, 선진국답게 언론과 정부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할 것"이라며 "미디어계에 다양한 현안과 과제가 가로놓여 있는 만큼 종합적으로 검토해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미디어 관련 법안 손질과 관련해서는 "공영방송의 소유형태, 신문방송 겸영, 방송통신 융합과 같은 문제를 하나씩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디어 관련법을 모두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다양한 현안과 내용이 얽혀있는 만큼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일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28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9월 정기국회에서 신문법 재개정을 계기로 나머지 미디어 관련법도 한꺼번에 고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앞으로 언론에 대해선 어떠한 규제도, 지원도 없을 것"이라는 신 차관의 발언은 향후 시장주의와 산업화에 입각한 언론 정책의 철학과 방향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 차관은 28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언론계에 시장 원리를 적용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문화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디어 그룹이 탄생해야 한다"고 말해 시장주의 언론정책 추진 의지를 거듭 밝혔다. "현재 시급한 것은 언론의 난립을 해소하는 것이고,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매체는 자유롭게 퇴출될 수 있도록 하는게 맞다"는 것이다.

"9월 정기국회 일괄처리? 충분한 의견수렴, 사회적 합의 이뤄질까"

다양한 이해관계와 첨예한 논쟁이 예상되는 미디어 관련 법안에 대해 정부가 처리 시점을 못박아 일괄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언론계에서는 충분한 의견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무시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영호 대표는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정책 변화가 있으려면 여론 수렴과 대안적 논의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논의를 생략하고 일괄처리한다면 이것은 군사정권 시대와 다를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의 공공성에 대한 현 정부의 철학적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민언련 정연우 공동대표(세명대 교수)는 "언론에 대한 규제도 지원도 없다는 신 차관의 발언은 언론을 시장에서 사고 파는 상품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며 "언론을 시장에 맡기면 여론 다양성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시장의 강자가 언론을 장악해 저널리즘이 무너지는 필연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언론의 역할과 공공성에 대한 철학이나 깊이있는 고민이 아예 없던가, 아니면 의도적으로 특정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논리인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미디어 법안을 일괄처리한다면 시민사회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5공 잔재 청산은 KBS 2TV·MBC 민영화?"

특히 공영방송 소유구조와 관련해, 신 차관이 밝힌 '5공 청산'의 대상이 KBS 2TV와 MBC 민영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도 불씨가 될 전망이다. 5공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것이 당시 통폐합된 언론사를 사적인 기업과 개인에게 다시 넘기겠다는 의도라면 "언론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차관은 28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언론계 5공 청산의 의미'에 대해 "80년 5공 정권이 들어선 이후 KBS 2TV가 생기는 등 언론 통폐합이 있었다. 현재 MBC 소유구조도 5공 때 탄생했다"는 내용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신 차관은 "반드시 민영화를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5공 청산의 차원에서 MBC 소유구조는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혀 MBC의 소유구조 개편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드러냈다.

현재 언론현업·시민단체에서는 '1민영 다공영' 체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KBS 2TV와 MBC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으며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규제완화 방침에 대해서도 여론 다양성 침해를 이유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