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언론현업인단체가 발족시킨 사회적 논의기구 '표현의자유와사회적책임위원회'(이하 표현의자유위, 위원장 권순택)가 사실상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모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자유와 국민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찬반을 둘러싼 입장차이는 여전한 상황이다.

"언론자유와 국민 알권리 위축"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법 개정> 토론회에서 표현의자유위는 지난 6개월 동안의 논의를 토대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종합의견을 발표했다. 표현의자유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고의·중과실 추정 ▲입증책임전환 ▲기사열람차단제도 ▲정정보도제도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표현의자유위는 언론현업5단체(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한국PD연합회)가 지난해 10월 발족시킨 사회적 논의 기구다. 시민사회단체·언론학계·법조·언론현업에서 각각 4인을 추천해 16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미디어의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강화를 주제로 2주마다 회의를 진행해왔다. 오는 5월 논의내용을 모아 의견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법 개정> 토론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대해 표현의자유위는 "국정농단 사건과 같이 확실하게 입증하기 어렵지만 합리적 의심이 존재하는 사안에 대한 초기 의혹 보도, 소송을 당한 후 후속·추가 보도가 위축된다"며 "시민의 알권리도 침해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이익보다 사회적 해악이 더 크다"고 결론냈다.

표현의자유위는 징벌적 손배제 대신 법원의 위자료 산정 기준을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입장이다. 특히 언론 피해자의 개별 사정을 고려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중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징벌적 손배제 적용 시 언론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고, 입증책임을 언론에 맡기는 내용에 대해 표현의자유위는 "문서화할 수 있는 취재원만을 대상으로 취재할 수밖에 없도록 언론보도를 위축시켜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보도와 같은 익명보도를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현의자유위는 "고위 공직자 등의 공인이나 기업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 권력자들의 언론사에 대한 소송 남발·남용을 방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허위사실 표현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논쟁을 촉진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표현의자유 보호영역에 해당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리얼미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보도가 개인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거나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피해자가 기사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 표현의자유위는 "과도한 유통금지 조치"라는 의견을 이견없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위는 "기사열람차단제도는 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막연하다"며 "나아가 포털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경우 소송 가능성이 있는 정보에 대해 차단요청을 쉽게 수용할 것이라는 점에서 언론자유 침해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표현의자유위는 인터넷 보도로 인한 피해가 영구적이고 권리구제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가처분신청에 대한 국선변호인 제도 지원 등 피해자지원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정정보도를 원 보도 시간·분량·크기의 2분의 1 이상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서도 표현의자유위는 "정정보도 형식을 일률적으로 정함은 언론사나 언론 피해자에게 오히려 불합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정보도가 현재보다 더 눈에 잘 띄고 분량이 많아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피해자의 의사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눈에 잘 띄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해 바뀌어도 찬반 논란은 여전

이날 토론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측은 이른바 '가짜뉴스'를 법적으로 어떻게 구분지을 것인지에서부터 언론자유 논란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반면 찬성하는 측은 현재 언론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표현의자유위원인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찬성 측에서는 허위보도만이 징벌의 대상이고, 건전하고 일반적인 언론활동은 위축될 우려가 없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허위보도를 판단하는 것부터가 굉장히 모호하다. 한 명제에서 사실인지 의견인지를 구분하는 것부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예를 들어 특혜, 성폭력, 공산주의자, 친일파, 검언유착 등의 단어에 대해 명확한 법적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 사회적 맥락까지 고려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며 "대부분의 기사와 정보들은 허위정보로 쉽게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다. 이런 내용의 언론중재법은 언론 피해 구제 수단이 되기에 부족하고,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윤지연 참세상 편집장은 소규모 독립언론의 부담감을 설명했다. 윤 편집장은 "독립언론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데, 언론중재법이 시행됐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러차례 논의했다"며 "지금도 명예훼손 손해배상 압박을 받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윤 편집장은 "참세상만 해도 노조파괴 사업장인 유성기업이 무더기로 언론중재위에 조정 신청을 해 결국 소송을 하게 됐다"며 "언론중재법을 보면 반복적으로 허위보도를 할 때 중과실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저희가 쓴 유성기업 관련 기사는 450건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편집장은 징벌적 손배제 도입 시 상대적으로 소규모 언론사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편집자은 "소규모 언론사는 포털 진입도 힘들고 어뷰징 기사를 남발하기에는 인력도 녹록지 않다"면서 "지금처럼 기울어진 언론지형 속에서 손해배상을 가중하는 방식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할까. 결국 살아남는 건 자본력을 갖춘 대형언론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왼쪽부터)손지원 오픈넷 변호사, 윤지연 참세상 편집장,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 (전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반면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지금의 시스템 아래에서 언론 스스로 자율적 규제가 이뤄져왔다면 타율규제 논의는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이사는 "한국적 상황이 문제라고 본다. 포털 환경과 확장성, 질보다 양적 보도가 이뤄지는 환경에서 조회수를 올리고 확산되는 보도에 책임지는 언론은 단 한 곳도 없다"고 짚었다.

윤 이사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2만개 매체 중 정통적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사는 100개 정도"라며 "나머지 1만 9900개에서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데 100개 언론사 입장에서 보기에 무리라고 말하면 시민입장에서는 답답하다. 자율규제 논의가 진척되는 부분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윤 이사는 "자율규제 논의가 시작된 지 4개월 정도 됐지만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없다. 대형언론사도 가십성 기사, 커뮤니티발 기사를 그냥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중재법에 봉쇄소송 우려 등의 이슈들이 있고 정교하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한서대 교수)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징벌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본래 취지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것은 언론에 의한 시민피해를 구제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면서 "엄청난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표현의자유위가 실효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피해 구제가 충분하지 않은 문제를 위자료 산정 기준으로 해결할 수 있나. 현재 위자료 산정 기준을 가지고도 명예훼손 관련해서는 가중해 책정하도록 돼 있다"며 "열람차단청구권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제기가 이뤄진 이유를 표현의자유위도 인정하는데 이에 대한 대안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인지, 자율규제기구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인지 명확히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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