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8년 전 소송 제기했지만 여전히 전국 고속버스 중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는 10대다. 이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4년이 지난 장애인 인권의 현주소다”

8일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 방안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임성택 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은 장애인 인권의 현실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공동주최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장애인차별금지법) 14주년을 맞아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차별 진정 가운데 10%는 ‘장애인 차별 진정’이다. 장애인 차별행위는 차별행위 중 46.7%에 이르지만 권리구제율은 절반 정도다. 2020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에서 다뤄진 1350건의 진정 중 509건이 각하·기각됐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발제문 중 일부 발췌

토론자들은 장애인차별시정기구로서 인권위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성택 전 위원은 인권위 산하에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를 별도로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장애인차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당사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별도 조직을 만들어 장애인차별사건 전문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임 전 위원은 차별시정국에서 장애인차별조사국을 분리하고, 정신과 의사 등 조사관 확충을 제안했다. 또한 인권위에 직권조사·정책권고 활성화 및 가이드라인 제정, 의견표명 활성화 등을 촉구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인권위 업무가 늘어나며 장애인차별시정기구로서의 역할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성희롱·성차별, 장애인차별, 연령차별 등 3개의 차별시정업무를 총괄하고 있으나 조사인력이나 상임인권위원은 늘지 않았다.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는 11명의 인권위원이 결정하는 구조로 이중 상임위원은 단 4명”이라며 “장애인차별은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 모든 차별 사안을 판단하는데 인권위원이 그 많은 사건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과 시간이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명숙 활동가는 “인권위원 중 장애인(당사자 또는 전문가) 위원 추가 증원과 조사관의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시정명령권’의 효력을 높이는 등 적극적인 판단과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1년 4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관계자 등이 장애인등 편의법 및 시행령 위헌 청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연합뉴스)

14년 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이제는 개정할 때

이날 토론회에서 2008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전면 개정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15년 전 법안을 만들 당시 낮은 단계의 내용이라도 법을 제정한 후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며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더디게 조금씩만 내용을 추가하고 덜어내며 시간을 보내온 반면 장애인 생활 영역이 넓어지고 있어 새로운 법 개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자신들이 만든 개정안을 소개했다. 장애의 정의를 넓히고 권리 범위를 확대하는 안이다. 기존 법 목적 조항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표현이 장애 차별을 직접 차별로 한정할 수 있어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수정했다. 또한 장애 정의 기준을 ‘신체적·정신적 손상’에서 ‘신체적·정신적 요인’으로 확대했다. 장애인 교육기관에 ‘학원’을 추가했다.

‘괴롭힘’을 차별행위로 규정했으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애인차별금지 교육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장애인 통학 편의 제공, 발달장애인 교육에 필요한 자료 제공, 장애인 비대면 교육 시 장애유형에 맞는 교육과정 및 각종 보조기 제공 등을 명시했다. 유튜브,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이 가중되고 있어 '온라인 공간’에서의 괴롭힘을 규정하도록 했다.

신설조항은 ▲재난감염 상황에서의 차별금지 ▲가족·가정과 복지시설의 구분 ▲탈시설 지원에서의 차별금지 ▲정신적 장애인의 특수한 차별금지 ▲단체/집단소송 ▲징벌적손해배상제 ▲권리옹호 과정에서의 피해자 구제조치와 보호조치 신설 등이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충분히 담기지 못한 장애유형의 이야기를 담고, 권리를 지키기 위한 방법들도 다시 찾아서 넣으려고 한다”며 “다시 써내려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인에 일상에 함께하는 법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처음 이 법을 고민할 때의 마음으로 함께 지켜보고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