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을 재정소요에 따라 수정·파기한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정책선거 훼손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인수위는 공약을 정리할 권한이 없는 만큼 윤 당선자나 국회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19일 입장을 내어 "인수위가 실효성과 이행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무리한 대선공약을 정리하는 작업을 병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인수위는 헌법정신과 대의민주주의, 정책선거 노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연합뉴스는 지난 11일 <윤석열표 '공약가계부' 추진…국정과제 위한 재정계획 세운다>에서 "지난 대선 캠프 때보다 더 많은 분야별 전문가들이 인수위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 합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잘라내겠다는 게 내부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인수위 차원의 공약 정리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기획재정부와 함께 국정과제의 우선순위나 실효성, 분야별 조화와 상충 등의 문제를 깊이 있게 검토해나가는 초기 단계"라고 밝혔다. 그는 "예산이 얼마나 들지, 실현은 가능할지, 해야 하면 일정은 어떻게 할지 등 모든 측면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는 "인수위는 '무리한 공약'을 정리하는 작업도 병행하게 될 전망"이라며 "윤 당선인은 앞서 병사 월급 200만 원 보장, 출산 후 1년 간 부모급여 월 100만 원 지급, 기초연금 월 10만 원 인상 등 대규모 예산 사업을 공약한 바 있다. 65세 이상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 장애인 개인 예산제 도입, 저소득층 예술인 고용보험 지원 확대 등 취약 계층을 위한 공약도 쏟아냈다"고 보도했다.

윤 당선자가 공약한 50조 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코로나 손실보상안도 흔들리고 있다. 18일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는 '50조 원 추경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인수위에서도 50조 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경제적 충격을 없애는 방향으로 (추경 규모를)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대선공약 일부를 인수위에서 파기하겠다는 주장은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며 "대선 캠프보다 더 많은 전문가가 활동한다는 이유로 인수위에서 대선공약을 수정하거나 폐기할 수도 있다는 인식은 인수위 구성원으로서 자격 미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헌법에 따라 선출된 선출직 공직자는 국민의 '고용인'이고, 공약은 '고용계약서'라며 "인수위법상 그 어디에도 대선공약 파기 업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현황의 파악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 ▲당선인 요청에 따른 국무총리·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검증 ▲그 밖에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사항 등을 인수위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KBS-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20대 대통령선거 정책 검증 자료화면

앞서 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윤 당선자가 후보 시절 제시한 국정공약 207개(세부과제 708개)와 지역공약 118개(세부과제 401개)에 대해 재정설계 자체가 문제적이라고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윤 당선자는 국정공약 이행에 총 266조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하지만 '쇼츠' 공약과 '심쿵' 공약, 신산업벨트 구축 등 지역공약에 대한 재정추계를 밝히지 않았다.

공약 이행을 위해 수백조 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지만 윤 당선자는 증세는 없다며 지출 구조 조정과 세입 자연 증가분을 통해 관련 예산을 충당하겠다고 공약했다. 오히려 윤 당선자는 종부세 폐지, 주식양도세 폐지 등 감세정책과 국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했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윤 당선자 공약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결국 증세나 국채발행을 하거나 다수의 공약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선후보 TV토론 과정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윤 당선자를 향해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감세하는 복지는 사기"라며 "내일 모레 투표인데 재정추계도 안 낸다? 양심이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대선공약이니 일점일획도 고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과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정책선거 훼손 우려를 지적하는 것"이라며 "인수위 일부에서 제기했던 선심성 공약에 대한 정리 주장은 경솔했음을 인정하고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입법과 재정이 필요한 정책들이 대부분이기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의 타협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다"면서 "어떠한 이유를 들더라도 인수위가 대선공약을 일방적 파기하거나 수정한다면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정책선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태"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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