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공천보다 민주당 공천이 더 안 좋다’, ‘공천 문제야 말로 민주통합당의 가시다’ 민주통합당 공천과 관련해 트위터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언급들이다. 이 밖에도 ‘민주당 공천’으로 검색을 해보면 ‘재활용 공천’, ‘계파 나눠먹기’ 같은 부정적 단어들이 압도적으로 눈에 띈다.

물론,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처럼 새누리당 보다는 민주통합당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MB심판론’에 기대 큰 폭으로 앞서가는 듯 했던 총선 판세가 민주통합당 공천을 기점으로 백중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통합당의 이번 공천은 어떻게 보더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공천이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자신들에게 쏠려 있는 기대를 모를 리 없었을 민주통합당이 이렇게 실망스런 공천 결과를 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을 지낸 정해구 교수에게 현재의 상황을 물었다. 탁월한 정치학자이기도 한 정해구 교수는 민주통합당 공천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 통합민주당 18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을 지낸 성공회대 정해구 교수는 "18대 공천이 '네거티브 방식'이었다면 이번 공천은 '포지티브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 민주통합당 19대 공천에 대한 총평을 한다면

“민주통합당의 이번 공천 방식은 포지티브 공천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관계’를 잘라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고, 그 폐해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번 공천처럼 경쟁을 통해 선발하는 방식이라면, 특별한 기준이 없는 한 문제가 되는 사람이라도 배제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당과 공심위는 특별한 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 18대 공심위의 공천 방식은 달랐나?

“18대 공심위는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방식’으로 심사했다. 혐의와 상관없이 금고형 이상을 받은 자들은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일괄적으로 적용하다보니 억울한 사람이 생기기도 했지만 원칙을 지켰다. 네거티브 방식의 공천 심사는 피를 보기 때문에 시민들의 환호를 끌어내기 수월했다.

- 지난 공심위의 원칙대로라면 여론이 문제 삼고 있는 임종석, 김진표 등은 탈락했을까?

“그렇지는 않다. 당시의 기준은 금고형 이상이었고, 형을 확정 받은 이들만 탈락했다. 임종석의 경우 재판이 진행 중이고, 김진표는 형을 받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이번 공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재활용 공천’을 꼽는 사람들이 많다

“현역이 몇 퍼센트 탈락했다, 안 했다가 좋은 공천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초선이 많다고 해서 정치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계파간 나눠먹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그런데 계파 나눠먹기가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데 이유는 포지티브 방식의 공천 심사에 있다고 본다. 탈락의 기준이 없으니 탈락도 많이 안 된 것이다.”

- 지난 공심위의 ‘박재승(공심위원장) 카리스마’를 떠올리며, 이번 공천의 느슨함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학자 입장에서 지난 18대 공천 역시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다. 공천은 기본적으로 당의 위임을 받아 하는 것인데, 지난 공천의 경우 위원장이 월권을 행사한 적이 많았다. 지난 공천보단 오히려 이번 공천이 방법적으로 낫다고 생각한다. 공천에서 중요한 건 당과의 협의 체계다. 다만, 이번 공천의 경우 기준이 너무 엄격하지 않았고 엉성했다. 그러다보니 계파들이 이해관계를 반영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 정해구 교수는 18대 총선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사진은 지난 2008년 서울 여의도 통합민주당사에서 열린 공천심사위원회 회의에서 박재승(오른쪽) 위원장과 정해구 위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포지티브’냐 ‘네거티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공천 심사 과정의 부실함이 문제라는 지적으로 보인다.

“그렇다. 지금 공천 시스템은 한 달 사이에 700명 정도의 서류를 보고, 면접을 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너무 짧고 기본적으로 무리한 일정이다. 공천 신청자들에게 주어지는 면접 시간은 1인당 3분 정도인데, 이걸로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수 없으니, 늘 공천이 끝나면 ‘말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공천을 하려면 공천 심사를 최소 3개월은 해야 한다. 공심위가 서류나 면접을 찬찬히 볼 수 없을 때, 계파의 영향력이 커진다. 기준도 확실해야 한다. 애매모호한 기준일 때, 계파들의 부탁과 압력이 많아진다.”

- 지난 공심위에도 계파들의 압력이 있었나?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민간 심사위원들이 지금보단 많아서 압력 행사를 못했던 측면이 있다. (민주당 18대 공심의의 경우 민간이 7명, 현역 의원이 5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간과 현역의 비율이 7:7이고, 위원장이 캐스팅 보드를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역 의원의 비율이 높았던 탓인지 계파의 압력이 좀 작용한 것 같다.”

- 민주당 공천에서 또 다른 뒷말을 낳고 있는 것이 ‘전략 공천’의 문제다.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를 전략공천하는 사례까지 나왔는데

“현재 정치 구조에서 30% 정도는 전략공천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관행적인 일이기도 하다. 전략공천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공천이 원칙적으로 옳겠지만, 조직 동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위에서 좋은 사람을 뽑아 공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당 실세들이 이를 악용해 전략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문제다. 전략 공천은 공심위가 아니라 당에서 하는 것인데, 전략공천이 급할 때 바꿔치기로 인식되는 상황이 문제다.”.

- 그렇다면, 공천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

“공천 심사를 최소 선거 3개월 전에 해야 한다. 공천에 대한 설계는 국회의원 회기인 4년 내내 논의할 수 있는 문제다. 공천 설계도를 공정하게 만들면 공정한 공천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한다. 일부러 안 하는 것 같다. 촉박한 시간에 공천을 몰아 넣어야 계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사 기준과 과정이 엄정하면, 계파의 이해를 막아낼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공천 시스템에선 계파 이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공천 제도에 대한 연구를 해야한다.”

- 전 공심위원이자, 정치학자로서 민주통합당에 충고한다면

“사람들이 민주통합당에 호응했던 때를 보면, 시민사회에서 들어온 분들과 통합할 때였다. 그 때 왜 인기가 올랐던 것인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오고, 많이 공천받길 원한다. 이번 공천의 가장 큰 문제가 여기에 있었다.

- 새누리당의 공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새누리당은 요란스럽게 사람들을 잘라내고 있는데 민주통합당보다 더 큰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피를 보기 원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새누리당이 뭔가 더 하고 있다고 풀이되고 있다. 이게 문제다. 지금 새누리당의 공천은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기 보단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맘에 안 드는 사람 잘라내고 맘대로 하는 것이다. 당은 체계이고, 여러 사람의 다양성과 의견을 반영해 유지되는 곳인데 지금 새누리당의 모습은 바람직한 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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