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KBS와 SBS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회동과 관련해 발언과 분위기를 스케치하는 단순 보도에 그쳤다. 그러나 윤 당선자가 박 전 대통령에게 한 발언은 탄핵을 부정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회동 자체는 물론 '늘 죄송'이라는 윤 당선자의 발언이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12일 윤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50분가량 만났다. 이날 양측 관계자에 따르면 윤 당선자는 박 전 대통령에게 ‘면목이 없다. 죄송하다’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힘쓰겠다’ ‘박 전 대통령의 정책·업적 등을 계승하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 당일 KBS, SBS 메인뉴스에서 이 이상의 내용은 없었다. KBS는 이날 리포트 <윤석열, 박근혜 찾아 “특검-피의자 악연에 죄송”…취임식 초청>에서 “(윤 당선자, 박 전 대통령 측은) 두 사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5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12일 KBS '뉴스9' (위), SBS '뉴스8'(아래) 보도화면 갈무리

SBS는 <윤 당선인 "늘 죄송" 박 전 대통령 "취임식 가능한 참석"> 보도에서 “윤 당선자는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며 “양측 간 만남을 지켜보기 위해 지역 주민과 박 전 대통령 지지자 등 1,500여 명이 달성 사저로 몰렸다”고 전했다.

해당 보도와 관련해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는 14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윤석열 당선자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담을 나눈 것에 대한 스케치 기사는 필요하다”면서 “(윤 당선자와 박 전 대통령의) 대담 자체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만 전달했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이런 중요한 만남의 경우 기자나 데스크에서 만남 자체에 대해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추가 보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윤 당선자가 촛불집회로 인해 탄핵이 된 대통령을 예방하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도 있을 것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도 있을 텐데 거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보도”라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시민들이 이 만남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언론, 특히 지상파 방송은 윤 당선자의 발언에 대한 맥락을 지적해 줄 수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보도는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 소홀로 비쳐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상임이사는 “탄핵 당사자가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없는 유감스러운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검찰 당사자였던 윤 당선자가 사과하는 모습은 국민이 볼 때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상임이사는 “언론은 혼란스러운 시민을 대신해 윤 당선자가 국정농단 사건 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박 전 대통령은 어떤 형을 받았는지, 윤 당선자가 검사 때와 입장이 바뀐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자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으로 수사 외압을 폭로해 좌천당했다. 이후 윤 당선자는 2016년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수사에 관여해 중형을 이끌어냈다.

12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MBC의 경우, 회동 스케치에 이어 <윤석열 사과, 왜?‥"탄핵 부정, 민주주의 위협"> 보도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전략적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취임 전 지지율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사저정치’를 재개한 박 전 대통령도 손을 맞잡아 지지층을 결집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MBC는 “정치권에서는 당장 당착에 탄핵부정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며 “특히 국정농단사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선자가 ‘명예회복’부터 말한 건 국민적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주요 신문의 비판 보도가 이어졌다. 한겨레는 12일 기사 <“면목 없어, 죄송”…박근혜에 고개 숙인 윤석열, ‘보수 결집’ 노림수>에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던 윤 당선자가 6·1 지방선거 승리와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탄핵을 부정하는 퇴행적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윤 당선자가 이날 박 전 대통령을 만나 깍듯이 모시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은 보수층 내부에서 여전히 취약한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면서 “하지만 국정농단 수사를 주도한 당사자가 ‘면목이 없다’며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고 명예회복을 약속한 행태는 모순적이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13일 사설 <탄핵 수사 다해놓고 박근혜에 “면목 없다” 한 윤석열>에서 “탄핵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말로 들린다”며 “촛불시민의 이름으로 분노와 함께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 취임식 초청에 대해 경향신문은 “헌정사를 얼룩지게 해놓고 반성을 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옳지 않다”며 “박 전 대통령은 금고 이상 형을 받은 터라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한다. 당선자가 앞장서 법 규정과 원칙을 무시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도대체 법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윤 당선자의 사과는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 탄핵을 부정한 것이라면 촛불을 든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자신이 주도했던 수사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면 윤 당선자와 검찰이 그렇게 강조하는 사법 의는 도대체 무엇인지 반문한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윤 당선자가 박근혜 씨에게 ‘죄송했다’고 한 것은 탄핵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발언”이라며 “검찰의 공무와 국회의 책무,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폄훼했다. 개인 간의 소회는 나눌 수 있지만,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대통령 당선자의 언어로서는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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