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가 사들고 온 모래시계를 제법 유용하게 쓰고 있다. 제 딴에는 양치질을 3분씩 해야 한다며 욕실에 놔두고 사용하는데 욕실에 모래시계가 도입되면서 나도 시간의 개념을 좀더 명확하게 접하게 되었다. 모래시계를 사용하니 3분 동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아까운 3분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한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때 마다 내 인생은 3분 단위로 새롭게 펼쳐지는 느낌이다. 뒤집어진 모래는 야속하게도 쑥쑥 내 인생을 잠식해간다. 3분도 그냥 흘러가는데 1분은 얼마나 허망하게 쓰이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1분1초도 허투루 쓸 수 없을 것이다.

소중한 1분, 방송사의 라디오 캠페인

▲ MBC 라디오 홈페이지.
방송하면서 1분의 소중함을 새롭게 알았다. 뭐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노래 한곡 나가는 동안 사무실에 가서 물 한 컵 떠올 수 있고, 커피 한 모금 들이킬 수 있으며 아주 급할 때는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다. 의외로 1분 동안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기도 한다.

수용자의 입장에서 1분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캠페인을 접할 때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운전할 때 라디오와 가장 밀착돼 있는데 정규 방송중 MC의 멘트가 가슴에 콕 박히는 경우도 있지만 1분 캠페인에 더 주목하게 된다.

MBC 라디오 캠페인 <잠깐만~ 우리 이제 한번 해봐요>는 오랜 친구가 되었다. 아이템이 고갈될 법도 한데 매번 다른 아이템으로 시의적절하게 관심을 모으고 변화를 촉구한다는 점이 경의롭다.

MBC 라디오가 사라져가는 구전 민요를 찾아 기록하기 위해 1989년부터 시작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대단한 프로젝트다. 특히 프로그램 도중 흘러나오던 40초짜리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SPOT은 유익하고 가치있는 작업이다. 20대부터 듣던 이 방송을 내가 PD가 되어서 들으니 긴 글보다 짧은 글 쓰기가 어렵듯이, 많은 음원 가운데 '딱 그부분만 적확히' 편집하여 방송하는 능력에 더욱 감탄하게 되었다.

▲ KBS 라디오 홈페이지.

최근 들어 KBS 제1라디오 캠페인을 재미있게 들었다. 봄철 프로그램 개편 시기에 앞서 한시적으로 방송된 자사 이미지 캠페인이었는데 시의적절한 관심사를 끌어들여 주제를 향해 치닫는 흡입력이 대단했다.

때론 멘트로, 때론 현장음을 살려 청취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아이디어와 편집이 돋보였다. 한 사람의 청취자로서 공감했고 제작자 입장에서도 부러운 재능이었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지역 방송의 유형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데 방송사에 따라 특화된 캠페인도 관심이 많았다. 감동이 있는 책 구절을 소개하기도 하고, 지역 문제와 관련된 논의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캠페인은 물론 광고 재원 창출과 맞닿아 있지만 "무슨 의도로 기획했느냐"에 주목한다면 가치있는 캠페인이 더 많다고 본다.

'문화 칼럼' '열린 FM 희망칼럼'…희망의 메시지

▲ 원음방송 홈페이지(http://www.wbsfm.com/).
우리 전북원음방송에서도 화합과 건전한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공익 캠페인을 다양하게 내보내고 있는데 <문화 칼럼>과 <열린 FM 희망칼럼>이 4~5년 넘게 방송되고 있다. <문화칼럼>은 인문학의 가치와 실용화에 관심을 갖고 원광대학교 인문학과 교수와 쉽고 가치있는 인문화의 실용성에 대해 칼럼으로 제작, 100초로 방송되고 있는데 인문학의 보급이라는 점에서 보람있는 작업이다.

<열린 FM 희망칼럼>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과 제언, 희망을 담은 메시지를 담아내는 방송이다. 물론 본인의 목소리로 방송된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찾아가는 마이크' 서비스인 셈인데 강한 시사성 멘트도 있고 감성어린 에세이도 있다.

최근 시인이자 꽃예술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 싱그러운 메시지를 전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저는 꽃을 사랑하는 꽃예술작가 윤현순입니다. 며칠 전 화분갈이를 했습니다. 고비를 넘긴 꽃들이, 숨통이 트이고 새 기운을 얻으면서 생기를 되찾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더군요. 우리 마음에 찬 바람이 스쳐간 흔적도 이렇게 꽃처럼 새 힘을 받아서 화사한 희망으로 바꿔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보고싶은 사람, 혹은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람까지도 마음의 화분갈이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마음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아프게 했던 사람은 고마운 인연, 새로운 인연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해봤습니다. 화분갈이로 새 힘을 받고 더욱 향기를 뽐내는 꽃처럼 이 계절, 마음의 화분갈이로 싱그럽고 생명력 넘치는 계절을 열어가시면 어떨까요?"

한편의 시 낭송을 듣는것 처럼 편안하고 감성적이었다. '마음의 화분갈이'라는 표현이 너무 신선했고 나도 큰 감동을 받았다.

1분 방송…라디오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

최근 어린이를 대상으로 성행하는 범죄가 많은 시기에 동네 어린이를 대상으로 취재를 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초등학교 4학년짜리 둘째 아들이 저도 할 말이 있다며 마이크를 잡는다. 엄마로서 철부지 녀석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어 반신반의하며 녹음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전주중산초등학교에 다니는 4학년 조영서입니다. 제가 어른들한테 드리고오~ 싶은 말은요.
다시는 어린이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어린이를 괴롭히지말고 아들이나 딸처럼 사랑스럽게 친절하게 대해주면 좋겠어요
나쁜짓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착하게 대해주면~ 이 세상이 친절로 가득해지고요~
어린이들이 다시 어른이 되어가지고 자기보다 나이 쩍은 애들한테
친절하게 대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친절로 가득한 나라가 될거 같아요
친절로오, 세상이이~ 좋아질 거 같애요"

특히 마지막 부분, "친절로오, 세상이 좋아질거 같애요"에서는 어른으로서 어린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느껴졌다.

엄마의 입장에서 보아온 작은 아들은 그동안 우리 집의 공식 개구쟁이로, TV와 냉장고를 비롯 각종 가전제품을 절단내고 엄청난 수리비 내지 교체비를 들이게 한 귀여운 말썽쟁이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선 초등학교 4학년 어린아이는 마이크 앞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제발 어린이를 대상으로 나쁜 짓 좀 고만하고 아들 딸처럼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대해주라"며 어른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지 않은가!

<열린 FM 희망칼럼>이 방송되는 하루 두 번, 나는 조영서 어린이의 말을 들으며 나 역시,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어린이의 말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며 이 아이들이 마음놓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고민해야한다는 자극을 받았다.

방송에서 만나는 1분, 그것은 라디오라는 매체만이 가질 수 있는 감동이 아닐까. 수용자의 입장에서건 생산자의 입장에서건 1분의 감동을 만나는 일, 라디오 방송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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