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와 KBS 구성원들이 '공정방송 쟁취'와 '사장 퇴진'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해 파업을 진행한 지 27일로 벌써 58일(MBC), 22일(KBS)째다. 퇴로없는 '끝장투쟁'에는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아나운서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김정근 MBC 아나운서가 정직 2개월, 3000만원 재산가압류에 이어 <제대로 뉴스데스크> 내레이션을 이유로 고소까지 당하고, KBS에서는 이상호 아나운서가 파업 도중 <세상은 넓다> 진행자 교체 방침을 통보받는 등 여타 직군에 비해 두드러지는 '보복'을 당한 것이다.최원정 KBS 아나운서 역시 파업 초기 KBS 1FM <새아침의 클래식> 진행자 교체 방침을 통보받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향후 파업 참여 아나운서들에 대한 보복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 김경화 MBC 아나운서와 이광용 KBS 아나운서.

26일, <미디어스>는 김경화 MBC 아나운서와 이광용 KBS 아나운서가 '파업'을 주제로 '공적 수다'를 떠는 공간을 마련했다. 엄중한 상황, 그러나 '즐거운 투쟁'이라는 모토에 걸맞게 파업에 참여한 이들 아나운서들은 이번 싸움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정방송'이라는 대의에 충실한 투쟁인 만큼,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섹션TV 연예통신> <뽀뽀뽀> 등에 출연했던 김경화 MBC 아나운서(2000년 입사)는 파업 전까지 <파워매거진>(금요일 오후 5시)과 <그린실버 고향이 좋다>(일요일 오전 7시) 진행을 맡았으나 현재 프로그램에서 빠진 상태다. 2003년에 입사한 이광용 KBS 아나운서 역시 인터넷 방송인 <이광용의 옐로우카드>를 잠시 멈추고 파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1. 치졸한 보복

작년, 한 모임에서 만났던 이 둘은 오랜만의 재회에 서로를 반가워했다. '파업'이 단연 화제다.

김경화: 김정근 아나운서가 <제대로뉴스데스크> 내레이션 때문에 고소당했잖아요. 내레이션 때문에 고소당하는 거 본 적 있어요?

그래서, 저도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나도 고소당할지 모른다'고 말하고 왔어요.(웃음) 김정근 아나운서가 노조 교육문화국장이긴 하지만, (상징적 효과가 큰 아나운서이기 때문에) 표적으로 당한 측면이 있죠. 처음에는 김정근 아나운서 목소리인줄도 몰랐다가 색출해서 알아냈다고 하더군요.

▲ 김경화 MBC 아나운서

회사측에서는 김정근 아나운서를 통해 <제대로뉴스데스크>를 제작한 사람, 촬영한 사람 모두 알아내고 싶었는데 못 알아낸 거죠. 일제시대에 앞잡이 한 명 붙잡아서 '다 불어라!' 이런 분위기예요. 말도 안 되죠.

이광용: 그래요? 자세한 상황은 잘 모르고 있었어요.

김경화: (아나운서들을) 겁주려고 하는 게 있어요. 사실, 타격 주기가 너무 쉽죠.

이광용: 저희도 2010년 새 노조 파업 직후에 김윤지 아나운서, 이재후 아나운서가 프로그램에서 강제하차당했어요. 새 노조에 아나운서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큰 그림'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너희, 새 노조 들어가면 가만 안 둔다'는 건데, 실제로 2010년 파업 이후로 아나운서 조합원들의 추가 가입이 전혀 없었답니다.

김경화: 그렇군요. 사실 저도 파업 초기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파업이 끝난 이후 돌아갔을 때, 어떻게 될지 생각 안하려고 해요. 두려움이 커지면, 결국 김재철 사장이 원하는 대로 될 테니까….

이광용: 제 프로그램(이광용의 옐로우카드)은 완전히 멈춘 상태예요. KBS 홈페이지, 네이버, 다음에서 서비스되는 건데 파업 직전에 200회 특집을 한 이후로 완전히 멈췄어요.

김경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은 것 같네요. 상진이(오상진 아나운서)만 해도, <위대한 탄생2> 실제 경연 들어갈 때 딱 그만두게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상진이 마음도 안 좋을거고…. 방송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건 정말…가슴 아픈 일이죠.

이광용: 제 프로그램도 소수 마니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2008년 5월 첫 방송한 이후로 멈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저한테는 가장 소중한 프로그램인데, 그만큼 이 싸움이 중요하니까.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많이들 응원해 주시더라구요.

김경화: 제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제가 빠져있는 상황인데도 방송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어요. 남자MC 혼자 진행하는 구조로. 그런데, 밖에서 싸우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저 혼자만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고생은 함께 하는 거니까.

이광용: 방송이 정말 좋아서 아나운서가 된 건데, '산소'와도 같은 프로그램을 빼앗아 버리면 회사에 다니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방송을 쉬게 하는 것, 아나운서들에겐 정말 엄청난 징벌이죠.

#2. 똘똘 뭉친 MBC 아나가 부러운 KBS 아나들

동일한 목표를 위한 싸움이지만, 아나운서들의 경우만 놓고 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김경화: 근데, KBS는 노조가 둘로 나뉘어 있죠?

이광용: 예. KBS 본사 아나운서가 100명이고 그중 노조 가입 가능한 사람이 80여 명인데 14명만 참여하고 있어요. 20%도 안 되는 수치예요.

김경화: 그럼, 파업해도 프로그램은 정상 운영되고 있겠네요?

이광용: 그럼요. 아주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죠….

김경화: 새 노조에 가입하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이광용: 그렇죠. 현재 KBS 권력구조상 새 노조 활동은 '주홍글씨'나 마찬가지니까.

어떤 것까지 있었냐면, 7월 런던올림픽 AD카드 제출해야 하는데 새 노조 소속인 김현태, 이재후, 최승돈 아나운서의 경우 담당 팀장을 통해서 '파업 풀지 않으면 런던 못 간다'고 직접적으로 협박까지 했어요. 유능한 스포츠 캐스터들인데.

김경화: 진짜 그럼 안되는 건데….

이광용: 그니까요.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죠. 근데 이게 기사화되니까 이틀만에 아나운서실 간부들이 성명 내서 '(협박이 아니라) 설명하려고 한 것일 뿐이다'라고 하더군요. 늘 얼굴 보던 사이들인데, 후배들을 상대로 이렇게 하는 걸 보니 안타깝죠.

김경화: 저희는 아나운서 조합원 35명 전원이 참여하고 있어요. 전부 다 나와서…. 오히려 사장이 동력을 키워주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이광용: 똘똘 뭉치는 게 부럽네요. 저희도 새 노조 조합원 14명끼리는 끈끈해요. '카톡방' 만들어서 수다도 떨고. 열흘에 하루 정도는 '투쟁휴식일'이 있는데 아나운서 조합원들끼리 기분전환하러 갈까 하기도 하고.

김경화: 새 노조 아나운서들은 용감한 것 같아요.

이광용: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지금 구 노조는 지배구조 개선 투쟁 한답시고 '낙하산 사장, 더는 안 된다'고 하는데 정작 현재의 낙하산 사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해요. '다음 생에서 잘 하고, 이번 생은 가만히 있자'는 건데 말이 되나요?

새 노조에 가입안한 아나운서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아요. KBS 내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새 노조 아나운서들을 상대로) 어떻게 할지 잘 알기 때문에….

김경화: (끄덕끄덕)

이광용: 근데, 점점 건너기 힘든 강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간부들을 제외하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과 저희들 사이에. 사실 2010년 파업 때도 밖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인지 오히려 안에 있는 분들이 저희를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게 좀 있었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간극이 커질까봐, 염려돼요.

#3. G20 경제효과를 읊어야 했던 참담한 기억

지난 4년, 불공정보도를 강요당했던 것은 기자나 PD 뿐만이 아니었다.

▲ 이광용 KBS 아나운서

이광용: 작년에 G20 특집으로 KBS가 도배했던 거 기억하세요? 그때 저도 친한 PD에게 부탁받아서 G20 특집다큐 내레이션을 했었지요.

G20 회의는 특별한 게 아니라 20개 나라가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정기적 회의인 거잖아요? 그런데 '경제효과 수십조 원'이라는 과장된 문구를 읽자니, 짜증이 확 몰려왔죠. 최대한 문구를 바꿔보기도 했는데, 정말 두고두고 참담…하더라구요.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죠.

김경화: 저도 G20 홍보 프로그램 내레이션 많이 했었어야 했어요. 회사 내 행사 사회도 보고….

이광용: 2003년에 입사했는데 지난 4년만큼 KBS 내에서 참담한 일이 끝도 없이 벌어진 적이 없었어요.

김경화: 영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정말 지난 몇 년 동안은 위에서 시키는 딱 그부분까지만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 것 같아요. 방송인, 언론인이 아니라 기능인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이광용: (끄덕끄덕)

#4. 이번은 다르다

장기화되고 있는 '끝장 투쟁' 파업, 그러나 낙관적 상황이라는 것이 둘의 공통된 판단이다.

김경화: 지난 4번의 파업과는 분명히 분위기가 달라요. 결과도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파업을 해도 보직부장들과 스스럼없이 지냈었는데, 이번에는 '파업 도중에 위(사무실)에 올라가지 말자'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서로 얼굴 안보겠다는 거죠.

예전에는 파업 도중에도 서로 '힘들지?'라고 이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분위기 자체가 달라요. 저는 이번 파업이 끝나면, 정말 새로운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지평선부터 새로 그어야 하는 시기가 곧 올 거예요.

이광용: 부럽네요.(웃음) 저희는 아나운서실 내부만 놓고 보면 파업 이후에 어떻게 될지 불확실성이 매우 커요. 나서서 싸우는 사람은 겨우 14명이고….

김경화: (끄덕끄덕)

이광용: 명분이 확실한 싸움이고, 반드시 이길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아나운서실 조직만 놓고 보면 걱정이 많이 되는 거죠….

김경화: 저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왜 파업하냐'고 말씀들 많이 하세요. 조중동 보시고, KBS 뉴스 보시고, 인터넷을 따로 검색해서 보진 않으니까 조근조근 설명해 드려야 하죠. 부모님 세대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네요. 바보 만드는 방송은 더 이상 하고싶지 않으니까.

이광용: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공감하실 수 있는 날이 분명히 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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