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이고, 총선은 이미 지나갔지만 대선 역시 박빙의 승부가 될 예정이다.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끝난 이후엔 일찌감치 긴장감이 사라졌던 2007년 대선과는 상황이 다르다. 더구나 선거와 관계없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미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데, 2012년 대선은 그 관심의 정점에 해당할 것이다. 2012년 대선이 지난 후엔 SNS의 화제의 중심이 ‘정치’에서 다른 것으로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게시판과 블로그가 좀더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정치토론의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은 오히려 축소되는 것을 봐온 경험이 있다. 결국 우리는 2002년의 흥미로운 대선에서 정점을 찍었던 정치담론의 전성기가 다시 한번 찾아오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정국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사람들이 있다. 트위터를 사용하기도 하고, 블로그를 쓰기도 하며, 매체와 방송을 오가며 글을 쓰거나 인터뷰를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대신 짚어주거나 물어주고, 어떨 때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맥을 짚어낸다.

이들은 ‘정치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거나, 남들에 의해 그렇게 불린다. 정치담론의 정점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좋게 말하면 ‘전성기’를 맞이 했고, 나쁘게 말하면 ‘메뚜기도 한철인’ 상황에 처해 있다. 대체 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근거로 얘기하는가? 또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미디어스는 ‘정치평론가’라는 큰 타이틀 안에 묶이는 사람들을 유형별로 분류해 접근함으로서, 이 질문에 대한 대략적인 답변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우리 시대를 드러내고자 한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할 거라는 걸 예측한 유일한 정치평론가였다. 공중파, 케이블, 종편, 김어준의 <뉴욕타임즈>, 라디오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출연하는 그는 ‘정치평론계의 유재석’이라 불릴만하다. 그런 그가 최근 개혁적 시민들로부터 ‘박근혜의 편’이란 비난을 받고 있다. 고성국은 방송에서 흔히 고박사라 불리는데, 고박사가 ‘고성국은 박근혜를 사랑해’의 준말이란 야유도 나온다. 고성국은 진보매체인 프레시안의 기획위원인데, 프레시안의 한 관계자는 “요즘 종종 ‘왜 고성국이 거기 있느냐’라는 항의전화가 걸려온다”고 전했다.

고박사는 박근혜를 사랑해? 현실을 말하고 있을 뿐!

정말로 그는 ‘박근혜를 위한 정치평론’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객관과 주관, 중립과 당파가 미묘하게 교차하는 정치평론의 세계에서 그 부분을 판단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덧붙여 그에게 어떤 편향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 편향이 ‘스스로 그것을 객관이라고 여기지만 인식의 한계로 인해 나타나는 편향’인지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쪽 측면을 부각시킨 편향’인지를 판단내리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너무 손쉽게 재단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고성국의 고난’을 통해 정치평론가의 객관성과 중립성이란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성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11년 6월 미지애드컴에서 나온 <고성국의 정치in>을 보면 고성국이 이번 대선의 구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이미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야권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이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야권이 박근혜를 이기려면 노무현만큼은 아니더라도 영남에서 어느 정도의 표를 가져와야 하고, 충청권에서도 절반은 가져와야 하며, 수도권에서는 박근혜를 유의미하게 압도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승부가 가능한데, 과연 야권이 대구·경북, 부산·경남에서 노무현만큼 표를 가져올 수 있을까? (...)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p28-29)

"야권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6.2 지방 선거와 4.27 재보선 양상이 재연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는 듯하다.“(p35)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한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틀에 갇혀 있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아주 자유로울 수 있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자신의 생각을 ‘박정희’라는 프레임 속에서 자유롭게 재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건 내 생각이 아니야’ 이렇게 토를 달 수는 없을 테니까. (...) 박근혜가 김문수, 오세훈과 다르게 거침없이 복지를 주장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유연함 때문이다. 이것은 여야의 어떤 후보도 갖지 못한 박근혜만의 강점이다.”(p39)

이 당시는 ‘안철수 바람’ 전이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의 우세가 분명했던 만큼 야권에서는 야권단일후보만 만들어 ‘구도’만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식의 해석이 난무할 때였다. 고성국은 이런 해석에 맞서, 야권이 희망하는 ‘구도’가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고 박근혜의 ‘강점’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이와 같은 접근은 고성국을 ‘박근혜를 편든다’라고 매도하면서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엄연히 객관적인 현실이란 것이 있는 것인데 야권의 ‘정신승리’를 돕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평가의 분석을 상대편 진영의 것으로 매도해서는 희망이 없다. 실제로 2012년 총선 결과는 고성국의 분석에 상당 부분 타당한 면이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고성국은 ‘안철수 바람’ 이후에도 비슷한 논지를 고수한 덕에 주요 정치평론가 중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예측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박근혜가 오세훈 등과 달리 ‘복지’를 곧바로 차용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그의 분석은 정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객관과 주관의 교차, 그리고 감정선의 문제

▲ 2012년 대선전망을 다룬 고성국의 저서
그러나 여기에도 미묘한 부분이 있다. 고성국이 야권에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매도당하는 게 부당하다는 건 분명하지만, 대체 어디까지를 객관적인 분석으로 봐야 할는지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분석을 보자.

“실제로 박근혜가 어떤 사안에 대해 무지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다른 문제다. 지지율 1위로 앞서가는 후보가 왜 말을 많이 해서 쟁점을 만들어야 하는가? 앞서가는 후보는 쟁점을 최소화하는 게 일반적이다.”(p41)

물론 이 분석은 박근혜를 ‘수첩공주’라 비아냥대는 야권지지자들이 알아야 할 사안에 속한다. 우리가 박근혜를 비웃지만 박근혜는 그 비웃음당하는 순간에도 점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얻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통찰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어떤 경우 정치평론가는 “실제로 박근혜가 어떤 사안에 대해 무지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중요한 문제로 취급해야 하지 않는가? 비록 언론이나 여론에서 그 지점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지라도, 정치평론가는 정치 발전을 위한 ‘당위’에 맞춰 ‘현실’을 변혁시키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성국은 이런 질문에 대해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정치평론이 아니다”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말엔 원론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경우는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그 문제도 다뤘다”고 답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답변과 상관없이 남는 문제의 핵심은 ‘정치평론가’ 란 같은 단어 안에 ‘당위’와 ‘현실’을 다루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포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들 중에서 고성국의 방식은 당위제시보다는 현실분석에 치우친 쪽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정치공학적 분석에 능한 컨설턴트형 정치평론가’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박근혜에 대한 태도가 반새누리당 성향의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던져주는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그 때문이다. 박근혜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많은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십 여 년 그와 같은 정치적 자산을 쌓은 박근혜의 인기와 영향력의 비밀을 ‘박정희의 딸이란 유산을 승계 받아서’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야권의 승리를 바라는 이의 입장에서도 고성국과 같은 사람의 분석을 상당 부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현존하는 영향력에 대한 관대한 해석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박근혜의 영향력의 비결을 분석할 때라도 “박근혜가 그러한 인기와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정서를 보여줘야 보통 ‘우리 편’이라 간주한다. 고성국의 분석에는 명시적인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맥락의 차원에서도 박근혜의 인기와 영향력에 대한 그러한 ‘불편함’이 보이지 않는다. 가령 아래와 같은 분석은 ‘정치평론가의 시선에서’ “과연 그럴까?”란 의문이 드는 지점도 있지만, 그 이전에 존재하는 영향력에 대한 너무나도 관대한 해석이라는 느낌이다.

“박근혜의 힘은 권력이라기보다는 영향력에 가깝다. 그는 대통령도 아니고 제왕적 총재도 아니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려해도 행사할 권력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대로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움직인다면 그에게 어떤 형태로든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영향력이다.(...) 박근혜와 친박계의 관계를 주군과 신하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박근혜의 힘이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이기 때문이다.”(p58-59)

그런데 위와 같은 분석의 패턴도 그가 ‘당위’보다는 ‘현실’을 보는 컨설턴트형 정치평론가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말하자면 ‘고성국은 박근혜를 사랑하는’(고박사) 것이 아니라 ‘박근혜를 사랑하는 대중을 사랑하는’(박사대사?) 것일 수가 있다. 그는 ‘존재해야 할 것’의 의미를 밝히고 요구하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아마 박근혜가 아니라 야권의 다른 후보가 그렇게 탄탄한 지지층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면, 그는 그 후보를 설명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다소 대중추수주의의 위험을 안고는 있지만, 이 정도에서 멈춘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총선 직전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좀 더 확실하게 박근혜를 옹호한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된다. 이에 대해 고성국을 아는 한 지인은 “매체 속성에 따른 포지션의 문제가 있다. 워낙 여기저기 많이 출연하고 심지어 종편에도 출연한다. 그러다보면 출연 요청한 매체에서는 안 그래도 새누리당을 편드는 평론가가 드문 형편에서 고성국에게 그쪽 편을 들어달라는 ‘역할’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 그쪽에 서서 플레이하게 되고 원래의 생각보다도 그쪽에 더 쏠린 얘기가 주로 나오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확실히 이편 저편이나 찬반양론으로 나누어 사람을 섭외하는 한국 토론프로그램의 특성상 이와 같은 설명은 일리가 있다. 최근의 백분토론에서 고성국은 “내가 왜 전원책 옆에서 토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한 바도 있다.

컨설턴트형 평론가의 정치공학

그러나 손수조의 공천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임종석 공천을 비판하는 데에 앞장서며, 새누리당의 개혁이 민주통합당의 것보다 훌륭했다고 가치평가한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공천문제에 있어 민주당이 잘못 했다는 것까지는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손수조·문대성·김형태 등을 그대로 낸 새누리당의 공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전통적 지지층이 더 두텁고 보수언론과 방송의 지원을 받는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약간의 개혁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런 문제를 빼고 민주당보다 잘했다고 말한다면 그 평가는 왜곡된 것일 수 있다.

▲ 투표하는 손수조의 모습. 손수조와 임종석에 대한 고성국의 평가는 그가 새누리당 편향적이라는 오해를 낳았다. ⓒ연합뉴스

그러한 고성국의 아슬아슬한 위치선정은 지지정당을 정하지 않은 채 모든 정파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컨설턴트형 정치평론가라는 조건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고성국의 이력을 보면 ‘정치평론가’란 것이 ‘정치인’과 먼 거리에 있지 않고 호환가능한 것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1958년생 대구 출신인 그는 경기고-고대 라인의 수재로 젊어서는 범PD 계열이었다. 사회평론 <길> 지의 편집위원인 시절도 있었다. 90년대 초반에는 잠시 김현철을 도와 이재오나 홍준표 같은 이들을 면접하여 그들이 공천을 받는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의 ‘참여’에 대해서는 후회하는 부분이 있어 그 후 현실정치에서 손을 떼고 공부를 하며 프리랜서 정치평론가의 길에 더욱 힘을 싣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연배의 경상도 출신으로서 새누리당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평가할 소지는 있으나, 시선에 따라서는 ‘넘어갈 수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또 고성국의 동생이 최근 정치컨설턴트 회사를 차렸다는 것도 ‘정치평론가’의 물적 조건과 관련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고성국의 활동과 그 동생의 활동은 별개이며, 정치평론가와 정치컨설턴트가 친척이라 하여 그 사이에 부당한 유착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정치컨설턴트 시장엔 전현직 정치인 출신들도 대거 개입하고 있기에 ‘요즘 잘 나가는 정치평론가’ 정도가 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지도 거의 없다.

그보다는 고성국의 활동이 근본적으로는 동생의 활동과 다른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치 쪽 책을 내는 출판사, 정치컨설턴트 회사, 정치 계열 필진, 방송까지 상대하는 정치평론가의 활동까지가 포개어져 있고 잘 구별이 가지 않는 것이 한국적 풍경이란 것이다. 여기에 “심판과 선수는 달라야 한다”는 윤리를 들이미는 것도 쑥스럽다. 방송·신문 기자들이 회사를 그만두자 마자 공천받아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에서 그런 비판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일 수 있다.

정치평론가란 직업이 가능할까?

즉 정리하자면, 사람들이 비난하는 고성국의 ‘박근혜 편향성’이란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모든 매체를 상대해야 하는 정치평론가로 살고 있고, 이 위치가 독립적 영역을 지닌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각 선본의 참모로 가거나 컨설턴트 회사를 차리거나 할 수도 있는 잠정적인 것이기에, 어떤 정파와도 척을 질 필요가 없는 ‘정치평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수 있다. 김어준은 “에둘러 말하지 않고 누가 된다 안 된다 확실하게 말하기” 때문에 고성국을 좋아한다고 평했지만 그러한 정치공학적 단호함 뒤에 숨겨진 것은 오히려 모호한 정파적 지향일 수 있다.

물론 변화무쌍한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사람들의 우려처럼 고성국이 직접 정치나 선거에 개입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수 있고, 그 대상이 박근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그건 고성국이 처음부터 박근혜 선본 합류를 염두에 두고 여론을 호도하는 글을 썼기 때문은 아닐 수 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정치평론가라는 직군이 제대로 된 ‘리그’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교수나 여론조사 기관 대표와 같은 별도의 직업이 없는 이상 안정적인 발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는 것이 더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고성국과 같은 전업 정치평론가의 경우 오히려 그가 내후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잘 예측이 가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2012년 현재 ‘한철을 맞이한 메뚜기’, 정치평론가의 존재조건이 생각만큼 굳건하지 못하다는 것을, 지금의 정치평론계에서 가장 ‘핫’한 존재인 고성국의 상황을 살피면서 깨닫게 된다.

▲ 고성국 박사 ⓒ프레시안
고성국 박사와 직접 전화통화를 하며 몇 가지 사안을 물어보았다.

- 네티즌들이 ‘박근혜 지지자’라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의 입장은 어떤가.

객관적인 분석, 전망, 예측과 주관적인 기호나 지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 성격이 다른 여러 매체에 나오고 있다. 매체를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은데, 본인의 생각은?

매체를 왜 가리나. 무슨 기준으로 가리나. 기준이 있어야 가릴 수 있을 것 아닌가. 기준도 없이 가리라는 것은 진영논리에 불과하다.

- 김어준이 ‘에둘러서 말하지 않고 누가 이길지를 말해서 좋다’고 평했다. 그런 평론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평론에는 평론가의 판단과 주장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독자·시청자·청취자들에게 최대한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평론가의 그 비평이 옳은지 그른지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평론가가 두 가지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기계적인 양비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마나한 장황하고 추상적인 해설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 두 가지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벗어나려고 노력을 한다. 매번 분명하게 예측하여 승부를 하고, 틀리면 틀렸다고 인정을 한다.

- 승패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기 때문에, 가치보다는 승부를 말하는, 정치공학적 시선을 보여준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가치 문제, 그리고 그 가치에 입각한 행동을 하는 것과, 그것들의 승패를 말하는 객관적인 영역은 전혀 다르게 분석되어야 할 차원이 다른 문제다. 차원이 다른 문제를 섞어서 얘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나를 박근혜 지지자라 비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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