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법무부의 ‘인격권’ 명문화 추진과 관련해 일부 신문이 언론의 경제권력 감시기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법무부가 인정한 법인 인격권으로 인해 기업이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판은 지난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면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은 대기업 임원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개정안을 수정했다.

법무부는 5일 인격권과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무부는 인격권을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로 규정했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피해 회복 조치를 청구할 수 있고, 인격권을 침해할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예방이나 손해배상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무부 설명에 따르면 당사자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편집된 영상물·기사는 예방청구권 대상이 된다. 또한 언론이 보도하지 않기로 약속한 상황에서 사적 대화 녹음파일을 보도하려고 할 때 대화 당사자는 예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일보·경향신문은 ‘인격권 명문화’에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법무부가 법인의 인격권을 인정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개인뿐 아니라 법인의 인격권이 인정된다. 즉 기업 등 경제권력이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언론사에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일보는 7일 사설 <인권 확장 기여할 '인격권', 표현 자유 위축 유념을>에서 “인격권을 앞세운 소송이 남발되고 특히 언론을 대상으로 한 법정 분쟁이 늘어날 경우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며 “특히 기업의 경우 비판기사 통제 수단으로 법인의 인격권을 전가의 보도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6일 사설 <민법의 ‘인격권’ 신설, 사회 변화 발맞춘 인권 확장 계기 되길>에서 “개정안은 사람이 아닌 법인도 ‘인격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법인의 인격권 부여에 대해선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대기업 등이 언론·시민사회의 비판을 ‘법인의 인격권 침해’로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설 경우 경제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썼다.

이와 관련해 정재민 법무부 심의관은 5일 브리핑에서 “판례상으로 법인의 경우에도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아주 높은 경우, 허위광고·허위기사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구성할 수 있다. 이를 전제로 근거조항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경향, 인격권 명문화 긍정평가"언론 역시 그동안의 보도 관행 되돌아봐야"

한국일보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 역시 그간의 보도 관행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소송 증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다양한 판결에서 이미 인격권 개념이 통용되고 있어 사법부의 판결 흐름을 바꿀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언론 역시 인권을 염두에 두고 그동안의 보도 관행을 되돌아볼 계기로 삼을 만하다”고 했다.

또한 한국일보는 입법예고안에 대해 ”손해배상을 재산 이익 침해에 한정하지 않고 온라인 문화 확산 등에 따른 인격적 이익 침해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타인의 인격권 침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만하다 인권 지평을 넓히고 인권 존중 사회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법 개정 작업이 국회의 태만으로 다시 허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사회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권익 침해가 증가하는 현실을 법에 반영하는 조치로 긍정 평가한다”며 “인격권 침해의 중지를 청구하거나 필요시 선제적으로 침해 예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주목한다. 디지털 성범죄 등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는 일단 발생하면 회복이 어려운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은 “이번 민법 개정이 인권의 지평을 확장하고, 더 나은 인권존중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썼다.

정재민 법무부 심의관은 브리핑에서 “고의적인 오보, 몰래 녹음한 대화를 보도하는 것에 대해 인격권 침해를 주장하는 소송은 이미 있었다”며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 자유는 여전히 보호돼야 한다. 인격권이 도입된다고 해서 그런 부분이 무시되고, 모든 것이 인격권 침해가 되는건 아니다”라고 했다. 정 심의관은 “그동안 언론 피해 중심으로 인격권이 인정돼 왔는데, 이제는 학교폭력·디지털 성범죄 분야로 확대할 수 있다는 데 취지가 있다”며 “언론자유의 범위에 대해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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