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진상조사위원회의 발표결과가 나온 것이 5월 2일의 일이다. 그후 한겨레는 3일자에 사설과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의 칼럼, 4일자 사설, 7일자 사설, 8일자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칼럼, 9일자 사설을 통해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비판하고 그들의 사퇴를 종용했다. 3일자 사설과 칼럼은 애정어린 비판이라 볼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4일 이후에는 추상같은 비판이 나왔다. 7일에서 9일까지는 ‘진보정치의 재구성’이라는 제목의 3회 특집 기사까지 실었다.

경향신문 역시 3일 사설, 4일 사설, 7일 사설을 통해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집중 비판했고 기사의 경우 한겨레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당권파를 문제삼는 모습을 보여줬다. 프레시안 역시 3일자 TOP에 이정희를 비판하는 전홍기혜 정치팀장의 데스크 칼럼을 올렸고, 4일 TOP에는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당시 행태와 함께 꼬집는 윤태곤 기자의 기사를 올렸다. 5월 7일에는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의 <통합진보당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제목의 칼럼을 TOP에 올렸다. 비교적 민주당과 진보정당에 우호적인 편이던 오마이뉴스 역시 사건 발생 이후 통합진보당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메인에 올려주고, '본업'(?)은 매체비평인 미디어오늘조차 연일 통합진보당을 비판하는 필진의 글을 받거나 코멘트를 따고 있다. 진보언론들로서는 지난 일주일 동안 통합진보당을 이보다 더 센 강도로 비판할 수 없었다고 여겨진다.

▲ 5월 7일자 한겨레 사설(왼쪽)과 경향신문 사설(오른쪽). 진보정치세력이 같은 날 양대 진보언론 사설에서 이 정도 강도로 비판받은 적은 일찌기 없었다.

그런데도 ‘경기동부’로 이름지워지는 당권파는 요지부동이다. 그들은 부정 경선으로 선출된 모든 비례대표 후보 사퇴라는 전국운영위의 쇄신안을 거부하고 있다. 비례대표 2번 이석기는 당원 총투표를 주장하고, 비례대표 3번 김재연은 청년 비례대표 선출은 공정했다고 말한다. 이정희 대표나 우위영 대변인은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부실 내지 부주의를 부정으로 바꾸는 오류가 있었다고 역공을 편다. 그 사이 당의 지지율은 반토막 났다. 통합진보당의 비당권파 관계자는 “이번 주 초에 이석기와 김재연이 사퇴했으면 밑바닥을 찍고 반등할 수도 있었는데 고집을 부리니 방도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보언론 종사자들의 시각은 어떨까. “위기상황 중에 (당권파의) 본질이 드러나는 게 아니겠느냐”는 비판과, “원래 (당권파는) 언론 말을 잘 안들었다”는 한탄이 교차했다. 한 진보언론 기자는 “진보언론 입장에서는 모든 걸 다 했다. 들이댈 수 있는 온갖 관점에서 전반적 비평을 다 했다. 이젠 더 쓸 수 있는 게 없다. 쓰려면 도대체 왜 이렇게 버티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는 기사를 써야할 지경이다”라고 한탄했다. 다른 기자는 “언론도 지치게 만들어서 더 이상 안 쓰게 만들려는 전략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 5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당권파를 정면으로 지목하는 방법을 택했다.

‘버티기’가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엇갈렸다. 한 기자는 “이미 국민적 심판을 받는 상황이다. 이제 이석기까지 호출당했다. 여기서 버티면 더 이상 자기들 조직보호도 안 된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하려는 뭔가가 있다면, 그 뭔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근데 왜 버틸까. ‘멘붕’ 상황이라 그런다면 그건 또 이해가 가는데, 혹시 이석기가 흑막이 아니라 배후에 숨겨야 하는 누구 한 명이 더 있기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버티기’를 통해 경기동부도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다른 기자는 ‘버티기’의 정치적 의미를 분석했다. 그는 “사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국면에서도 진보언론은 NL의 행태를 많이 비판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진보언론의 조언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며, 이어진 총선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때 상황의 ‘학습효과’가 아닐까 싶다. 지금와서 권력을 놓는다고 진보언론의 지지를 받을 수도 없으니, 현실정치의 차원에서 당장 가질 수 있는 권력을 좇는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경기동부가 생각하는 바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진보언론 종사자들의 예상이었다. 한 기자는 “사실 언론판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건 조중동이다. 근데 이 건은 조중동의 주요한 이슈다. 2008년 분당 사태 때도 조중동이 종북주의를 잠깐 다루긴 했지만 민주노동당이 이 정도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곧 사라졌다. 근데 이번에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민주노동당엔 ‘친북’의 딱지를 붙이면 붙일수록 외려 그와 별도의 집단인 민주당이 친북과 관련이 없는 정치세력임을 광고해주는 역효과가 날지도 몰랐기에 조중동이 열을 내지 않았다면, 야권연대의 한 축인 통합진보당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기자는 “조중동의 꽃놀이패다. 대선까지 일 년 내내 쓸 수도 있을 거다”라고 진단했다.

▲ 7일자 한겨레 1면. 한겨레는 3부작 특집기사를 통해 진보정치세력의 재구성을 주문했다.

사안 자체가 심각하기 때문에 조중동의 여론전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한 기자는 “일심회 같은 간첩단 사건과 이번 부정투표 사건을 비교해보라. 합리적인 일반인이 봤을 때는 사건의 경중이 다르다. 전자에는 색깔공세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후자는 안 된다. 이 사건은 그들이 절차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조중동도 그들을 그냥 빨갱이로 부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민주주의를 모르는 이유는 그들이 친북세력에 공산당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이 꽤 먹힌다. 과거와는 시민여론이 전혀 다르다. 이 부분을 놓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자는 “유시민·노회찬·심상정 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을 깨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데, 이번엔 그런 얘기가 전혀 없다. 왜이겠는가. 더 이상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이젠 민주당에 가도 안 받아줄 것이다. 이 당에서 이런 사건을 함께 겪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흙을 묻힌 상황이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비당권파가 승리해서 설령 유노심이 전면에 배치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이 그 광경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들이 말하는 ‘진보’가 뭐라고 생각할까? 결국 통합진보당은 정치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다. 이제부터 전개될 싸움이란 건 식물인간 내부에서의 권력투쟁에 불과하다”라고 까지 설명했다.

결국 경기동부는 통합진보당을 깊은 수렁 속으로 끌고 들어간 셈이다. 이제 와서 출구를 찾는다고 살 길이 생길지는 알 수 없지만, 더 들어선다면 경기동부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이 함께 몰락할 것이라는 것이 진보언론 종사자들의 씁쓸한 예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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