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가 갑작스런 합의를 이룬 상황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합의안에 대한 재고를 언급하면서 ‘검수완박’은 미로가 되었다. 이준석 대표의 의도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윤석열 당선인의 입장이다.

여야 합의 직후 윤석열 당선인과 인수위는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이후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검찰을 포함한 법조계 일반의 반발이 상당하다는 점을 의식한 권성동 원내대표가 수차례 협상의 성과와 불가피성을 설명하려 했지만 먹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급기야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는 조치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이해충돌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내놨다. 일부 언론은 ‘핵심 관계자’의 입을 빌어 윤석열 당선인도 “국민 여론과 형사사법 체계 전반을 감안하면 (여야) 합의안대로 가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의원총회 등을 통해 법안을 논의하고 (그 결과를 통해 추후) 법안 심사에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합의안에 대해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의 주장대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에서 선거, 공직자 관련 범죄를 제외한 것은 ‘야합’의 증거라는 것이다. 둘째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주장대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일부 보장된 듯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별건수사를 의식해 삽입된 “동일성과 단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라는 단서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개념은 재판 과정에서 공소장 변경 등에 적용되는 것인데, 수사에 맞추기에는 모호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어 실제 수사 과정에서 보완수사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연합뉴스)

‘검수완박’이 근본적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고, 앞서의 쟁점은 국회가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 보완을 하면서 해결해가면 될 문제이다. 그런데 여야의 합의는 4월 임시국회 내 법안을 처리하는 게 포함돼 있다. 4월 임시국회 회기는 5월 4일까지다. 이 기간 안에 의견수렴을 거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한가는 따져봐야 한다. 이준석 대표가 “당 의원총회를 통과했다곤 하지만, 심각한 모순점이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입법 추진은 무리이고, 1주일 시한 내 움직일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건 이 대목을 가리키는 것이다.

만일 국민의힘이 합의 자체를 뒤집고 없었던 일로 하자는 것이라면 중재안을 낸 당사자인 박병석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들어 줄 명분을 얻게 된다. 이 점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이 합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합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여론의 우려가 있으니 일부 내용을 보완할 시간을 좀 더 갖고 재협상하자는 주장의 명분은 어떨까? 박병석 국회의장이 일방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들어줄 근거로 삼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실제로 합의안에 대해선 검찰 조직뿐만이 아닌 법조계 일반이 반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문제는 애초 여야 합의에 4월 임시국회 내 처리가 포함된 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이 사안을 마무리 짓는다는 정치적 합의로 볼 수 있다는 거다. 5월 3일 국무회의에서의 의결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스케줄을 인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즉 법안의 처리 시점은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다.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윤석열 당선인의 태도를 다시 보자.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24일 “윤 당선인은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잘 지켜보고 있다”, “취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취임 이후에 헌법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책임과 노력을 다할 것”라고 했다. ‘헌법 가치’를 굳이 언급한 이유는 뭘까? 여야 합의안의 위헌성을 지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법안 처리가 되지 않을 경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볼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분명하므로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법안 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윤석열 당선인 측의 이러한 태도는 더불어민주당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해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에서 합의가 깨지고 추가 협상 없이 박병석 국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안의 일방 처리에 협조할 경우 관건은 다시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될 것이다. 사직서를 두 차례 낸 검찰총장이 사실상 요구한 것인 데다 국민의힘도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론이 이렇게 악화된 상황에선 국무회의 의결도, 거부권 행사도 모두 부담스러운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법안이 처리되는 경우,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이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여야가 합리적 수준에서 추가 협상을 진행, 타결하고 세간의 우려를 덜어낸 상태에서 법안을 처리한다면 거부권 행사라는 정치적 부담을 감행할 이유가 크지 않다.

더군다나 ‘윤석열-한동훈 체제’가 작동하는 이상 실제 검찰의 수사권 박탈로 안게 될 실질적 부담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폐지될 민정수석의 역할을 일부 겸하면서 이전보다도 큰 권한을 행사할 것이고, 상설특검 등의 제도를 활용해 주요 수사의 길을 열 수 있으며, 이후 후속 논의를 통해 설립될 중대범죄수사청 등도 결국은 법무부 산하 기관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원래 특수부 검사만 우대하던 ‘윤석열 검찰총장’ 스타일이 중수청 인사로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검찰 내에서 여야 합의안에 대해 윤석열 당선인이 조직을 팔아먹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결국 법안 처리가 늦어지더라도 ‘검수완박’의 길로 가느냐 마느냐는 여론에 좌우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여론’의 층위를 나눠 종합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법조계 일반의 우려는 ‘검수완박’을 둘러싼 정치적 셈법과 힘겨루기가 아니라 실제 발생할 피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검찰이 주요 6대 범죄에 대한 수사만을 가능하게 한 지금 체계에서도 수사지연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디까지를 수사로 볼 것인지의 개념적 논쟁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중심에 놓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여야의 셈법을 떠나 제대로 논의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여야 어느 쪽이든, 누가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도 졸속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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