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이나 1인 미디어 등 가짜뉴스 관련법 등 법안마다 논의 속도와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추진 의지는 분명하게 밝히되 시점·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14일 중앙일보 인터뷰 중

민주당이 구체적 로드맵이 제시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과 달리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언론개혁 법안의 처리 시한은 못박지 않았다. 또한 민주당은 그동안 거론되지 않았던 '공영방송 운영위원회'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독일식 방송평의회' 모델을 준용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의 공영방송 체계와 맞지 않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또 언론개혁 법안을 논의하는 국회 언론·미디어제도 특별위원회가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등의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의힘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상황이다.

공영방송 3사 사옥

민주당 당론은 기존 공영방송 이사회를 '운영위원회'로 바꾸고 운영위원 정수를 25명으로 확대하는 안이다. 운영위원 추천 주체는 국회(6인), 행정부(2인), 광역단체장협의회(4인), 방송 관련 학회(5인), 방송 직능단체(8인) 등이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독일식 모델을 변형해 공영방송 운영위원회를 언론 분야 등 사회 각 분야 대표자 25명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영방송 사장은 3분의 2 이상 찬성의 '특별다수제'로 선출한다. 민주당은 '공영방송 이사·사장 국민추천제'(정필모 민주당 의원 발의)가 국민의힘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특별다수제가 포함된 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게 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당론의 골자가 운영위원회안인지 불분명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미디어스에 "운영위원회안이 채택된 건 맞지만 국민추천제가 폐지된 건 아니다. 두 가지 안을 검토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후견주의를 극복하자는 목표는 동일하고, 검토를 하는 것이다. 설악산을 등반하겠다고 했는데 설악산이 아닌 것 같아서 지리산을 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의원총회 때 운영위원회안이 추인된 건 맞다. 그런데 국민추천제는 이미 발의가 된 것이기 때문에 열어놓고 얘기하려는 상황"이라며 "둘 다 안이 살아있는 것은 맞다. 국민추천 방식을 운영위원회에 반영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언론개혁 법안 처리 시점을 확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원내대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포함한 내용들이 의총에서 정리됐고, 미디어특위에서 최대한 합의해 상임위로 건네지길 바란다"면서도 "미디어특위 안에서도 입장 차이가 현격하다"고 말했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상임위 심사를 보고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는지, 그 이후로 넘길 수밖에 없는지 봐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운데)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현안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영방송 운영위원회안은 논의된 바 없는 안으로 '독일식 방송평의회' 모델을 준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운영위원 추천 주체만 제시됐을 뿐 운영위원회의 성격과 기능, 운영위원의 자격, 추천 주체의 적절성, 운영위원 정수의 적합성 등 독일식 모델과 비교했을 때 설명이 필요한 쟁점이 다수 존재한다.

독일의 제2공영방송사 ZDF의 지배구조는 행정위원회, 텔레비전위원회, 총관리책임자(사장)로 구성돼 있다. 행정위원회는 12명의 위원들로 구성되며 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사 경영을 감독하고 예산을 관리한다. 텔레비전위원회는 정치인·정당인·정부인사·사회각계 집단 대표자 등 60명으로 구성되는 방송평의회다. 애초 텔레비전위원회의 위원 정수는 77명, 이 중 정치인이 최대 52명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원구성 방식에 정치개입 소지가 크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으며 2014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위원정수 60명 중 정치인은 18명까지만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됐다.

텔레비전위원회는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의견이 공영방송에 반영되도록 하는 기구다. 텔레비전위원회는 ZDF 사장 선임·해임, 행정위원회 선임, 규칙 제정, 예산심의·허가, 프로그램에대한 감독과 심의, 공적 평가, 공적책무 제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ZDF 텔레비전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보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운영위원회안이 독일식 모델을 따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KBS 사장은 이사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ZDF는 텔레비전위원회가 선임한다. 운영위원 추천주체 중에는 행정부, 즉 대통령 몫이 포함되어 있어 국가가 공영방송 경영 전반에 개입한다는 문제가 있다.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사후심의의 경우 한국은 민간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맡고 있지만 ZDF는 텔레비전위원회가 담당한다.

또한 MBC의 경우 KBS·EBS와 달리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라는 외부 관리·감독기구이자 최대주주를 두고 있는데 이를 운영위원회 체계로 전환한다면, MBC에 대한 방문진 지분(70%)과 정수장학회 지분(30%)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 밖에 공영방송 이사회와 운영위원회는 기능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텔레비전위원회 위원 정수는 60명인데 운영위원회 위원은 왜 25명인지, 운영위원 추천주체의 기준은 무엇인지 등의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ZDF-텔레비전위원회 회의 (2015년 12월 11일 마인츠, 출처=ZDF 홈페이지)

한 MBC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탈피하고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공영방송 거버넌스 논의의 핵심인데, 숲에서 길을 잃은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그는 "민주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화두를 띄운 것은 바람직하지만 방송평의회 제도는 우리사회에서 논의·합의된 바가 없다"며 "행정부·대통령이 왜 위원을 추천하는지, 지역 시·도지사가 지역을 대표하는지, 방송법 체계상 '지역성'이란 무엇인지, '지역' 외 다양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방문진의 기능은 어떻게 되는지, 60명은 많으니까 그냥 25명으로 정한 건지 등 모호한 점이 너무 많다"고 짚었다.

이어 MBC 관계자는 "용어나 개념 정리가 분명하게 선행되지 않은 어설픈 법안이 나오게 되면 향후 복구가 불가능해 위험할 수 있다"면서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제도가 아닌 영주국가로 구성되어 온 독일의 방송평의회 제도가 우리 사회에 맞는 것인지 논의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나치 프로파간다(선전)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깨기 위한 지역분권적 공영방송 모델이 자리잡은 배경도 있다"고 설명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제도는 입법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다만 현행보다 더 나으려면 세부적으로 봐야할 것들이 많다"며 "지금은 그냥 나눠먹기식으로 간단하지만 독일식으로 간다면 엄청난 작업을 필요로 한다. 방송법 체계 전체의 틀을 다 바꿔야 하고, 사회적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심 교수는 "독일식 평의회의 역할은 단지 사장만 뽑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본부장급에 대한 임명권과 동의권이 있고, 프로그램 성격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의 투자(250만 유로 이상)를 결정할 수 있고, 내적 다원주의에 따라 내부에서 방송을 심의하기도 한다"며 "이런 기능이 제대로 되어야 독일식 모델인 것이다. 이게 아니라면 사장추천기능 정도밖에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심 교수는 방문진과 정수장학회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MBC에 대해 "독일식 모델로 가려면 지분을 인수해 MBC를 재구성해야한다. 기본적으로 공영방송이 무엇인가에 대한 (법적)개념이 있어야 한다"면서 "독일식 모델의 경우, 위원 추천 단체를 임의로 할 수 없도록 법에 정해져 있고 조건을 충족하기 매우 까다롭게 돼 있다. 추천을 받은 위원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따지는 기준을 세밀하게 정하는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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