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복제개로 24일 세 번째 생일을 맞은 스너피가 다음 달에 아빠가 된다.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는 이날 암컷 복제개 보나와 호프가 인공수정으로 스너피의 새끼들을 임신했다고 밝혔다. 현재 보나와 호프는 임신한 지 한 달 정도 지났다. 개의 임신 기간인 60일 정도가 지난 다음 달 20일경 출산할 예정이다. 새끼들이 무사히 태어나면 세계 최초의 복제개 자연 번식 사례로 기록된다.”

25일자 동아일보가 13면에서 보도한 <복제개 스너피 내달 2세 탄생> 가운데 일부다. 세계 최초의 복제견인 스너피가 ‘2세 만들기’에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이 소식은 동아일보 뿐만 아니라 국민일보와 세계일보 서울신문 등을 비롯해 일부 경제지와 YTN과 SBS(24일) 등 방송사들이 보도했다.

▲ 동아일보 4월25일자 14면.
논문 없는 ‘연구결과’ … 언론플레이 ‘의혹’

문제가 있다. 서울대가 25일 오후 공식입장을 통해 반박한 것처럼 “언론에 연구성과를 알릴 때는 연구처를 거치도록 한 서울대학교의 지침을 수의대가 위반했기” 때문이다. 우선 국양 서울대 연구처장의 말을 들어보자.

“수의대가 스너피 2세의 임신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간 것은 연구성과를 발표할 때는 논문 게재가 승인된 이후 연구처를 통해 알리도록 한 학교의 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관련해서 주의를 촉구하고 경위를 밝히도록 요구하는 공문을 수의대에 보내겠다.”

서울대가 이처럼 발끈하고 나서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제는 ‘잊혀진 일’이 돼버렸을지 몰라도 한국 사회를 국제적으로 떠들썩하게 만든 ‘황우석 파문’의 여진이 아직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대는 줄기세포 논문 조작 파문에 따른 대안마련 차원에서 논문으로 검증되지 않은 연구 실적을 사전에 언론에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복제개 스너피가 2세를 가졌다는 언론보도는 이 ‘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황우석 파문’ 주역(?) 가운데 하나였던 수의대 이병천 교수가 논문을 통해 검증받지도 않은 연구결과를 언론을 통해 공표했고, 이것은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말이다.

아직도 ‘받아쓰기’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들

물론 서울대 국양 처장의 말대로 “이번 연구가 본질적으로 성공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논문이 나와야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언론의 보도행위도 이뤄져야 한다. 논문 자체가 검증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복제개 스너피 보도는 ‘한국언론의 시계’가 지난 2005년 황우석 파문 이후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지난 2005년 11월30일 과학기자협회는 황우석 파문과 관련해 자성 차원에서 ‘과학보도 윤리지침’이라는 걸 만든 적이 있다. ‘과학보도 윤리지침’은 ‘황우석 파문’을 계기로 그동안의 언론관행으로부터 탈피하겠다는 과학기자 나름의 다짐과 선언을 위한 지침서였다.

▲ 국민일보 4월25일자 2면.
‘과학보도 윤리지침’의 대략적인 내용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 및 발명에 관한 취재 및 보도는 연구팀 관계자 등 이해당사자의 발언에만 의존하는 것을 지양하고 이해관계가 없는 국내외 관련 전문가의 견해를 반드시 확인한다 △과학적 사실에 관한 취재 및 보도를 함에 있어 결과를 함부로 예단하지 않는 것은 물론 추측보도를 자제한다 등이다.

‘교훈과 반성 없는’ 이병천 교수와 언론들

하지만 이 ‘윤리지침’을 이번 복제개 스너피 2세 보도에 적용시키면 모두 ‘위반’이다. 그런 점에서 ‘스너피 2세’ 보도는 문제가 많다. ‘과학보도 윤리지침’이 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한국 언론이 지난 2005년 ‘황우석 파문’을 거치면서도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SBS 4월24일 <8뉴스>
연합뉴스가 2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울대 국양 처장은 “황우석 전 교수의 경우도 논문을 발표하기도 전에 언론 홍보를 통해 연구비를 타내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수의대로부터 보도 경위에 대한 해명을 들은 뒤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나마 서울대측이 ‘황우석 파문’에 따른 교훈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하지만 이병천 교수는 여전히 그대로인(?) 듯 싶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 교수는 “스너피의 출산 3주년을 기사화하러 찾아온 기자의 취재에 응하던 중 임신 사실을 언급했을 뿐이다. 아직 (서울대로부터) 공식적으로 받은 것이 없으니 공문을 받고 판단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에 보도된 내용인데, 거칠게 말하면 언론 탓이라는 소리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파동을 겪고도 아직 ‘저런 소리’ 하는 거 보면 이 교수는 교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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