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동아일보가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KBS·MBC 영구장악법'이라고 규정했다. 민주당이 '좌파 언론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와 손잡고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장악하는 '반지성적' 언론 장악 꼼수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정치권 추천 명문화를 거론했다.

그러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논의 과정과 이번 법안의 내용을 보면 언론노조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장악'할 수 있는 것인지, 언론노조가 민주당과 손잡는 단체인지 적지 않은 의문이 뒤따른다. 공영방송을 정치권의 손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현행법과 공영방송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동아일보 5월 19일 <[오늘과 내일] 민주당의 ‘KBS·MBC 영구장악법’ 꼼수> 갈무리

이진영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19일 칼럼 <민주당의 ‘KBS·MBC 영구장악법’ 꼼수>에서 "화장실 다시 들어갈 때가 온 것이다. 야당 시절 당론으로 채택한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을 집권 후 뭉개더니, 야당이 되자 또 다른 법을 밀어붙이겠다고 한다"며 "화장실 드나들 때마다 언론관이 달라지는 민주당"이라고 썼다.

이 논설위원은 "KBS 이사진 11명은 여야가 7 대 4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9명은 여야가 6 대 3으로 추천하면 정부가 임명한다"며 "민주당은 KBS MBC 모두 이사를 13명으로 늘려 여야가 7 대 6으로 추천하고, 사장은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임하는 법안을 2017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논설위원은 "집권 여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데 야당이 반대할 리 있겠나"며 "모처럼 여야 합의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숙원이 이뤄지는가 싶었다. 그 기대를 깬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고 밝혔다.

이 논설위원은 "올해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새롭게 당론으로 채택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여야가 합의했던 법안과는 전혀 다르다"며 "추천권을 대부분 좌파 언론노조가 갖도록 설계해 민주당이 집권 여부와 상관없이 언론노조와 손잡고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고 주장했다.

이 논설위원은 한국방송협회, 직능단체,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 등의 운영위원 추천을 '좌파 언론노조' 몫으로 규정하며 "좌파 진영의 '반지성적'인 언론 장악 꼼수"라고 말했다. '반지성'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서 따온 표현으로 보인다. 이 논설위원은 "정 화장실이 급했다면 민주당이 '몇 년간의 숙고 끝에 나온 법안'이라 자부했던 여야 합의안을 먼저 떠올렸어야 한다"며 "국민 모두를 대변해야 할 공영방송인데 특정 진영이 과잉 대표되는 건 괜찮나"라고 썼다.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회 추천은 위법적 관행

이 논설위원은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회 추천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서술했지만 현행법상 정치권의 추천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영방송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임명할 뿐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정치권은 자의적 관행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해왔다.

이 논설위원이 언급한 민주당의 '공영방송 장악 금지법'이 폐기 수순에 이르게 된 경위는 위법적인 정치권 추천 관행을 명문화해서는 안 된다는 언론·시민사회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해 '박홍근안'이라 불렸던 법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방송 '낙하산 사장' 논란과 언론 탄압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차선책'이었다는 게 언론·시민사회와 민주당의 설명이다.

당시 언론·시민사회는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개입하는 관행에 처벌조항을 두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방송법 제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법 위반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되는데, 이처럼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정치권의 위법적 추천을 원천 배제할 수 있도록 처벌 규정을 명시하자는 내용이다.

지난 2018년 12월 전국 241개 언론·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시민행동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싼 방송법 개정과 관련해 정치권 추천 관행을 배제하고, 시민과 공영방송 종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안을 의견으로 모았다고 밝혔다. (사진=미디어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정의당 등에서 '국민추천제' 등을 골자로 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이 발의돼 국회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여당이던 보수정권 시절 '박홍근안' 처리에 결사 반대하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존 공영방송 이사회의 여야 구도가 바뀌기 시작하자 돌연 법안처리 찬성으로 입장을 뒤바꿨다. '박홍근안'은 처리 시 공영방송 이사회를 재구성하게 되어 있었다.

국민의힘은 시민단체가 공영방송을 '장악'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국민추천제는 반대했다. 21대 국회 들어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은 '박홍근안'과 사실상 동일하다. 위법적 관행으로 행사해 온 권한을 내려놓을 수 없고, 오히려 이를 명문화하겠다는 얘기다.

언론이 권력 감시를 사명으로 삼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 논설위원은 지난해 민주당이 추진하던 언론중재법 개정을 비판하는 칼럼에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감시 기능을 위협하는 이런 법을 둔 민주주의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고 썼다. 해당 칼럼의 제목은 <'어용 언론' 되라고 겁박하는가>(2021.07.29)였다.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후견주의'는 언론의 자유와 권력감시 기능을 위협해왔다.

민주당 당론 '공영방송 운영위원회', 언론노조가 '장악'한다?

이번 민주당 당론 법안의 골자는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를 '운영위원회'로 변경하고 운영위원 정수를 25명으로 확대개편하는 내용이다. 기존 정치권 추천 관행에서 벗어나 국회, 공영방송 종사자, 시청자, 학계, 직능단체, 시도의회의장협의회 등이 추천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취지가 법안의 핵심이다.

이 논설위원은 운영위원 25명 중 민주당 몫 4명을 포함한 국회추천 8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7명의 추천권을 대부분은 '좌파 언론노조'가 갖도록 설계했다며 "민주당이 집권 여부와 상관없이 언론노조와 손잡고 공영방송을 장악"한다고 했다. 지난 12일 홍석준 국민의힘 원내부대표는 "민주당과 친민주노총 세력이 공영방송을 쥐락펴락하면서 영구장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논설위원은 운영위원 2명을 추천하는 한국방송협회의 회장은 지상파 3사가 돌아가면서 맡는데, 현 회장과 차기 회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박성제 MBC 사장과 김의철 KBS 사장이라서 문제라고 했다. 이어 운영위원 3명을 추천하는 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방송기술인협회는 '친언론노조' 성향이고, 공영방송3사 시청자위원회는 노사합의로 구성될 가능성이 있으며, 학회(3명)와 시도의회장협의회(4명) 몫에도 좌파 진영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했다.

지난해 8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의당·언론현업4단체 '언론중재법 개정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가 민주당과 손을 잡는다는 주장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후퇴를 일관되게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언론중재법 국면에서 정부여당을 선두에서 질타했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임기동안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을 처리해내지 못한 데 대해서도 언론노조는 비판을 이어왔다.

이 논설위원은 지상파를 회원사로 둔 방송협회의 추천 몫을 문제삼았지만 지상파 '경영진'을 대표하는 단체가 추천하는 운영위원을 친민주당·친언론노조 인사로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SBS를 포함해 지상파 3사 사장단이 돌아가면서 맡는 방송협회장의 임기는 2년, 공영방송 운영위원 임기는 3년이다. 이 논설위원 주장에 따르더라도 방송협회를 통한 '영구장악'은 불가능하다.

이 논설위원은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에 언론노조의 영향력이 반영될 것이라고 가정했지만 시청자위원들과 민주당·언론노조와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았다. 각 직군별 이해를 주장하는 직능단체들이 어떻게 친언론노조 성향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이 논설위원은 학계까지 '좌파' 성향을 문제삼았는데, 운영위원을 추천하는 학회는 정부 규제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한다. 시도의회의장협의회 구성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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