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에 합류했다가 해촉된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 교수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난 여성들의 분노를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역 살인사건 등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이 교수의 전문가적 시선은 시기별로 변화해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 또한 이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사회적 맥락을 지우고 통계를 왜곡,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나중에'로 미루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해 12월 이수정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이 기자 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강남역 살인사건' 재정의로 여성운동 지우기… 과거 발언 짚어보니

지난달 16일 조선일보에는 이 교수 인터뷰 기사 <"한국의 여성운동,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변질됐다">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와 이 교수의 주된 타겟은 2016년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이었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의 대중적 분노와 행동을 촉발시킨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었다"고 규정했다.

조선일보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6년. 그 사이 한국의 치안은 훨씬 좋아졌지만, 젊은 여성들은 더 강하게 자신이 '혐오범죄' 대상이라고 느낀다"며 "먼저 규정부터 하자.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였나"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이걸 '여혐 범죄'라고 하는 건 정신질환에 의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아 생기는 오류"라며 "신념을 갖고 여성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여성혐오 범죄와는 범죄학에서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여성혐오 현상이 우리 사회에 없었다면 그런 망상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하자 이 교수는 "정치적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혐오 범죄'라는 말이 거의 신념화된 분위기"라는 질문에 이 교수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젊은 여성들의 피해의식에서 시작된 게 안타깝다. 여성이 당하는 핍박의 증거로 성범죄를 지목하는 전략이 먹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3월 16일 <"한국의 여성운동,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변질됐다"> 갈무리

조선일보는 사회학자·여성학자 중 여러명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혐 범죄'라고 주장했고, 한 교수는 '여혐 범죄가 아니다'라는 자신의 의견을 기사에 인용하지 못하게 했다며 "학자가 이래도 되나"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싸움을 놔두거나,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하게 얘기하면 부추기거나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원래 페미니즘 출발은 여성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를 신장시키는 운동이었다. 범죄와는 연관성이 적었다는 말"이라며 "한국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은 '피해자학'이 되어 버렸다. 피해망상 페미니즘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또 이 교수는 "기성세대는 우리나라처럼 치안이 좋은 곳이 어딨나 하는 말도 한다"는 조선일보 질문에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범죄 검거율이 90%다. 살인범죄율은 낮고, 눈 돌리면 경찰이 보이는 나라도 그리 많지 않다"며 "특정 성별, 연령대 사이에서는 공포 너무나 과장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 교수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당시 '여혐 범죄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 이 교수는 SBS와 인터뷰에서 가해자를 면담해보면 조현병 정도가 심하고 피해망상 수준이 현실적 판단을 하기 어려운 정도였다고 말했다. 가해자 피해망상의 대상이 우연히 여성이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범죄로부터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통계적으로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4대 강력범죄의 피해자 87%가 여자들이다. 그러니까 불안해하시는 데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며 "이 사건의 직접적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이렇게 범죄 피해에 많이 내몰리는 여성들에 대한 세분화된 체계적인 접근을 해 범죄 피해자로 여성들이 편입되는 비율을 낮춰야 되는 건 틀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이 교수는 오히려 여성들의 추모·시위 행렬, 여성 표적 범죄의 증가 등을 거론하며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인 2018년 5월 이 교수는 JTBC와 인터뷰에서 "누구라도 그 지역에 그 시간대에 있었던 사람은 여성이라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퍼져서 결국 지금과 같은 추모행렬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앵커가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니면 그냥 묻지마 범죄인지 당시 논란도 있었지만 여성혐오 범죄가 맞군요"라고 묻자 이 교수는 "둘 다 맞다. 여성을 특정해서 목표물로 삼았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없었던 범죄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 추모집회에 남성들이 참여하자 "남성성을 요구하는 것이 남자들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2주기 추모집회 당시 염산테러를 예고하는 등 인터넷상 '백래시'와 여성혐오 현상이 나타나자 이 교수는 "그야말로 위협하고 테러하겠다는 무차별적인 공격"이라며 "이런 혐오주의 만연되는 부분들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일부는 처벌도 해야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18일 JTBC <아침&> 방송화면 갈무리

강남역 살인사건 3주기인 2019년 5월 이 교수는 CBS라디오에 출연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증가하는 상황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3년 전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나'라는 질문에 "많은 여성들이 강남역으로 몰려들었던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며 "여성 대상 범죄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들은 실무자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됐었지만 일반인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호소하는 장면을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 통계가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2017년도 통계를 보면 4대 강력범죄(살인·성폭력·강도·방화) 중 남성 피해자는 3천건, 여성 피해자들이 3만건 정도로 10배 정도 여성 피해자가 많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데이트성폭력·디지털성범죄 등이 만연하고 '버닝썬 사건'이 발생한 상황에 대해 "도대체가 불안감을 안 느낄래야 안 느낄 수가 없다"며 "강남역 사건 3주기를 맞이해 여성들이 시위를 안 할 수가 있는 건가. 제 눈에는 하는 게 너무 당연해 보인다"고 토로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4주기 때도 이 교수는 CBS라디오에 출연해 "굉장히 기억에 남는 시위 현장이었다. 최초로 너무나 많은 젊은 여성들이 아무런 조직 없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메모지를 알록달록하게 붙인 게 지금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당 방송에서 강남역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명명하기 두려웠다면서 그 이유를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대상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저도 (가해자가)여성을 기다렸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지만 여성혐오 범죄라고 부르기가 두려웠다. 어떤 어휘가 주어가 되면 그 어휘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라며 "그 어휘는 유의해서 사용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한편으로 들 정도로 여성혐오 범죄라는 것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여가부 폐지' 띄우려 통계 왜곡… '성불평등' 과제는 '나중에'?

이 교수는 5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그 대안은?'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성차별지수가 높다는 주장만 계속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한국의 성불평등지수가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지 않다며 돌연 '자살률' 문제를 꺼내 들었다.

이 교수는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상 한국 성별격차지수(GGI)는 156개국 중 102위로 낮긴 하지만 20년 동안 세계 1위인 자살률만큼 심각한 지표는 아니다"라며 "유엔 양성불평등지수(GII)에서는 우리가 11등이고 아시아에선 1등"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여가부와 같은 독임제 부처 형태로 성평등기구를 두는 곳은 "기껏해야 10개 나라밖에 없다. 위원회 등 다양한 형태의 부처가 존재한다"면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논의되는 여가부폐지-위원회 설치 방안에 대해 "아주 근거가 없지 않다"고 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그 대안은?> 토론회 (사진=연합뉴스)

이날 한겨레는 <[팩트체크] 잘못된 사실, 맥락 삭제… 이수정 교수의 위험한 주장>을 통해 이 교수의 통계 왜곡을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 교수가 인용한 '유엔 성불평등지수'(GII)에 대해 "△모성사망률 △청소년 출생률 △여성의원 비율 △중등 이상 교육 비율 △경제활동 참가율 등 5개 지표를 토대로 산출한다"면서도 "그러나 모성사망률, 청소년 출생률 지표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점이 이런 결과에 기여한 맥락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우리나라 청소년 출생률(15∼19살 여성 1000명 중 출산한 인원)은 1.4명으로, 조사대상 189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 모성사망률(여성 10만명 중 출산으로 사망한 인원) 역시 11명으로 적은 편"이라며 "반면 남성과 여성의 정치·교육·노동 분야의 ‘성 격차’를 보여주는 지표는 구조적 성차별의 현재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여성의원 비율은 16.7%다. 같은 16%대 나라는 저개발국이 포진해 있다"고 짚었다.

'유엔 성불평등지수' 종합 점수만 놓고보면 한국의 순위가 낮지 않지만 각 지표를 봐야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가 앞서 언급한 '성별격차지수'(GGI)의 경우 성별임금, 여성정치 참여율과 고위직 비율 등을 따지기 때문에 한국의 순위는 매년 하위권이다.

이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성평등 전담기구를 독립부처형으로 둔 곳이 10개국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160개국에서 독립부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바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달 13일 발간한 '국내외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94개 국가에 성평등 전담 기구가 설립돼 있다. 독립부처(부·청) 형태가 160개국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위원회 형태는 17개국, 하부조직 형태는 13개국, 비정부기구 형태는 4개국 등으로 집계됐다.

조직형태 현황을 연도별로 보면 독립부처형은 2008년 107개국에서 2020년 160개국으로 늘어났다. 반면 비정부기구형은 27개국에서 4개국으로, 위원회형은 20개국에서 17개국으로, 하부조직형은 16개국에서 13개국으로 줄어들었다. 성평등 전담기구를 독립부처형으로 두는 게 '추세'라는 얘기다.

각국 성평등 전담기구 명칭을 '여성' '젠더' '성평등' 등으로 구분해 살펴본 결과, 2020년 기준 194개국 중 기구 명칭에 '여성'이 포함된 국가는 70개국으로 나타났다. 젠더는 22개국, 성평등 8개국, 평등 7개국, 여성+젠더 2개국, 여성+평등 2개국, 여성+젠더+평등 2개국, 기타는 81개국이었다.

이수정 "피해의식이 근거 없으면 망상… 범죄학자로서 언제나 일관성 있었다"

7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이 교수는 조선일보 '피해망상 페미니즘' 인터뷰에 대해 "피해의식이 과장됐다는 걸 신문에서 그렇게 지칭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워딩을 한 적 없나'라는 질문에 이 교수는 "그 워딩을 쓰든 말든 피해의식이 현실적 근거가 없으면 망상"이라며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얘기를 그렇게 표현했을 수는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1명이 안 된다.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그런데 왜 우리가 범죄를 무서워하게 됐느냐,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강남역 사건에 대한 규정과 여성운동에 대한 관점이 시기별로 달라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범죄학자로서 일관성 있게 입장을 얘기해 왔다"며 "언론이나 제3의 단체가 내 주장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강남역 사건 규정과 관련해 방송에서 여혐범죄와 묻지마 범죄가 '둘 다 맞다'고 답한 데 대해 "내가 '여성혐오 범죄', 이 6글자를 얘기한 적이 없다"며 "하도 여성단체들에서 성화를 해 꼭 그런 것(묻지마 범죄)은 아닐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지 애시당초 '여성혐오 범죄'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강남역 사건 추모·시위 행렬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현상과 내용을 분리해 찬반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젊은 여성들이 드디어 한목소리로 공동의 문제를 찾았기 때문에 긍정평가했다. 여성이 정치세력화 되고, 목소리를 내는 전반적인 흐름에 동의한다"며 "지금도 나는 민주당에 들어간 박지현을 응원한다. 근거 없이 과잉으로 오버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역 사건 추모·시위의 대표적 구호가 '여자라서 죽었다'였고, 일련의 시위 내용에 긍정적 평가를 내려온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용인이 안 됐던 게 바로 '여성혐오 범죄'라는 용어다. 왜 여성이 혐오의 대상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게 아니다. 어떻게 이 시점에 성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여성인권이라는 게 그렇게 바닥 수준이 아니고, 여성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나가는 게 아닌데 왜 자꾸 죽는다고 위협하느냐"라며 "사실이 아닌 걸로 호도하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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