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 3면에는 <진보당, 당권파·비당권파 분당만은…“안돼!”>라는 제목의 통합진보당 내 그간의 갈등양상을 정리하는 기사(링크)가 실려있다. 기사의 작성자는 정치부 석진환 기자이다. 그런데 기사를 자세히 읽어 보면 동의하기 힘든 구절들이 많다.

▲ 오늘자 한겨레 3면

가령 기사는 당권파에 대해 “폭력 사태로 그동안 자신들이 주장해왔던 정치적 정당성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됐다”고 분명하게 평가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애초 사건의 발단인 비례대표 경선 문제에 대한 평가는 생략했다. 기사는 “보고서의 부실이 일부 드러나긴 했지만, 이미 발표된 진상보고서의 파괴력은 자신들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수준의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보고서의 부실 문제에 대해서는 일부 드러났다는 사실판단을 내리면서, 보고서의 결론인 ‘총체적 부실·부정선거’가 올바른 평가인지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한 것이다. 그 결과 문제가 되는 것은 진상보고서의 결론이나 진실이 아닌 그 ‘파괴력’ 뿐이다.

진실을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들자 당권파가 져야 할 책임도 ‘정치적 해법’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치부된다. 기사는 “당 전체의 침몰을 막기 위해 한발 앞서 정치적 해법을 내놓아야 하는 시점인데도, 개인의 억울함과 결백을 주장하며 이 문제를 ‘진실 규명’ 수준으로 이해한 것”이 당권파의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즉 진실 규명 차원에서는 당권파도 할 말이 있지만 대중의 분노와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는 설명이다.

기사는 “당권파는 이석기 당선자의 거취 문제 역시 ‘이 후보의 부정이 드러난 게 없지 않으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비판을 ‘문제는 진실 규명이 아니라 정치적 해법’이란 논법으로 가져가는 것도 사실상 당권파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한 면죄부라는 것이 기자의 판단이다. 진상조사위의 결론은 이석기의 부정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었고 누가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선거 자체가 부정이 만연했던 정황이 뚜렷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전국운영위에서부터 의결되어 우여곡절 끝에 중앙위원회를 통과한 쇄신안은 당권파만 사퇴하라는 것이 아니라 비례대표 경선이 부정했으므로 경선에 참여한 이들이 일괄사퇴하라는 논리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 쇄신안에 대해 ‘누가 부정을 저질렀는지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왜 당권파만 왜 책임을 지느냐’라는 항변하는 건 사실상 논점일탈인데, 이 논점일탈을 아무런 설명 없이 그대로 받아 쓰는 것도 불공정한 일이다. 물론 이러한 ‘불공정’은 석진환 기자의 기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기사는 비당권파의 책임도 거론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기계적 중립을 위해 억지로 균형을 맞춘, 아니 균형을 붕괴시킨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기사는 “통합진보당의 미래가 암울한 것은 앞으로 당을 맡게 될 비당권파의 정치적 타협 능력 역시 미숙하다는 점에 있다. 비당권파들은 진상조사보고서를 근거로 비례대표 경선을 ‘총체적 부실·부정’으로 규정하고, ‘경쟁부문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자 전원사퇴, 비례대표 1석 반납’을 대외적으로 선언해버렸다.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사태 초반부터 타협의 여지를 없애버린 측면이 있다. 조사보고서의 부실에 불만을 갖고 있는 당원이 꽤 있는데도 비당권파는 ‘일부 미흡한 점이 있다’고만 했을 뿐 사과도 없이 정면돌파를 택했고, 이는 갈등의 수위를 키운 원인이 됐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는 비당권파가 사실상 여론전이란 수단 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굉장히 편향적인 비판이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이 ‘총체적 부실·부정’에 해당했다면 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들의 일괄 사퇴를 요구하는 비당권파의 쇄신안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 쇄신안에 의문이 간다고 주장하려면 경선이 ‘총체적 부실·부정’이라는 진상조사위 결과에 대한 어떠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기사는 이 영역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경선이 부정했는지 아닌지는 건너뛰고 ‘정치적 타협’을 말하니 석진환 기자가 말하는 정치적 타협이 무엇인지가 난망하다. 이를테면 조준호가 보고서 결과발표를 언론에는 하지 않고 당내에서 지도부를 압박하여 의원구성은 그대로 가되 유시민이 당대표 및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이 올바른 방안이었을까? 아니면 보고서 발표 후 유시민·심상정·조준호 등이 보고서의 결론에 대해서는 일부 후퇴하면서 이석기와 김재연 둘 중 한 명 정도의 사퇴만 이끌어내는 ‘정치적 타협’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합리적인 방안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경선 문제에 대한 완벽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세밀한 사안을 모두 검증하는 2차 진상조사에 시간을 허비하면서 그들의 원내진출을 위한 시간 끌기에 적당히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타당한 방안이 되었을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안들이 그저 문제가 대외에 노출되지 않도록 덮거나 몰상식적 상황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기사가 말하는 ‘정치적 타협’의 실체가 무엇인지 난감하다.

▲ 8일자 한겨레 4면

문제는 석진환 기자의 불공정한 기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자 기사와 비교해서 볼 만한 것으로 8일자 4면 기사인 <이정희-유시민 ‘갈등본색’>이 있다(링크). 이 기사는 오늘자 기사처럼 노골적으로 당권파의 해명논리를 부각시키지는 않은 작은 박스 기사이지만, 통합진보당의 갈등을 이정희와 유시민이라는 두 인물의 것으로 축소시켰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좋게 봐준다면 이 사태에 지친 독자들에게 드라마 관람의 여흥을 제기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이번 사태를 유시민 등 참여계의 권력욕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당권파의 입장에 힘을 싣기 위한 섬세한 여론공작이라 말할 소지까지 있다. 이런 기사가 비슷한 의중을 보여주는 칼럼 및 기사 몇 개와 엮어질 때에 우리는 여론을 호도하거나 조작해 내려는 언론의 의도를 읽어낸다. 조선일보 등을 비평할 때 흔히 쓰는 방식이다. 그러나 석진환 기자의 기사처럼 한겨레의 전체 보도기조와도 거리를 둔 듯한 기사가 특정 개인에 한해서 거듭 올라오면, 이것이 상업성을 위한 역할놀이인 것인지 개인의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반영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9일자 1면과 2면에 실린 이석기 인터뷰 역시 비슷한 느낌을 주는 기사다(링크). 당시 한겨레는 강도 높게 통합진보당과 당권파의 처신을 비판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언론에서 당권파의 실세로 지목된 이석기의 해명을 듣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석기의 해명을 실었다고 해서 한겨레가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지면에 실린 비판이 희석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비판하는 대상에 대한 해명권 및 반론권을 적극 보장한 후 비판을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을 감안하더라도 석진환 기자의 이석기 인터뷰는 그를 향한 모든 비판에 해명할 기회를 주었을 뿐 그 이상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놀랍다. 심지어는 인터넷 한겨레에 공개된 전문을 보았을 때도 그렇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보고서가 부실이란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세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이석기의 견해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 맨 처음에 소개한 기사에서 그랬듯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근거들을 고찰해보려는 노력은 생략되고 그저 양측의 공방만을 남겨두었다.

▲ 9일자 한겨레 2면


석진환 기자의 활동이 지면에 반영된 것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제보도 있다. 10일자 민중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10일자 경향신문 1면에 나온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당시 총투표율이 100% 넘는 선거구가 적어도 2곳이 넘는다는 보도는 원래 한겨레에도 실렸던 것이라 한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김승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한겨레도 우리한테 확인도 안 하고 3판까지는 1면에 실었던데, 우리가 항의를 해서 기사를 내렸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나온 이정희 의원의 언론보도 항의 보도자료에도, “통합진보당에 이 의문점을 공식적으로 문의해온 언론은 한겨레신문 뿐”이란 대목이 나온다.

확인 결과 애초에 한겨레에서도 1면에 나갈 예정이었던 그 기사를 쓴 이는 석진환 기자로 알려졌다. 익명의 한겨레 기자는 “3판까지는 나갔던 그 기사는 석진환 기자의 것이었고, 석기자가 통합진보당 측의 해명을 들은 후 기사가치가 없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하여 내려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문제는 ‘민중의 소리’ 보도만 보아서도 알기 힘들고 이정희 측 보도자료를 살펴야 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문제가 된 충남 공주의 경우 3월 3일 선거인 명부 확정시 총당권자가 90명이었다. 그런데 4월 29일자로 확정된 총투표자가 92명이라 투표율이 100%가 넘는다는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정희 측이 밝힌 사실관계는, “3월 3일 당시 직장 기준 천안, 연기 등 지역위원회 소속의 당권자들 23명이 투표 이후 진행된 거주지 기준 당적 정리 과정에서 4월 13일경 공주로 당적이 변경되었다가 5월 8일 해당 지역위원장의 요청으로 다시 천안, 연기로 당적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한겨레가 경향신문과는 달리 통합진보당의 해명을 요청한 것은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으나, 이 해명만으로 기사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 정당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정희 측의 해명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검증할 방도는 없다. 이 사건을 제보한 이들은 늘어난 이들이 ‘유령당원’이라 의심했고 이정희 측은 다른 지역에서 옮겨 온 실체가 있는 당원이라 주장한다. 해명을 들었으니 두 주장을 함께 쓴다면 이해가 가지만 제보에 기사가치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3월 3일 선거인 명부 확정 이후 대체 왜 선거인 명부가 지역을 오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동이 필요했다 하더라도 선거인 명부가 확정되기까지 이동이 되지 않았다면 이동이 되지 않은 그 선거구 소속으로 투표하는 게 훨씬 더 상식적이다. 온라인 투표가 가능했고 지역단위 선거도 아니었는데 지역을 오갈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필 비례대표 경선(3월 14일~18일) 직전인 3월 13일(보도자료엔 4월 13일이라 적혀 있으나, 맥락상 3월 13일의 오기로 보인다)에 당적 변경을 한 후 선거결과가 나온지 한참이 지난 4월 29일에야 총투표자를 확정했다는 점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당권파의 논법을 뒤집어 쓰자면 ‘부정은 아니더라도 부실’인 상황이 명백한데, 그에 따라 의혹이 제기되었다면 제기한 사람을 탓할 게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면 될 일 아닌가. 지역위원회별 득표현황도 없고, 미투표자가 누군지도 확정을 못하는 상황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맞춤형 해명’만으로 믿어달라고 주장해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최근 한겨레의 보도 기조와도 사뭇 다른 석진환 기자의 기사가 이런 식으로 실리는 이유에 대해선 이전 기사에서 언급했던 ‘맏형 콤플렉스’의 관점에서 보려는 시선이 많다. 진보언론의 상황을 아는 관계자는 “한겨레는 무슨 사건이 터지면 ‘우리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진보진영을 옹호할 세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진영의 ‘맏형’ 노릇을 하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는데 보도 기조와는 거리가 있더라도 당권파에 약간 우호적인 시선이 관철되는 것도 그런 종류의 균형감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익명의 한겨레 기자는 “한겨레라는 조직의 분위기가 현장에서 강하게 얘기하면 윗선에서 찍어 누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 정도 상황이면 개인 성향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되었건 최근 진보언론들이 진보정당 내부의 치부 문제를 적극 보도하면서, 그간 문제를 어느 정도는 알면서 쉬쉬한 진보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자성론까지 대두되는 상황이다. 양비론적 관점을 적극 설파하는 석진환 기자와 이를 지면에 품는 한겨레의 그 '균형'이 ‘밸런스 패치’인지 아니면 ‘밸런스 붕괴’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석진환 기자 ⓒ한겨레
한겨레 석진환 기자와 직접 전화통화를 하면서 기자가 비판한 내용들에 대해 차례로 물어보았다.

- 오늘자 기사가 기계적 양비론으로 쓰여진 것 같다.
“어떤 부분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비례대표 경선의 부정수위에 대한 얘기나 진상조사위 보고서 결론에 대한 판단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정치적 타협 문제로 비당권파에게 책임을 넘기는 부분이 그렇게 느껴졌다.
“그간 한겨레의 여러 기사에서 진상조사위 보고서 결론을 긍정했고, 그에 입각하여 숱하게 비판했다. 내 기사만 보고 그런 식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지면에는 역할분담이란 게 있다. 차장, 부장, 국장 거쳐 가며 검증되는데 내 기사 하나만 보면서 한겨레의 성향을 비판하거나, 반대로 한겨레 성향은 이런데 이 사람 기사만 왜 이러냐라고 비판하는 것 양쪽 모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 이석기 인터뷰의 경우는 어떻게 보나. 한겨레에서 거의 유일하게 접촉에 성공한 상황이었는데, 상황에 관련해서 좀 더 센 질문을 해야 했던 게 아닐까.
“이석기 당선자에 대해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많았던 상황 아닌가. 왜 한겨레를 택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지는 기자의 권한에 속하며 그 적절함은 데스크에서나 판단할 문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늘 기사에서 생략된 부분과 마찬가지로, 진상조사위 보고서에 대한 질문이 더 섬세했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진상보고서에 이석기에 대한 내용이 나오나. 하나도 없다. 당시 이석기 당선자에 대해서 수십 개의 언론에서 접촉도 없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쓰는 상황이었다. 인터뷰한 내용은 당연히 훨씬 더 길었고 그 과정에서 정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버려진거다. 진상조사위 관련 질문 답변에 별다른 내용이 없어서 그것만 나왔다. 반대로 나는 전체 맥락과 관련없이 3대세습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주변에서는 왜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던졌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 투표율 100% 이상 선거구 의혹 제기는 1면 기사를 쓰셨다가 빼신 걸로 알고 있다. 검증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통합진보당 해명과 의혹제기를 함께 쓸 수 있는 것 아니었나?
“왜 검증이 안 되었다 생각하나. 검증이 된 상황이다. 해명을 들었고, 설명이 되는 구나 생각해서 기사를 뺀 거다. 가령 도둑질한 혐의가 있는데, 그 혐의를 부인하는 설명이 합리적이면 혐의를 거두는 게 상식적이다. 특히 1면에 나가려고 했던 기사였다. 확실한 의혹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사를 뺐다. 세상에 자기가 쓴 1면 기사를 내리고 싶은 기자가 어디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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