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민언련 모니터] 윤석열 당선자는 “혼밥하지 않겠다”며 공개오찬을 소통 행보로 내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한달 간 ‘식사정치’라는 말이 언론에 많이 등장했는데요. 윤 당선자의 공개오찬 일정은 언론에 수없이 대서특필되며 그가 다녀간 식당 주소와 메뉴까지 공개됐습니다. 윤 당선자에게는 ‘맛집을 섭렵한 대통령’, ‘음식에 진심인 윤석열’이란 수식어가, 식당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인증 맛집’이란 표현까지 붙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윤석열 당선자의 ‘식사정치’를 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문제는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윤석열 당선 첫날부터 등장한 ‘식사’ 보도

언론에 등장한 윤석열 당선자의 식사 메뉴와 동행인(3/10~4/2)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은 지난 4주간, 윤석열 당선자가 어떤 음식을 먹고 있는지 꾸준히 보도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의 첫날 행보부터 음식 이야기가 등장했는데요. 채널A <아는 기자/윤 당선인, 첫날 공식일정 9개>(3월 10일 송찬욱 기자)는 대선 후 국민의힘 지도부 체제를 해설하며 “오늘 윤 당선인은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 등과 도시락 오찬을 함께하며 격려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식사가 주된 기삿거리라기보다는 다른 소식과 함께 언급되는 정도였습니다.

3월 셋째 주, 윤석열 당선자가 적극 점심식사 공개 행보에 나서면서 언론도 더 적극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뉴스1 <윤당선인 오늘도 ‘점심 정치’…국힘 지도부와 육개장·냉면·갈비로 ‘당당회동’>(3월 18일 박기범·김유승 기자)은 윤 당선자가 “집무실이 마련된 이후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공개’ 점심 자리를 가졌다”며 “14일 서울 남대문시장 방문에서 윤 당선인은 상인연합회 관계자들과 시장 내 국밥집에서 ‘꼬리곰탕’을 먹었”는데 “직접 수저를 놓아주고, 국밥이 나오자 후추를 직접 뿌려주는 등 소통 행보를 보였”으며 “15일에는 경북·강원 동부 산불 사고 당시 진압대 등에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 한 중식당에서 관계자들과 ‘짬뽕’을”, “16일에는 집무실 인근 한 식당에서 안철수 인수위원장과 권영세 부위원장, 원희룡 기획위원장, 장제원 비서실장, 서일준 비서실장 등과 김치찌개를”, “17일에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위원장, 박주선 대통령취임식 준비위원장, 장제원 실장 등과 집무실 인근 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3월 18일에는 “육개장, 냉면과 갈비”를 국민의힘 지도부와 먹었다며 “당 지도부와 단합을 위한 자리였다”고 전했습니다.

기사만 봐도 식단표 나올 정도

윤석열 당선자의 식사 내용을 알 수 있는 기사 목록 (3/10~4/2) ©민주언론시민연합

메뉴까지 얼마나 구체적인지 기사만 보고 있어도 윤석열 당선자의 식단표를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윤 당선자는 3월 20일, 집무실 용산 이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연합뉴스 <윤 “백악관처럼…내가 토리 데리고 다니면 만남의 광장 될 것”>(3월 20일 이유미 기자)은 기자회견 뒤 “윤 당선인은 인수위 사무실 인근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수제비를 먹고서 경복궁 주변을 산책”했으며 “윤한홍, 이철규 의원 등 참모들이” 동행했다고 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자의 회동에서는 더 자세한 음식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뉴시스 <문·윤, ‘레드 와인’ 만찬…봄나물비빔밥·탕평채로 식사>(3월 28일 김진아 기자)는 “만찬주는 레드 와인이”며 “‘화합·통합’을 상징하는 봄나물비빔밥과 탕평채”, “주꾸미·새조개·전복 등 계절 해산물 냉채와 해송 잣죽, 한우갈비와 더운 채소, 금태구이와 생절이, 모시조개 섬초 된장국, 더덕구이”가 제공되며 “밑반찬으로는 배추김치와 오이소박이가, 후식으로는 과일과 수정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나온 윤 당선자 발언 하나하나 자세히 등장한 기사도 있습니다. 중앙일보 <“물가 못잡는 정권은 버림받는다” 초선에 털어놓은 윤의 고민>(3월 31일 김기정·박태인·성지원 기자)은 윤 당선자가 국민의힘 초선 의원 7명과 식사 자리에서 한 발언을 기사화 하면서 “평소 검사 시절 이 고깃집을 자주 찾았다는 윤 당선인은 ‘여기 항정살 없어요? 이 집 항정살 맛있는데…’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이어 “점심메뉴는 소고기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윤 당선자 ‘먹방로드’ 따라간 언론

언론은 다양한 윤 당선자 입맛과 자주 가는 식당을 줄줄이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경제 <“대식가 윤석열 ‘식사정치’…양념갈비 먹고, 디저트는 민트초코”>(3월 22일 전진영 기자)는 “윤 당선인은 대식가이면서 미식가로 유명”한데, “윤 당선인의 ‘최애 맛집’도 대부분 서초동에 포진해”있으며 이자카야, 중식집, 고깃집까지 윤 당선자가 종종 찾는 음식점을 늘어놓았습니다. 이어 “주종은 소맥(소주+맥주)이”며 “디저트로는 배스킨라빈스를 자주 이용하고 민트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선호하는 ‘민초단’”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윤석열 당선자가 방문한 음식점에 직접 찾아가 ‘먹방’ 영상을 찍은 이투데이(4/1)

여성조선 <꼬리곰탕부터 파스타까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증 맛집>(3월 31일 한혜진 기자)은 윤 당선자가 3월 셋째 주 방문한 음식점을 정리해 가격과 주소까지 자세히 보도했고, 이투데이는 <보니보니/꼬리곰탕·짬뽕·김치찌개·파스타…윤석열 당선인 먹방로드>(4월 1일 기정아 기자)에서 윤 당선자가 방문한 음식점들을 직접 방문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주문해 먹으며 ‘윤석열 당선인의 먹방로드’를 취재했습니다. 이투데이는 “당선인이 혼밥을 안 하는 이유는 밥 먹으면서 나누는 ‘소통’에 더 진심이어서가 아닐까요”라는 뜬금없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식사정치’ 윤 당선자가 처음도 아니다

대통령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시민들과 함께 식사하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과 식사하는 게 윤석열 당선자만의 특이한 행보도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2017년 포항 지진 발생 당시 직접 지역을 방문해 자원봉사자들과 점심식사를 해 연합뉴스가 “피해복구를 돕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한 뒤 오찬을 함께했다”고 전했으며, 취임 2주년을 앞두고는 다양한 성향의 사회원로들과 간담회를 해 경향신문이 “사회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남대문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점심식사를 한 데 대해 아시아투데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인 대표 7명과 근처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하면서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부의 적극적 대응의지를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정치인이 식사를 함께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민생을 챙기며 상대 진영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윤석열 당선자는 주로 인수위원회나 국민의힘 관계자들과 식사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봐도 소통을 위한 ‘식사정치’라기보다는 업무를 하면서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은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식사정치’, ‘소통 정치’라며 윤 당선자의 행보를 추켜세웠고, 식당을 찾아가 르포 기사까지 써내는 정성을 보였습니다.

국민수준 못 따라온 기자의 현안 질문

동아일보 <천막 기자실 ‘깜짝 방문’…“새 청사 가면 김치찌개 끓여주겠다”>(3월 23일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에서는 윤석열 당선자 ‘식사’에 대한 기자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윤 당선자가 3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 앞에 마련된 간이천막 기자실을 찾아 취재진과 즉석 티타임한 것을 기사화한 내용인데요.

‘현안 이야기를 해달라’는 취재진의 물음에 이 티타임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기사에 등장하는 기자들의 질문은 ‘식사’와 관련돼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는 “그는 ‘진짜 혼밥을 안 하느냐’는 질문에 ‘아침은 가끔 혼자 먹죠’라고 했다가 ‘아니다. 강아지랑 같이 먹는다. 내가 뭘 먹으려고 하면 (반려동물들이) 딱 와서 쳐다보고 있어서 나눠주고 같이 먹는다’고 답했다”며 “부인 김건희 여사와는 함께 아침식사를 하지 않느냐는 말에 ‘우리 집사람은 아침 안 먹는다’며 웃어 보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서 “‘요즘 집에서 요리 하느냐’는 물음엔 ‘김치찌개도 끓이고 누룽지도 끓인다’고 말했다”며 “윤 당선인은 ‘취임하면 기자들에 김치찌개 끓여준다고 하셨다’는 취재진의 말에 ‘(용산에) 청사가 마련되면 구내식당에서 제가 저녁에 (김치찌개를) 양 많이 끓여서 한 번 같이 먹자’고 답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분명 ‘현안 이야기를 해달라’는 취재진 요청에 의해서 가진 티타임이라고 했음에도, 기자가 생각하는 현안은 국민 눈높이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3월 23일 ‘즉석 티타임’은 사실 당선자 측에서 “기자회견이 아닌 만큼 현안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알려져 논란된 바로 그 행사입니다.

이어 매일경제 <탈혼밥, 직접 브리핑, ‘믹스커피’ 회동…윤, 과감한 행보 ‘눈길’>(3월 26일 변덕호 기자)는 “‘탈혼밥(혼자 밥을 먹지 않겠다)’ 선언에 김치찌개 오찬, 그리고 취재진과 믹스커피 회동까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격의 없는 소통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며 “출근길에 기자실을 찾아 취재진과 티타임”을 가진 윤 당선인 행보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기사 어디에도 기자들이 윤 당선자에게 날카롭게 한 현안 질문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윤 당선자 사진에 ‘고심’이라고 표현한 뉴스1(3/25)

‘협치’, ‘소통’ 없다 비판의 목소리도

물론 이런 식사 받아쓰기, 식사정치 찬양 보도를 비판하는 언론도 있습니다. 한국일보 <‘땡점뉴스’ 맛집 탐방은 소통 아니다>(3월 28일 고찬유 혁신데스크)는 “‘식사정치·오찬정치’라는 수사 아래 그 속뜻까지 우려낸 글자들을 음미하려니 마음이 더부룩했다” 비판하며 “‘땡점뉴스’라는 조어가 떠올랐을 만큼 부끄럽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끼리끼리 친한 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식당에 가서 같은 편에게 음식을 덜어주는 모습이 과연 소통인지는 의문”이라며 “구체적으로 소통을 어떻게 한 건지 알맹이도 빠져 있고” 소통이라 이름 붙이려면 “반대편,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밥상에 앉아야” 하지만 “당선인의 밥상에는 아직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겨레 역시 <보름동안 민주당과 만남 없는 윤석열…통합과 협치 빠졌다>(3월 23일 배지현 기자)에서 “연일 공개오찬을 하고 있지만 그의 ‘식사 파트너’로는 ‘자기편’이 대부분이”며 “점심 메뉴까지 공개하며 소통을 위한 ‘식사정치’를 강조”했지만 “윤 당선자의 오찬 회동 명단에 상대 정당 인사는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윤 당선자가 여의도 밖에서 영입한 인물이라 야권과의 협치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자기고집이 강한 것 같다”며 “신구권력 대립이 부각되는 상황인 만큼 먼저 손 내미는 제스처를 보여주길 바란다”는 국민의힘 관계자의 전언과 함께 “역대 최소 득표차로 당선된 만큼, 상대편을 아우르는 ‘통합’ 행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맛집 기사 난립에 남는 건 '언론혐오'뿐

윤석열 당선자의 식사를 소개한 기사 대부분은 ‘식사정치’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정치도 소통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디어스 <윤 당선자 식사정치 김치찌개 맛까지 평가한 매일경제>(3월 22일 고성욱 기자)에서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윤석열 당선자의 국정운영 계획 등 쓸 기사는 차고 넘치는데, 윤 당선자의 개인 일상에 대한 보도행태는 취재를 통해 사회적 의제를 시민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보도 방식은 당선자에게 잘 보이려는 ‘윤비어천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는데요.

정작 담아내야 할 새 정부의 정책과 현안은 빠진 채 윤 당선자의 음식 메뉴에 집중하고 긍정 일색의 보도는 언론 스스로를 희화화했으며, 국민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믿을 만하고 가치 있는 보도는 언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 기사를 연일 보도하며 ‘언론 혐오’, ‘언론 불신’의 시대를 부추길 게 아니라 의미 있는 기사로 신뢰를 높여가는 언론이 되길 바랍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2년 3월 10일~4월 5일 ‘윤석열’을 키워드로 포털 네이버에서 검색한 기사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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