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한상혁)가 추진 중인 공영방송 협약제도의 윤곽과 로드맵이 공개됐다. 협약에 따른 공영방송에 대한 평가는 수신료 산정과 사장 선임에 활용된다. 그동안 미디어 관계법에서 제대로 정의되지 못한 공영방송과 공적책무를 행정부와 공영방송사 간 일종의 '계약'을 통해 명확히 규정하고 평가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공영방송 책무성의 핵심인 시민 요구 반영, 행정부의 공영방송 개입 소지, 낡은 미디어법 체계의 전면적 개정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정책 대상자인 KBS는 과거와 달리 위상이 크게 하락한 상황에서 공영방송에 대한 법적지위 보장과 제도적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며 즉각적인 협약제도 도입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18일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협약제도'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공적책무 구체화수신료 산정·사장 선임 연계

18일 방통위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하 KISDI)은 한국방송회관에서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협약제도' 토론회를 공동 주최했다. 방통위는 올해 중점추진과제로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꼽고 KISDI와 연구를 진행해왔다. 공영방송 협약제도 도입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방통위는 올해 공영방송사와 협의를 통해 협약제도 도입을 위한 법제화 검토 작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공영방송은 새로운 미디어환경에서도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제고하고 건강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며 "공영방송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공영방송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성욱제 KISDI 방송미디어연구본부장의 발제문에 따르면 공영방송 협약 체결 대상은 KBS와 EBS다. 우선 KBS를 중심으로 제도를 기획하고 향후 협약체결 대상을 EBS로 확대하는 것으로 주요내용인 공적책무가 다르게 설정된다.

협약체결은 정부규제기구(현 방통위)와 공영방송사의 실무 논의, 협약안 작성, 협약안 공개와 의견수렴, 정부-공영방송 이사회의 심의·의결, 협약체결 순으로 진행된다. 정부 규제기구의 장과 공영방송 사장·이사장의 공동서명으로 협약체결이 최종적으로 이뤄진다. 중요사항 변경은 정부 규제기구와 공영방송사 간 합의를 통해 가능하다. 협약 유효기간은 6년이다.

협약이 체결되면 매년 정부의 규제기구는 공영방송사의 이행실적을 점검하게 된다. 종합평가는 3년마다 이뤄진다. 평가기준과 방법은 방통위 규칙으로 정한다. 정부 규제기구는 별도의 종합평가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공표하고, 방송사는 연차보고서에 결과를 공표한다. 이 같은 평가결과는 수신료 산정, 사장 선임 등과 연계된다. 공영방송사가 협약내용을 미이행하면 정부 규제기구는 시정명령 등을 내린다.

성욱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방송미디어연구본부장 발제문 갈무리

공영방송 협약제도 도입은 방송법 개정 사안이다. 성욱제 본부장은 올해 방송법 개정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방송사 협의와 의견 수렴을 통해 협약을 체결하고, 2026년 평가결과를 활용하는 일종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공영방송 협약제도 도입의 의미를 '명실상부'한 제도 수립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 방송평가와 재허가 제도 등은 유명무실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KBS가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는다고 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사자는 물론, 규제자도 이해하지 못한다"며 "명실상부하지 않은 평가제도 자체가 개선될 수 있다. 공적 목적을 설정해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구체적 지표를 같이 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비유컨대 당구칠 때 점수를 놓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 낮게 낼 수도, 높게 낼 수도 없다"며 "자기가 놓은 점수이기 때문에 뭐라고 할 얘기도 없이 정확하고 투명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또 평가 자체가 간단명료해지는 만큼 역무·서비스 중심으로 달성여부에 대해 체크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공영방송 협약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라도 2000년 이후 개정되지 않은 낡은 방송법 체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플랫폼 중심의 방송법을 폐기하고, 서비스를 중심으로 미디어를 정의하는 가칭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자고 일어나면 새 기술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법을 새로 만들어 또 땜빵할 것인가. 공영방송 제도를 주파수를 소유한 사업자의 대가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지난 세기 폐기된 생각"이라며 "모든 것이 서비스 중심으로 얘기되어야 한다. 사업자·사업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역무 중심으로 법 전체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방송사 협약, 시민 권리 보장은 어떻게

토론 패널들은 공영방송의 공적책무를 명확히 규정한다는 점에서 협약제도 취지에 대체로 공감했다. 하지만 공영방송 협약을 맺는 목적인 시민의 요구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제도냐는 문제제기가 제기됐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협약제도를 고민하게 된 근본적인 규범은 책무성인데, 그 논리 속에는 '갑'(정부)과 '을'(방송사) 뿐만 아니라 '병'인 시민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방통위가 갑을 대표한다면, 시민의 감시와 협약 개입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어야 한다. 독립기구로서 방통위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시민이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된 상태여야 책무성 개념에 들어맞는 협약제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교수는 협약제도의 정치적 후견주의 배제를 위해 체결 주체 중 공영방송 이사회를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현재 공영방송의 정치적 후견주의를 담보하는 통로가 이사회다. 만약 공영방송 협약체결에서 공적책무를 심의·의결하는 책무가 이사회에 주어진다면 이사회가 방송사업자의 편성과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온전히 모든 책임을 방송사 사장에게 지우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우리나라 공영방송 제도에서 공영성이 얘기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나 더 있다. 시청자 권익이 무엇인지도 제도상으로 나와있지 않다"며 "공공성의 가장 큰 두 줄기인 공영성과 시청자 권익이 제도적으로 모호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약속을 이행·평가·피드백할 것인지는 사실 모래위에 성을 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채 교수는 "공영방송 협약의 당사자인 규제기구가 내세우는 공공성은 어떤 협약을 가지고 나오든 정치적 후견주의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한국의 제도적 환경 속에서 우려될 수밖에 없다"며 "협약제도 자체의 실효성을 논의하는 것은 괜찮지만, 협약 과정에서 어떻게 정치적 후견주의를 극복하고 시청자와 시민의 열망과 바람을 담아낼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KBS "'공영방송답게' 만들려면 보호·진흥부터"

김대식 KBS 공영성강화프로젝트팀 박사는 현재 KBS가 처한 위기 상황을 강조하며 하나의 강력한 규제가 더해지는 셈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 박사는 "KBS는 20년 전과 비교해 점유율과 실적이 크게 줄었다. 망해가는 회사에 규정을 하려고 하니 허망하다"며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규정하려면 공영방송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정책들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공영방송의 재정적 대안을 마련하거나, 보호·진흥을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매년 이행점검을 해 평가하고, 연차보고서를 작성하고, 3년마다 종합평가하고, 사장의 선임과 수신료 사용 등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방송법의 근본적 변화를 전제해 공영방송의 정의와 기능, 권한과 독립, 재정적 보완장치까지 보장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존재해야 가능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식 KBS 공영성강화프로젝트팀 박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김 박사는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운영하는 영국의 BBC와 KBS의 법적 지위와 권한에는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BBC는 왕실 칙허장에 의해 특별한 목적과 지위를 가진 주체다. 왕실이 공적법인이나 단체의 목적과 권리·권한을 보장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BBC는 정치적 위협을 받지 않는 독립적이고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이라며 "그런데 이런 영국 사례를 가지고 공영방송의 개념도, 규정도, 목적도, 재정에 대한 보장도 없는 한국에서 협약제도를 하겠다는 것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방통위가 재정을 보장해 줄 권한도 없다"고 토로했다.

김 박사는 입헌군주제-의원내각제인 영국과 대통령제인 한국의 권력구조를 비교하며 공영방송에 대한 행정부 개입을 우려하기도 했다. 김 박사는 "영국의 문화부나 오프콤(Ofcom,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구)이 협약을 관리해도 그것은 의회의 힘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며 "한국의 경우 방통위가 협약 주체가 되면 행정부에 의한 협약이 된다. 방통위가 만약 협약이라는 것으로 KBS의 편성·투자·사업 등을 어떻게 해보겠다 개입하는 순간 행정부에 의한 개입이 되고, 이는 위헌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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