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현직 기자 상당수가 근무 중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로부터 트라우마에 대한 체계적 교육을 받은 기자는 2.3%에 불과했다. 한국기자협회·한국여성기자협회는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가이드라인 제정 및 트라우마 지원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다.

한국기자협회·한국여성기자협회가 회원 5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근무하는 동안 심리적 트라우마를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기자 78.7%는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가끔 있다” 51.5%, “자주 있다” 19.3%, “매우 빈번하다” 7.9%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기자 중 59.3%는 “1년에 2회~3회 트라우마를 느꼈다”고 밝혔다. 트라우마를 느낀 적 없는 기자는 21.3%다.

(사진=픽사베이)

트라우마 경험 당시 소속 부서는 사건·법조 등 사회부가 48.4%로 가장 높았다. 이어 지방자치단체 등 지역 10.3%, 경제·산업·금융 등 경제부 9.3%, 청와대·정당·외교·안보 등 정치부 6.1%, 탐사보도·기획취재 5.8% 순이다. ‘어떤 상황에서 트라우마를 느꼈는가’에 질문(중복 응답)에 61.0%는 "취재과정", 58.4%는 "독자들의 반응"이라고 답했다.

한 달 이상 트라우마를 겪은 기자는 43.9%다. 통상 트라우마 지속 기간이 한 달을 넘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다. "1일~30일 이내"는 46.9%, "하루"는 9.1%다.

트라우마를 느끼는 취재현장을 4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 '희생자 가족 및 관련 단체 취재'가 2.80점으로 가장 높았다. 아동학대(2.63점), 자살사건(2.52점), 대형화재 및 폭발·침몰 사고(2.43점), 성범죄(2.38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질병(2.25점), 온라인 커뮤니티(2.22점) 등도 평균값인 2점을 넘었다. 성범죄 취재 중 트라우마를 겪은 응답자의 성별 비율은 여성 63.0%, 남성 30.1%다.

기사로 인해 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는 기자는 77.9%에 달했다. 공격 방식(중복 응답)은 기사 댓글을 통한 조롱 75.2%, 댓글을 통한 모욕 74.3%, 댓글을 통한 협박 45.0%, 공격적이고 불쾌한 내용을 올리는 트롤링 35.1%, 신상털기 30.7%, 성적 수치심 유발 18.4% 순이다.

'정기적·체계적 교육' 받은 기자 2.3%

트라우마에 대한 언론사의 대응이 미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보도 전 회사로부터 적절한 교육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기자 81.8%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형식적 교육을 받았다는 기자는 68명(15.9%), 정기적이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기자는 10명(2.3%)이다.

기자 대다수는 개인적인 방법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있었다. '휴가 등 현장과 거리두기' 42.5%, '주변인과의 상담' 37.9%, '술·수면제 등 약물 의존' 27.3% 등이다. '조직 내 관련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트라우마를 겪고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기자는 20.6%다. ‘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상당수는 '시간이 없어서', '바빠서'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42.3%는 트라우마와 관련해 회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법적 도움을 받을 곳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60.3%는 없다(전혀 없다 30.5%, 거의 없다 29.8%)고 했다. 상담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답한 기자는 68.0%다. 기자협회는 “기자들은 일상적인 취재 활동 중에 트라우마를 자주, 많이 느낄 수 있는데도 조직 차원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 18.5%는 기사와 관련해 특정인으로부터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중 57.4%는 “회사에 도움을 요청한 적 있다”고 밝혔다. ‘어떤 후속조치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37.9%는 “없었다”고 답했다. 회사로부터 법적 지원을 받았다고 밝힌 기자는 7명에 불과했다.

기자협회·여성기자협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트라우마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방침이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보도 이후 댓글 등에 기자와 언론의 인격을 모독하는 글로 2차 피해를 겪으며 기자들이 트라우마를 겪게 되는 방법 또한 다양화되고 강도도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취재 환경부터 하나씩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여성기자협회장은 “공감은 취재와 기사 작성의 시작점이지만, 기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현장 기자들이 사회구성원, 특히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스스로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언론계가 함께 트라우마 예방과 치유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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