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MBC가 13년 만에 방송강령, 윤리강령, 가이드라인을 전면 개정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방송강령에 ‘보편적 가치 추구’ 조항을, 프로그램 제작가이드라인에 차별·혐오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시사·보도 프로그램 제작 준칙’에 거부권을 신설해 관리자의 공정방송 훼손 시도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 8일 MBC 노사는 윤리위원회를 열고 방송강령, 윤리강령 및 가이드라인 전면 개정안에 합의했다. 지난해 7월 편성위원회에서 제기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시사·보도 프로그램 제작 준칙’ 개정 요구를 시작으로 8개월 가까이 준비된 이번 개정은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사진=MBC)

개정된 방송강령은 공영방송 MBC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시하고 방송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했다. ‘편성의 독립 및 제작 자율성은 국민의 알 권리 구현에 있다’(3항), ‘글로벌 미디어로서 국제 보편적 가치 추구’(6항) 조항이 신설됐다. MBC는 지난해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을 사용해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았다.

윤리강령은 공영방송 구성원으로서 공정한 직무 수행을 위해 ‘이해충돌 방지’ 규정을 명확히 했다.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 방지 조항을 신설하고 2차 피해 보호 조치 등을 구체화했다. 특히 SNS 사용 가이드라인을 강령 체계로 병합해 의사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구성원들은 SNS 이용 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하며, 개인의 의견이 회사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직무 수행 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이나 동료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 특정 개인 혹은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은 소셜미디어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마련됐다.

프로그램 제작가이드라인 개정을 통해 차별과 혐오를 막고 소수자 보호 및 다양성 존중을 위한 구성원들의 노력을 촉구했다. 디지털, 차별, 혐오, 환경 등 조항이 신설됐고 디지털 콘텐츠 제작 관련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책임과 권한’ 명확하게 구분...거부권 신설

이번 개정 작업에서 언론노조 MBC본부는 ‘시사·보도 프로그램 제작 준칙’ 개정에 역점을 뒀다. MBC본부는 실무자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고, 공정방송을 지키려는 기자와 PD 등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중점을 두고 개정했다고 밝혔다.

기존 규정에선 기사 취재부터 편집까지 일차적인 책임이 기자와 PD 실무자에게 있었다. 그러나 주제 선정을 두고 실무자와 보직자의 의견이 상충할 때 별도의 조정 절차가 마련되지 않아 책임자가 수정·보완을 요구할 경우 실무자가 이를 수용해야 했다. MBC본부는 “프로그램 상위 책임자나 관리자의 공정방송 훼손 시도에 실무자가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없어 공정방송 실현 의지가 쉽게 무력화될 위험이 있었다”고 짚었다.

이번 개정 준칙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기자·PD가 주제 선정, 취재, 제작, 편집 전 과정의 일차적 책임과 권한을 가졌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견 조정 절차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제작진의 자율성을 보장할 장치로 ‘거부권’을 신설했다. 거부권 신설로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부적절한 지시에 대해 지시 불이행이라는 이름으로 실무자를 징계하는 일이 절차적으로 어려워졌다.

'시사·보도 프로그램 제작 준칙'에 신설된 '거부권' (자료제공=언론노조MBC본부)

중간 관리자와 실무자의 업무 영역도 명확히 구분했다. 프로그램 관리자는 보도, 제작 전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관리하며 실무자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보도·제작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중심 역할로 규정했다. 실무자는 보도·제작 실무에 있어 관리자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반영하며, 관리자는 관리 영역에서 실무자의 의견을 청취, 반영해 상명하달식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를 지양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보도의 경우, 보도국장의 조정을 납득하지 못하면 정식으로 편집회의에서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 과정을 기록하고 공개해 책임자가 결론을 내리는 데 신중할 수 있도록 했다. 제작의 경우, 이견 조정 절차를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범위를 정통시사프로그램에서 모든 프로그램으로 넓혔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번 전면개정을 통해 공정방송을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진전 및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한다”며 “우리 삶의 큰 변화를 앞둔 시대에 국민의 신뢰를 받는 대표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공영방송으로서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20대 대선에 시범 적용했던 MBC 선거방송 제작 준칙’ 개정안은 6월 지방선거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과도한 정파성, 경마식 중계방송, 따옴표 저널리즘 등 선거 보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양비가 아니라 시시비비를 가리는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인 보도, 내실화된 후보자 및 공약 검증, 유권자 중심의 선거 보도가 되도록 규정을 마련했다.

선거방송 제작준칙에 따라 취재·제작 시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해야 하며, 특정 후보자의 공직 적합성을 비판하는 내용을 보도할 경우 반드시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특정 정당·후보자·지지 세력·단체 및 개인의 압력에 의해 보도 내용을 변경하지 않으며, 개인적 정치 성향·이해관계·지연·학연 및 친소관계 등에 따른 편향성은 배격해야 한다.

또한 취재 기자와 해당 분야의 데스킹 담당자, 부서장 및 보도 책임자(국장) 외에 누구도 취재 내용이나 방송 여부에 관여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건희 7시간 녹음파일’ 방송을 막기 위해 MBC 사장을 항의 방문했던 선례가 있어 재발 방지를 위해 선거방송 제작준칙에 관련 조항을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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