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1주년 때 북한 어뢰모형을 견학하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가 당내 비례대표 경선과정에 참여한 모든 후보 및 대표단의 사퇴 권고 결정을 내렸는데도 ‘당권파’라 불리는 이들은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비례대표 3번 김재연 당선자는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이정희 대표는 ‘3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끌어다대며 사태를 ‘여론의 공세’로 호도한다.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는데, 당원의 명예를 언급하며 당원총투표를 주장했을 뿐, 부정의혹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다. 이처럼 언급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모른다”와 “아니다”만을 반복하고 있는 이들 당권파들의 주장이 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인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천안함 보고서와 진상조사위 보고서의 차이

통합진보당 우위영 대변인은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천안함 보고서, 진상조작 보고서”라고 비판했다. 아마 그의 사고체계에서 천안함 보고서는 정부가 북한을 모함하기 위해 만들어낸 전적인 날조일 것이고 진상조사위 보고서도 그와 같다는 것이 발언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합조단 보고서와 진상조사위 보고서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천안함 합조단 보고서의 결론은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발사에 의해 침몰했다’는 것이며 입증해야 할 사안도 그것이다. 그러나 진상조사위 보고서는 ‘부정선거’가 있다는 사실만을 입증하면 될 뿐 그걸 누가 했는지까지 입증해야 할 필요는 없다. 진상조사위 보고서를 봤을 때, 거기에 첨부된 사진파일들이 전적인 날조가 아니라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진상조사위 보고서는 당권파가 부정선거를 했다고 모함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서든 분명히 부정선거가 존재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전국운영위의 결정 역시 이 부정선거에서 선출된 모든 후보 및 당대표단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을 뿐 이 사건이 당권파의 소행이므로 당권파만을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당권파들은 비당권파들이 자신들을 공격한다는 정치공학적 해석으로, 다른 모든 후보가 사퇴하는데도 그들만 버티며 손안에 들어온 의원 뱃지를 내놓지 않으려 한다. 굳이 우위영 대변인을 좇아 천안함에 비유한다면 그들은 천안함이 침몰하지도 않았고 멀쩡히 서해바다를 떠다니고 있으며 TV 뉴스화면에 나오는 영상이 날조라고 주장하는 셈인 것이다.

의혹은 있지만 부정은 없다?

다음으로 ‘의혹만 제기했지 부정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앞서 말했듯 현장투표의 경우 대리투표의 증거가 분명히 제출되었다고 보는데, 이 문제는 차후에 논하겠다. ‘의혹은 있지만 부정은 없다’는 주장이 주로 온라인 투표에 대해 제출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설명해 보려고 한다.

이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한 유권자 비율은 현장투표 14.8%(5455명), 온라인투표 85.2%(3만5512명)이다. 온라인 투표의 신뢰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진상조사위 보고서를 보면 “프로그램에 의한 투·개표 조작여부 정황 발견치 못함”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당권파와 그 옹호자들이 ‘의혹은 있지만 부정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그런데 조작여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정황 발견치 못함”이라고 써야만 했던 이유는 뭘까? 그 이유도 보고서 안에 들어 있다. 보고서엔 “개발 및 운용 전반의 형상관리 부재로 투표시스템 프로그램의 최초버전 및 이후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아 과정상의 이상여부 판별 불가”라고 적혀 있다. 투표데이터 부문에서 프로그램 이상여부를 조사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즉 소스코드 변경이 확인되어도 이것으로 투·개표 결과를 조작했는지 단순히 관리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안도 ‘관리 미숙’으로 덮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사실상 이미 청년비례대표 선거부정 논란 때 지적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김재연 후보는 “진상조사보고서에서는 단 한 줄도 청년비례대표 관련한 객관적인 조사 근거가 없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조사 근거가 없었다는 것은 맞지만, 그건 청년비례대표 선거는 조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보고서엔 이렇게 적혀 있다.

청년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똑같았던 그 문제

투표 와중에 시스템 수정은 불가하다. 부득이 수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엄격한 통제와 형상관리를 통한 철저한 관리를 하여야 함에도 그렇게 수행되지 않았다. 수차에 결친 프로그램의 수정은 투표함을 여는 행위와 같은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뿐만 아니라 기표오류를 수반한 결함도 발생하여 투표 중단 및 투표데이터를 직접 수정하는 등 온라인 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잃었다.

특히, 앞서 진행된 청년비례대표 투표과정에서 동일한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사전에 개선되지 않고 오류를 반복한 것은 단순한 실무착오나 기술적 문제 수준을 넘은 심각한 선거관리 부실사례라 하겠다. (색깔 강조는 기자)

그리고 당시의 문제제기가 어땠는지는 프레시안 기사를 통해 확인가능하다. 당시 프레시안은 청년비례대표 선거에 대해서도 진상조사위가 꾸려졌다는 사실을 전했고, “핵심 이유는 투표 기간 중 관련 업체에 의해 소스코드가 변경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라 전했다. “소스코드 변경은 그 이전까지의 투표 데이터가 변경됐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이며 “개표 결과에 대한 신뢰도에 치명적인 사안”이므로, “투표기간 중 투표함을 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문제제기가 당시에도 있었다. IT관련 전문가들은 "투표 기간 중 소스코드를 변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만에 하나 변경의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투표 관련자들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이전까지 진행된 데이터를 저장하고 변경하는 것이 상식"이라고까지 확인해줬다. (링크)

▲ 통합진보당 학생위원회의 기자회견 장면 ⓒ프레시안

이런 문제제기가 있었다면 문제가 된 부분들을 고치고 새로운 투표에 임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당시 통합진보당은 어떤 행태를 보였나. 청년당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프레시안에 가서 항의집회를 했다. 통합진보당 학생위원회가 프레시안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서한을 낭독했다. (링크) 소스코드 변경문제에 대한 답변은 없이, 프레시안 측이 왜곡을 했다는 일방적인 주장만 있는 항의서한이었다. 문제제기를 이런 식으로 뭉개고 같은 방식으로 선거를 치뤘다. 그러니 소스코드 변경 자체가 투표조작의 증거는 아니라도 통합진보당이 선거관리의 공정성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투표소 관리로 비유하자면 선관위원도 아닌 사람이 투표함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상황이다.

김재연 당선자는 계속해서 청년 비례대표 선거엔 부정이 없었다 강변하지만 드러나는 진실은 이 선거가 얼마나 주먹구구였는지를 알려준다.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치르면서,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이가 애초에 김재연 후보 지지를 권유했고(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다. 다른 선본도 어느 정도는 이렇게 했을 수 있다), 그가 선관위원도 아닌데도 선거인단으로 등록되었는지 안되었는지 확인도 가능했다는 증언이 나왔다(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링크)

그런데도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는 진상조사위 규정이 그르단 말인가. 일단 소스코드 변경 것만으로도 “총체적 부실선거”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음을 당권파와 김재연 당선자는 알아야 한다.

강남을 투표소 의혹과 통합진보당 선거부정 비교

통합진보당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어떤 사람들은 지난 총선 강남을 투표소 의혹과 이 사건을 비교하기도 한다. 언론이 훨씬 더 큰 사안인 강남을 투표소 의혹은 문제삼지 않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만 문제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따져본다면 두 선거는 양쪽 다 국회의원 선출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비중이 동일하고, 드러난 증거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부정 쪽이 훨씬 더 심각하다. 강남을 투표소 의혹의 경우 봉인이 미흡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철제 투표함을 골판지 투표함으로 바꾼 것이 부정선거의 의도가 있는 것이란 루머가 돌았으나 투표함이 이렇게 변경된 것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의 일로 확인되었다. 부정선거의 정황이라기보다는 허술하고 무성의한 일처리라고 비판하는 것이 훨씬 사태에 부합한다. 부정선거를 위해선 선관위, 구청, 경찰, 민간인 참관자를 다 매수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참고로 총선에서 민간인 참관자는 투표명부에 사인하고, 용지를 찢어주고, 투표함을 들고 나가는 일 등에 모두 참여한다. 선거 결과를 조작할 방법과 기회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상황은 다르다. 온라인 투표의 경우 이정희 대표가 공개한 비공개 회의록에서, 이석기 당선자의 표중 동일 아이피 주소가 6천개에 달했다는 증언이 흘러나왔다. (링크) 동일 아이피 자체가 대리투표의 증거는 못 되지만, 그것이 6천개라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수치다. 이것이 대리투표의 증거가 아니라고 하려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더 조사해서 해명해야 할 사안이다.

▲ 당선소감을 밝히는 이석기 당선자. 그의 표 중 60%가 동일 IP 투표라는 보도가 나왔으나 그는 비례대표 후보 사퇴 여부를 당원 총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현장투표의 경우 증거가 좀 더 직접적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장의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진성당원제를 실시하는 진보정당에서 당직선거 등을 할 경우, 현장투표소가 곳곳에 설치되어 투표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온라인투표하는 방법을 모르는 당원들을 배려하고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투표소는 기본적으로 각 지역 당협에도 설치되지만, 노동조합과 사회단체 사무실에도 설치될 것이다.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조합이나 각 사회단체 사람들의 손쉬운 투표율을 위해서란 명분으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중앙선관위원이 모든 현장투표소를 감독해야 한다는 ‘원칙’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노동조합에선 노조 집행부나 상근자가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고, 단체 사무실엔 지역 당협 상근자가 대신 나가기도 한다. 만일 그 집행부나 상근자의 성향이 선거를 조작하고자 하는 쪽과 일치한다면, 대리투표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은 금세 확보된다. 투표하지 않는 이들의 명부로 표를 모아 한 사람이 기표하여 투표함에 넣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대리투표가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를 담고 있어

진상조사위가 현장투표를 조사해서 찾은 것은, 그 대리투표가 존재했음을 시사하거나 증명하는 증거들이었다. 기자가 중요하게 본 부분들을 인용한다.

- 분리되지 않은 투표용지 존재 사례(대리투표)
- 투표관리자 미서명 투표용지 유효처리 사례
- 무효표를 유효표화한 사례
- 선거인명부 투표관리자 미서명 사례
- 선거인명부에 선거인서명 없고 투표관리자 서명만 있는 사례
- 선거인수와 투표용지 불일치 사례
- 투․개표록, 선거인명부 조작의심 사례(서명 위에 다른 필기구를 사용하여 서명 수정, 동일인인데 현격하게 차이나는 글씨체, 선거인명부 선거인 서명란 대리서명, 선거인 서명란 다른 이름으로 서명 등)
- 잔여 투표용지 수량 미일치 사례
- 잔여 투표용지 수량일치하나 용지넘버가 다른 사례

이외에도 많지만 부실관리가 아니라 부정선거인 대리투표 정황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만 뽑아 보았다. 선거인명부엔 선거인과 투표관리자 서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투표용지엔 투표관리자 서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몇 사람이 대리투표를 한꺼번에 처리하다 보면 이런 일에서 착오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착오가 난 표도 유효표로 처리했다는 것이 위 사례들에서 드러난 정황이다. 잔여 투표용지 수량 착오도 비슷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분리되지 않은 투표용지 존재 사례”다. 투표소엔 원래 투표용지가 뭉텅이로 붙어서 온다. 이것을 각 개인별로 투표했다면 용지가 분리되지 않을 수가 없다. 해당되는 보고서 부분을 인용한다.

- 투표용지를 한 장씩 받고 정상적으로 투표했을 경우에는 절대 투표함에 들어간 투표용지가 붙어 있을 수 없음. 총 12개 투표소에서 기표된 투표용지가 분리되지 않은 채 있는 사례임.
- 2장에서부터 많게는 6장까지 본드 처리된 원형 그대로 기표된 투표용지가 서로 붙어 있었음. 이는 분명 누군가가 대리로 투표를 했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됨.(당규 제3호 선거관리위원회 및 선거관리 규정 제44조 위반)

▲ 투표용지가 분리되지 않고 붙어있다. 분리되지 않은 투표용지는 대리투표의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증거다. ⓒ진상조사위 보고서

이것은 대리투표의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다. 그리고 이 명확한 증거를 통해 다른 정황증거들을 바라보면 현장에서 대리투표가 광범위하게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보고서는 물론 세부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2차조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란 평을 내리기는 충분하다. 당권파가 안간힘을 다해 말하는 것처럼 세부사항이 확인되지 않았단 이유로, 확인 전화통화가 없었거나 부정확했단 이유로 보고서의 핵심적인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국운영위에서 나온 ”100% 부정이 밝혀지지 않는 한 부정이 아니다”라는 이정희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이 세상에선 부정선거라 불릴 것이 하나도 없다.

진상조사위 보고서는 천안함 폭침의 범인이 북한이라고 지목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부실·부정을 통해 선거가 정당성을 잃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그 부실·부정 선거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사퇴하자는 쇄신안이 나온 것인데 그들은 당의 관례란 핑계를 대고 투표한 사람들의 명예를 위해 그 주장이 그르다 한다. 그러나 세상엔 “모른다”와 “아니다”라는 답변만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 있다. 더 버티면 그 당이 마비되는 수준을 넘어 '진보', '비례대표', '진성당원제'란 말의 의미가 모두 뒤틀릴 판이다. 쇄신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태수습의 최대치가 아니라 최소치다. 더 이상 만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고 물러나야 마땅하다.

▲ 후보 사퇴는 없음을 밝히는 김재연 당선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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