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선일보가 경찰이 시위 대응용 살수차·가스차를 폐차한 것을 '문재인 정권 눈치보기'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권고하고, 경찰이 이를 수용하며 살수차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경찰청은 환경부 지침에 따라 사용 연한이 지난 차량들을 폐차했으며 살수차의 사용 조건이 매우 엄격한 만큼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4월 1일 <[단독] 文정권 눈치봤나... 경찰, 폭력사태에 대응할 살수차 모두 없앴다>

조선일보는 1일 기사 <[단독] 文정권 눈치봤나... 경찰, 폭력사태에 대응할 살수차 모두 없앴다>에서 "경찰이 도심 내 대규모 폭력 사태 등에 대응하기 위한 살수차와 가스차 30대를 모두 폐차한 것으로 31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부제목으로 "경찰 안팎선 '정권 눈치본 것'", "'전문가 '獨·佛 등 선진국서도 써… 시위대·경찰 직접 충돌 막는 역할'", "일선 경찰들 '몸으로 막으란 것" 등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해 6월 무렵 전국에 있던 살수차 18대, 가스차 12대를 폐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선일보에 "작년 환경부에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보유한 경유 차량 중 사용 연한이 지난 것을 폐기하라’는 지침이 내려와, 그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경찰이 기존 살수차·가스차를 폐기하면서 새 차는 들여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경찰이 앞세운 ‘환경부 지침’이나 ‘사용 연한’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불법 집회·시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온 현 정부 기조에 맞춘 결과 아니냐는 것"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살수차 사용을 자제하는 것과 아예 한 대도 남기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 "백남기 씨 사건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사건 하나 때문에 경찰이 당연히 보유해야 할 살수차를 없앤다는 것은 비합리적", "급박한 상황에서 살수차가 한 대도 없으면 결국엔 경찰관들이 몸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는 경찰 관계자들의 발언을 전했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시내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종로1가 인근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모습 (사진=연합뉴스)

특히 조선일보는 "지난 2015년 11월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든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10개월 뒤 사망한 사건 이후 경찰은 지금까지 살수차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며 "2020년엔 정부가 경찰 장비 규정을 바꿔 살수차의 동원 요건 중에 ‘불법 집회·시위’를 없애고 ‘소요 사태’만 남겨 놨다. (중략)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모조리 폐차해 버린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소요 사태'뿐 아니라 '집회·시위'에서도 살수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독일·프랑스·터키 등에서도 과격 집회가 벌어졌을 때 살수차를 동원한다"면서 "살수차는 시위대와 경찰의 거리를 벌려 충돌을 막아주는 장비다. 유럽 선진국에서도 과격 집회 시 사용한다"는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발언을 전했다.

지난 2017년 9월 경찰은 집회·시위 현장에 '무(無)살수차·무(無)차벽'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개혁위원회는 '집회·시위자유 보장방안 권고안 및 부속방안'을 확정해 경찰에 권고했다. 경찰개혁위는 '소요 사태' 또는 '핵심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공격행위'로 시설이 파괴되는 등의 예외적인 경우에만 살수차를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경찰이 이를 수용하면서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개정됐다.

살수차 폐기를 문제삼는 것은 경찰이 집회·시위에 살수차를 사용하라는 것밖에 안 되는 상황이다. 2017년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개혁위 권고를 수용하면서 "최근에 가장 큰 집회·시위였던 2015년 민중총궐기에서도 ‘소요죄’라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일반 집회가 (소요 사태에) 해당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요죄(형법 제115조)는 '다중이 집합하여 폭행, 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말한다. 소요죄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며 1980년대까지 독재정권이 민주화 집회·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적용됐다. 또한 '다중 집합' 등 적용 기준이 모호해 '반헌법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수십년 간 사문화됐다.

조선일보가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보도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이 적용한 혐의가 바로 '소요죄'로 1986년 ‘5·3 인천사태’ 이후 29년 만이었다. 그러나 2017년 검찰은 경찰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적용한 '소요'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불기소 처분했다. 경찰의 '무(無)살수차' 원칙 선언과 규정 개정이 사실상 '살수차 퇴출'을 의미하는 이유다.

2017년 6월 16일 당시 이철성 경찰청장이 서울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이 청장은 일반 집회와 시위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사용 여건도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청 관계자는 1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언론보도에서 어떤 주장이든 할 수는 있다. 조선일보 보도 같은 주장이 있을 수는 있다"면서도 '정권 눈치를 보고 살수차를 폐기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살수차를 불용·폐차한 이유는 말 그대로 환경부 지침, 그리고 현실적인 사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던 것"이라며 "살수차는 사용 요건이 매우 엄격하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이 살수차 등을 새로 도입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현 상황에서 소요 사태와 같은 집회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경찰청 관계자는 "일단 그렇다"면서 "조선일보 주장과 같은 상황(소요 사태)이 도래한다면 봐야 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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