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법적규제의 대상이 되는 언론보도를 일부로 제한하고, 나머지 문제들은 자율의 영역에 맡겨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공적영역과 일체 관련 없는 내밀한 사생활 보도·불법행위를 통한 취재물에 대해선 법적 조치를 취하고, 나머지 문제는 자율규제에 맡기거나 '품질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언론학회 미디어정책특별위원회는 차기정부 미디어정책 방향성을 논의하기 위해 16일 <언론자유와 규제, 자율과 타율의 조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자인 심석태 교수는 언론규제 체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언론에 대한 규제를 근본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안들은 법으로 엄격히 제재하고 그 기준을 넘어서는 영역은 법의 개입을 유보해 자율의 영역에 맡기고, 나머지는 순수한 품질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9월 언론 자율규제 강화를 위한 언론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심석태 교수는 언론을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 교수는 “모든 언론에 대한 불만을 모두 법이라는 수단으로 해결하려고 들면 원래 목적은 일부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엉뚱한 문제를 유발해 언론의 본질적 기능 자체를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아동학대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가해자 공개를 금지한 아동학대방지법 때문에 정작 아동학대 피해자 부모들의 제보로 가해자를 고발하는 보도를 했던 언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JTBC는 2019년 9월 피겨스케이팅 코치 A 씨가 초등학생 제자들을 폭행하고 욕설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JTBC는 A 씨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는데, A 씨 측은 JTBC 기자를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아동학대방지법 ‘가해자 신상공개 금지’ 조항의 위헌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심석태 교수는 공적 사안과 일체 관련 없는 내밀한 사생활에 대해선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아무리 고위공직자라도 온전한 사적 공간이나 내밀 영역에서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누리는 것 등이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 “독립된 공간 등에서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상태의 모습을 누군가 몰래 들여다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다. 의료나 통신 기록, 대외적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은 개인적인 기록물이나 자료 등을 누군가 들여다보거나 공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심석태 교수는 “휴대전화가 사생활의 자유를 위해 고도의 보호 대상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라면서 “사적 영역에서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다른 사람의 관심은 물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법적 통제로부터도 완전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심 교수는 “초상권이나 사생활 침해, 음성권 침해 등 인격권 침해를 이유로 언론보도와 표현을 제약할 때는 평균인의 입장에서 당혹감을 느낄 만한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태 교수는 일반인이라도 법을 어기는 행위를 해 처벌받는다면 ‘사생활 보호’ 영역이 아니라고 했다. 심 교수는 “법이 규정한 선을 넘는 순간 그(일반인)의 행위는 사생활을 넘어서는 공적인 행위가 된다”며 “공적인 행위라고 해서 모든 것이 보도 대상이 될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보도할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사생활이기 때문’이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심석태 교수는 일반인 사생활 보호와 관련해 규제의 폭을 좁혀야 한다고 했다. 법원은 아파트 경비원, 고속도로 요금소 직원 등 직업이 ‘사생활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심 교수는 “우연히 보호 과정에서 당사자가 특정됨으로 직업이 알려진 사건”이라면서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 직업은 비밀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인데 과하다. 언론이 안전하게 보도하려면 기자를 제외하곤 모두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는데, 이 점을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심석태 교수는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피의사실공표죄, 공적 정보공개 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은 행정적 제재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방통심의위에 대해 “언론 전반의 통합적인 자율규제가 실시된다면 방송도 보도 영역에 대해서는 방통심의위의 내용 규제를 폐지하거나 업무를 자율규제 기구에 위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방송보도가 법적 기준을 위반해 처벌받는다면 이를 방송사 평가 등에 반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심석태 교수는 언론 자율규제 기구를 통해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심 교수는 언론 현업단체가 추진하는 ‘통합형 자율규제기구’의 초안을 마련한 바 있다. 심 교수는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요 주체들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자율규제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율규제를 제대로 이행하는 언론에 대해 다른 공적규제의 중복 적용을 면제해주는 것은 자율규제기구의 운영을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통합형 자율규제기구 업무처리구조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 초안 마련 작업에 함께했던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 역시 법적제재 대신 자율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언론이 민주주의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고 있고, ‘쓰레기’로 불리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이론적·이성적 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론이 나아져야만 ‘법의 영역’을 최소한의 범위로 두자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민정 교수는 “언론계는 자정작용을 해나가겠다는 다짐이 법적제재를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 혹은 면피용 제스처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며 “자율규제에 대한 공적 지원도 필요하다. 정부가 자율규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낙원 서울여대 교수는 자율규제가 법적제재를 대체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자율규제는 법으로 강제하기 어려운 객관성·공정성·선정성·폭력성 등과 관련하여 언론 윤리규범 위반을 제재하고, 공적규제는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퍼뜨린 명백한 허위사실로 피해를 본 시민의 구제·보상을 현실화하는 것”이라면서 “역할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낙원 교수는 “논의되고 있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는 자율규제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실효적이고 강력한 자율규제 시스템이 구축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 분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약했던 제재수위에 비해 강도 높은 제재조치를 받을 경우 언론사들이 결국 법적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자율규제는 어느 정도까지 윤리적 가이드로 기능하게 될 뿐 근본적으로 공적규제를 대체할 수 없으므로 결국 효과적인 법적 장치는 정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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