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다시 봄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나뭇가지마다 연하고 여린 초록 잎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생명력을 되찾고 되살아나는 봄이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버티며 다시 꽃 피기를 기다리고 꽃은 기어코 응답한다. 그리고 기어코 기억도 다시 돌아온다. 봄이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찬란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봄이 겨울보다 춥고, 뼈마디까지 시리고 아플 정도로 혹독할 수도 있다.

눈부시게 따뜻한 봄 햇볕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봄은, 봄의 햇살은 그들과 상관없는 생동감, 그들과 상관없는 찬란함으로 심장에 닿지 않는 빛이다. 봄이 되면 어쩔 수 없는 깊은 우울감으로 다시 어두운 방구석에 나를 몰아넣고 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봄이란 단어가, 4월이란 단어 하나가 아물지 못한 상처를 다시 벌어지게 하고 고스란히 고통을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세월호 참사 8주기를 한 달 앞둔 3월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4.16세월호참가족협의회, 4월16일약속국민연대 등 관련 단체 회원들이 '기억과 약속의 달'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윤석열 당선인에게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공식적 사과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완수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8년 전 4월 16일. 같은 자리에서 친구들은 죽고 그들은 살아남았다. 같은 자리에서 가족은 죽고 그들은 살아남았다. 내 아이들이, 내 가족이 죽었다는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8년 전에 일어났다. 그때 아무도 내 아이가, 내 가족이 탄 배가 침몰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세월호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한낮으로 오늘처럼 봄볕이 따뜻한 날이었다. 속보로 전해지는 뉴스를 보며 거짓말이 아닐까 잘못된 뉴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침몰한 배를 보며, 구조되는 사람들을 보며, 실종된 이들의 숫자를 보며, 오열하는 유가족을 보며, 정부가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우울감에 빠져 한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분노했다.

성수대교 사고도 있었고, 삼풍백화점 사고도 있었는데 달라진 것이 없었다. 94년 10월 29일이었다. 아침 7시 40분, 다리 상판 50m가 무너져 강에 떨어졌다.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과 출근하던 시민이 죽었다. 아무도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리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1995년 6월 29일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 한 동이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1천 명 이상의 직원과 고객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사고로 6·25 이후 가장 큰 인적 재해로 남았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친구가 사고 현장에 있었다.

설마, 했다. 삼풍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명단에 A의 이름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사실 확인하기는 무서웠다. 사고 직후인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는 내가 궁금하지도 않았니? 걱정되지 않았어? 화가 난 건지, 서운한 건지, 무서운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떨림이 목소리에서 전해졌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가 찾아왔다.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고 A는 좀 자다 일어나 책꽂이에 꽂힌 책을 꺼내 읽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자고 가겠다고 무심히 말하더니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했다.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은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화를 낸다고 했다. 집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친구 집을 옮겨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바깥에 돌아다닐 수도 없다고 했다. 밖에 나가면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8주기 앞둔 팽목항 [연합뉴스 자료사진]

A가 붕괴 사고 당시 있었던 일을 담담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 A는 아끼는 후배를 잃었다. 당시 A는 후배가 죽었는지 몰랐다. 후배와 후배의 남자친구는 죽고 A는 살아남았다. A는 병원에 있었고 아무도 후배가 죽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붕괴 사고가 있던 날, 후배가 남자친구와 함께 A를 찾아왔다. 후배는 남자친구와 결혼해 같이 유학을 떠나기 전에 A를 보러온 것이었다.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하고 만나 식사를 하며 즐겁게 수다를 떨고 손을 흔들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후배와 후배의 남자친구가 걸어가는 것을 보고 뒤돌아서서 얼마 걸어가지 않았을 때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A는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고 눈앞에서 계단이 무너져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손을 뻗었을 때 남자 직원이 손을 뻗어 자신을 끌어올리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라고 A가 말했다.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고 치료를 받는데 치과 치료실에 다섯 명의 부상자가 들어갔어. 느닷없이 정전되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부상자 전원이 비명을 지르며 치료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울었어. 간호사와 의사가 괜찮다고 아무 일 없다고 달랬지만 진정이 되지 않아 그날 검사도 치료도 받지 못했어. 그런데 말이야. 그날 약속을 잡지 않았다면, 나를 보러오지 않았다면 후배는, 후배 남자친구는 죽지 않았을 텐데. 아니 조금만 일찍 헤어졌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A가 울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씩 허공에 멈춰져 있던 A의 눈동자를 생각난다. A의 마음은 아직도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A의 마음은 아직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머물며 자책하고 있을까. A에게 이렇게 잔혹하고 가혹한 일이 일어나리라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봄이다. 그리고 4월이다. 며칠 후면 16일이다. 8년이다. 아직도 유가족은 거리에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통 속에 있다. 묻고 싶다. 무엇이 변했는가. 약속은 지켜졌는가.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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