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자 조선일보 사설


그런데도 민주당은 나꼼수 지지자들이 이해찬 고문 등에게 "너나 사퇴하라"고 벌떼처럼 달려들자 김 후보 사퇴 문제를 흐지부지해 버렸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라는 문재인 고문은 나꼼수를 자기 선거구인 부산으로 초대하고 다른 지방 후보들도 나꼼수 방송에 같이 나오겠다고 녹음이 진행된 부산까지 내려갔다. 민주당은 국민은 보이지 않고 나꼼수만 무서운가.

지난 9일자 조선일보 사설 <민주당, 국민은 안 보이고 나꼼수만 무서운가>의 마지막 부분이다. 천하의 조선일보가 며칠 간 기사와 사설로 총공세를 퍼부었는데 버티고 있는 민주당과 김용민에 대한 당혹감이 느껴진다.

기자는 문제가 된 김용민의 발언이 충분히 사퇴를 요구할 수 있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공천과정이나 후보등록 이전에 이런 문제가 튀어나왔다면 후보교체가 마땅했다. 그러나 등록 이후 문제가 터졌고 그 8년 전 발언에 대해 후보 스스로 몸을 낮추고 사과했기에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기자는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윤리의 측면을 떠나 정치공학으로 바라본다면 민주통합당의 곤혹은 이런 것이었을 거다. 김용민을 그대로 두면 보수층이 결집하고 특히 부산지방에서 역공에 시달린다. 물론 이 경우 새누리당이 비난하는 ‘막말’은 김용민 발언 중에서는 별로 심하지도 않은 ‘노인 폄하’와 사실상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는 ‘특정 종교 비하’다. 그러나 김용민을 물리면 사실상 지역구 하나를 넘기는 것이 되고 나꼼수를 통해 결집한 젊은 층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다. 그래서 민주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퇴 권유를 하며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메시지만 준 채 김용민의 완주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는 처지다.

조선일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셈법이다. 민주당과 유권자들이 그들의 공세가 중도층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울음을 뚝 그치는 아이를 보고 문간에서 중얼거린다. “나보다 곶감이 더 무섭단 말야?! 진짜로?!?!”

물론 옛 이야기의 호랑이가 할머니와 아이의 대화를 완전히 오해했듯 우리는 조선일보가 나꼼수에 대해 자존심의 상처를 받는 일이 웃기는 상황이란 것을 안다. 문제의 핵심은 조선일보와 나꼼수 중 누가 더 영향력이 세냐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뉴스 소비를 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그에 따라 언론매체의 편집의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그런 변화된 언론 환경 속에 나꼼수 멤버들의 영향력도 존재하는 거다.

좀 더 정치공학적으로 본다면, 그간에 조선일보가 민주당에 대해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립을 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보여줬다면, 신문사 영향력이 쇠퇴하는 상황에서도 민주당이 조선일보를 조금은 더 신경썼을 거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미 설령 민주당이 한미FTA와 강정해군기지를 찬성하더라도 조선일보는 새누리당을 편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민주당으로선 계산이 복잡한 선거상황에서 조선일보의 공세를 더는 고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도 조선일보의 자업자득이다.

소수의견이 존중받기 힘든 폭력적인 사회에 살아서인지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시민들은 본인의 입장이 사회에서 다수의 것인지 아닌지에 대단히 민감하다. “나는 매번 대통령 될 사람에게만 투표했다”라는 말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사회인 거다. 본인이 다수이면 역사를 움직인다 생각하고 소수이다 싶으면 풀이 죽고 낙심한다. 그러다 보니 ‘사표론’도 강하고 애초에 소수임이 뻔한 군소정당에 꾸준히 표를 갖다바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지지율이 낮은 정당을 지지하는 이는 다수 국민을 무시하고 있을 거라는 끈덕진 추정도 ‘주류’에 속하길 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의식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우리는 2002년 대선에서 “나는 매번 대통령 될 사람에게만 투표했다”는 수많은 아저씨들의 신화가 깨진 것을 알고 있다. 그때 선거도 ‘세대 선거’로 알려졌는데, 이회창에 표를 던진 중년 남성들의 낙심이 엄청났다. 그리고 그때 노무현을 찍은 이들은 본인들이 역사를 만든다 믿었고 민주노동당에 대해선 “너희 소수만 보지 말고 대중을 위하는 정치를 하라”고 훈계했다. 그랬던 그들이 참여정부의 인기가 쪼그라드는 임기 말이 되면 ‘조중동에 세뇌당한 무지한 국민들이 나라를 망친다’라며 대중주의자에서 엘리트주의자로 전향하게 된다. 보수진영이 걸핏하면 ‘친북세력의 세뇌’를 들먹이는 이치와 같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상식’과 ‘다수’를 대변해야 한다고 믿고 상황이 이에 어긋나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멘붕’(멘탈붕괴)한다. 조선일보가 '국민'과 '나꼼수'를 대립시키는 게 한 예다. 그럼 나꼼수를 듣는 사람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국민 중 많은 사람들이 나꼼수를 들으니 이런 일이 생겼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에게 동의하는 이들만 '국민'으로 호명하는 것은 조선일보만의 문제도 아니다. 당장 친노진영에서 주로 쓰는 '국민의 힘'이나 '깨어있는 시민' 같은 말의 용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소수 의견에 대한 불관용의 문제는 아마 한국 사회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고쳐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조선일보의 정치평론이 주도하던 세계가 붕괴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며,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당위이기도 하다. 어제 조선일보 사설이 약간의 ‘멘붕’을 보여줬다고는 하나 여기엔 아직 “설마 너희들이 사태를 잘못 본 거겠지?”라는 안도감이 섞여 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새누리당의 우세를 점치고, 잘못된 여론조사 기법을 대체할 새 여론조사 기법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은 야권의 숨은표가 5~10%일 거라는 ‘안전빵’ 예측을 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안전한 예측을 벗어던질 길은 투표 뿐이다. 유명인사들을 모조리 춤추게 하는 70% 득표율이 아니더라도, 65%만 가더라도 조선일보가 예측하는 총선결과와는 전혀 다른 판도가 펼쳐질 수 있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17대 총선 투표율이 60.6%이고 18대 총선 투표율은 46.1%였으니 65%만 해도 충분히 높은 수치다. 그 정도 투표율이면 다음날 조선일보 사설이 진정으로 ‘멘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쉰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혼겁이 나서 똥을 싸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주도했던 시대와 작별하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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