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를 '고봉순'으로 되돌리기 위해 430km의 국토대장정을 떠난 이들이 있다. KBS를 'Reset'시키겠다는 희망찬 포부가 담긴 'Reset 원정대'가 바로 그들이다.

KBS 새 노조의 '공정방송 촉구' '김인규퇴진' 총파업이 일주일째를 맞이한 13일, 'Reset 원정대'는 호남팀(해남 출발), 영남팀(부산 출발)로 나뉘어 공영방송의 염원을 꼭꼭 눌러담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3월이지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욱 힘겨운 길. 가끔은 '걷는 게 파업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기득권을 감시하기 위해 언론인이 된 우리가 어느 순간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지난날을 반성하며 땅바닥을 힘차게 내딛었다. 그동안 이 발걸음에 한번이라도 동참했던 이는 어느덧 100여 명으로 불어났다.

▲ KBS 새 노조 파업의 의미와 정당성을 알리겠다며 국토대장정에 나선 'Reset원정대'의 모습. ⓒReset원정대 트위터(@resetkbs)

해남에 도착한 첫날. 식당에서 한 주민으로부터 'KBS는 왜 파업을 이제서야 하느냐'는 핀잔을 듣고,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주변에 쌓인 거대한 모래 무덤을 보며 KBS의 '직무유기'를 반성하기도 했다. 'Reset 원정대'가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막걸리 한 상자와 김치를 들고 온 한 시민의 정성에 힘도 얻었다.

펜, 마이크, 카메라를 내려놓고 길을 떠난 지 어느덧 11일째인 23일, 'Reset 원정대' 영남팀 대장을 맡은 이경호 KBS 기자는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을 감시하겠다고 언론인이 된 우리가 어느 순간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며 걷고 있다"고 밝혔다. "왜 기자가 되고자 했던 것인지, 어느 샌가 초심을 한없이 잃어가고 있다"는 고백이, 비단 그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KBS 공채 1기 출신의 '선배'인 김인규 KBS사장에 대해서는 "(사퇴를 통해)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존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셨으면 한다" "제2의 MB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날카로운 충고도 잊지 않았다.

23일, 대전에 도착한 'Reset 원정대'는 천안, 수원 등을 거쳐 내달 3일경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체력 문제 빼고는 괜찮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걷는 게 힘들다. 또 걷다보면 국도를 걸을 때도 있는데, 위험하고 공기도 안좋아서 힘들다. 그 외에는 다들 서로 어려운 티 안내고 즐겁게 걷고 있다."

- 시간이 갈수록 피로가 쌓일 것 같은데.

"처음부터 끝까지 걷고 있는 사람은 4명이다. 해왔던 사람이 현재 4명인데 다 괜찮다. 여성조합원의 경우, 첫 날은 물집도 잡히고 무릎도 안좋고 했는데 걷다보니 익숙해지고 요령도 생겨서 지금은 괜찮다. 예전에 국토 대장정을 했던 사람들은 부산에서 서울까지 15일만에 끝냈는데, 그 일정으로 가면 힘들겠지만 우리는 초보자들이고 체력의 차이도 있고 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하지는 못한다. (힘들면) 가다가 쉬기도 한다."

- 걸으면서는 어떤 생각을 하나?

"큰 틀에서는 이번 파업이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나야 한다, 공정방송이 실현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한편으로는 '걷는 게 파업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기도 한데, 단식 삭발을 하면서 서로의 의지를 다지듯이 우리는 국토대장정을 통해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 원정대를 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출발 초기에는 시민들이 잘 몰랐는데, (호남팀과) 합류하기 위해 호남쪽으로 들어와서 올라가다 보니까 KBS 파업을 아는 분들이 계시더라. 지나가다가 '화이팅!' 외치고 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청도에서는 축산업을 하시는 분이 우리가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새 노조) 대구지부를 통해서 막걸리 한 상자와 김치를 가지고 오셨다. 길거리에서 막걸리를 맛있게 먹었고, 그날 저녁에 그 분이 운영하는 한우전문식당에 초청해 주셔서 저렴한 가격에 한우도 맛있게 먹었다.

KBS 파업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뵈면 힘을 얻는다. (파업원정대가) 전국단위언론에서 보도되는 것도 아니고, 겨우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서 알리는데 관심있는 이들은 보시는 것 같다. 아마 서울로 가까워지면 더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

"첫날,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도착해서 밥 먹고 동네 슈퍼에서 술 한잔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KBS 파업 때문에 드라마를 못본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무슨 드라마를 못보시는 것이냐'고 여쭸더니, '해품달'이라고 답하시더라.(웃음)"

- 원정을 떠난 사이, <리셋 KBS뉴스9> 첫 방송이 시작됐고, 단독 보도도 여러 건 나왔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도중 리셋 뉴스를 보았나?

"전체적인 내용을 보지는 못했다. 리셋뉴스는 그동안 우리가 KBS뉴스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으나 회사측이 받아주지 않았던 내용들이다. 간부들은 '너희들이 아이템으로 올리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만약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 MB 고향 성역화 등의 아이템을) 올렸더라면 그대로 받아주었을 것인가 되묻고 싶다.

왜 후배들이 그동안 (비판적 아이템을) 올려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왜 그런 아이템을 올릴수도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것인지,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KBS 기자가 되기 위해 면접을 봤을때, 면접관에게 말했던 초심만 지켰더라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샌가 우리는 왜 기자가 되고자 했던 것인지 초심을 한없이 잃어가고 있다. 생활인이 되어 지킬 것이 많아지니까 그것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기득권을 감시하겠다고 언론인이 된 우리가 어느 순간 스스로 기득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걷고 있다."

▲ 충남 논산시를 출발해 계룡시까지 걷는 도중 영상 제작국 조합원이 커피를 사와 기념으로 한 컷 찍은 Reset원정대 모습. 'Reset 원정대' 현수막 왼편을 잡고 있는 사람이 이경호 기자다. ⓒReset원정대 트위터(@resetkbs)

- 이번 파업에 대해 KBS사측은 '파업상황실'까지 만들어서 주도면밀하게 관리하며 "분명하게 인사ㆍ보수상 불이익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내부 동요는 없나.

"내부 동요는 없다. 오히려 참여 인원이 더 늘어나고 있다."

- 김인규 사장은 퇴진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니까 끄떡하지는 않을 것이다."

- 김인규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퇴를 통해) 후배들이 조금이라도 존경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셨으면 한다. KBS를 지키겠다고 하시는데, 왜 본인의 생각만이 KBS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본인의 생각만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쪽의 생각도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소통했으면 한다.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왜 완전히 귀를 닫아버리고 자기 측근들 이야기만 들으려고 하는 것인지…. 김인규 사장이 제2의 MB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국민을 위한 KBS'를 만들기 위해 안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KBS에 대해 실망하실지언정 부디 희망의 끈은 놓지 말아주셨으면 한다. 지금 당장 만족스럽지는 않으시더라도, 외면하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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