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른다. 조선일보가 오늘자(2일) 1면에 보도한 <월정사 국고지원, 신씨와 무관>이라는 기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기사가 전하는 핵심은 △문화재청이 2005년∼2007년 사이 월정사에 국고 47억원을 지원한 것은 신정아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과는 관련이 없고 △사찰의 문화재 보수 정비 복원 차원에서 2004년부터 적법 절차를 거쳐 예산에 편성돼 2005년부터 집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선은 “월정사 국고 지원 문제를 신정아씨의 교수 임용과 연관지어 보고 있지 않으며, 그것과 관련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도 않다”는 한나라당 성명서도 인용, 보도했다.

▲ 조선일보 10월2일자 1면.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내야할 사안을 1면 기사로 내보낸 조선

어이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 이 보도는 정정보도로 내보냈어야 할 사안이다. 백번을 양보해 정정보도가 어렵다면 반론보도 형태로 나갔어야 할 내용이다. 1면 스트레이트 기사 형태로 처리할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월정사 국고지원을 신정아씨 동국대 교수 임용과 연관 지어 의혹을 제기한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9월21일자 1면 <동국대 이사장이 회주였던 월정사에 신씨 교수임용 때부터 국고 47억원 지원>과 같은 날 5면 <월정사 3년간 국고지원액, 전국 사찰중 최다>라는 기사를 통해 관련 의혹을 제기한 곳은 다름 아닌 조선일보다. 조선은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 조선일보 9월21일자 5면.
‘그랬던 조선일보’가 갑자기 오늘자(2일) 1면에서 월정사 국고지원과 신정아씨 동국대 교수임용과는 무관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고, 부끄러움과 윤리의식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다.

조계종의 법적 대응과 ‘불심’이 두려웠던 것인가

자존심 강한 조선일보가 이 같은 ‘졸속 기사’를 내보낸 배경이 무엇일까. 오늘자(2일) 중앙일보에 단서가 실려 있다.

▲ 중앙일보 10월2일자 8면.
중앙은 2일자 8면 <조계종 “음해성 보도 강경대응”>에서 “지난달 28일 월정사 측은 문화재 관리 국고 지원 의혹을 보도한 일부 언론을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며 정정 및 사과를 요구했다”면서 “이날 주지 정념 등 월정사 스님들은 직접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항의 방문, 강재섭 대표를 만나 ‘일부 언론의 추측성 의혹 보도는 한나라당의 자료에서 비롯된 불교 폄훼’라며 ‘박찬숙 의원실과 정종복 의원실에서 내놓은 왜곡된 자료가 이러한 기사에 대한 원인 제공 역할을 했다’며 당 차원의 공식 해명과 입장 천명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려진 내용이다. 그런데 중앙의 기사를 보면 불교계 쪽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정리하면 이렇다.

△5일 조계종 전국 25개 교구의 본사 주지회의를 소집을 통해 불교계를 향한 음해성 보도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할 계획이고 △중앙신도회 등 일부 재가불자 단체도 ‘강경 대응’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들 단체는 해당 언론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고려 중이고 △조계종 총무원은 이달 중순께 대규모 집회 개최도 검토 중이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

정리하자. 조선의 이 기사는 좋게 말해서 ‘불심’을 달래기 위한 차원에서 내보낸 성격이 짙다. 조계종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서인지 한나라당이 부랴부랴 ‘불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는 과정에서 나온 조선일보의 오늘자(2일) 기사는 조선과 한나라당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증거물’에 가깝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지난달 보도한 ‘특종’을 전면 부정하는 내용을 1면에 배치하면서 ‘월정사 국고지원 문제를 신정아씨의 교수 임용과 연관지어 보고 있지 않다’는 한나라당 입장을 충실히 반영해주는 조선일보의 태도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경과 이유가 어떠하든 간에 정정보도를 1면 기사로 ‘둔갑시킨’ 조선일보의 ‘철면피’에 새삼 놀라움을 느낀다. 이런 신문을 ‘1등 신문’으로 대접(?)해야 하는 한국 언론 현실에 절망을 느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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