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언론개혁 과정에서 언론사가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언론사가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반하는 행태를 보인다면 제재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주요 언론사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반대하기 전에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언론이 먼저 문제를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신뢰도 하락은 물론 규제 논의가 다시 촉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는 주요 신문사들의 사설

이영민 윤세영저널리즘스쿨 학생은 16일 한국언론학회 미디어정책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언론자유와 규제, 자율과 타율의 정책적 조화> 토론회에서 “언론개혁 과정에서 언론사들이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씨는 언론 신뢰도 하락과 동시에 언론지망생 수가 줄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젊은 기자들이 회의감을 느끼고 언론사를 이탈하는 것처럼, 언론지망생에게도 회의감이 퍼져있다”며 “공채 지원자 수는 줄고 있고, 필기 시험장에는 빈자리가 보이고 있다. 미래 언론인인 지망생이 떠나면 언론에 대한 희망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영민 씨는 한국언론의 디지털 전략이 개혁이 아니라 ‘클릭 수’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언론의 디지털전환 전략은 언론개혁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언론사는 온라인 팀을 만들어 실시간 이슈를 소화하고 있다. 언론이 속보 경쟁에 집중하다보면 사실확인이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씨는 “결국 언론개혁은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뉴스의 생산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언론중재법 논의는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언론사는 언론중재법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지기 전에 언론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직 기자들 역시 언론사 내부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송승환 중앙일보 기자는 “그저 언론을 혼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다수”라면서 “그런 생각이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정상이다. 그동안 이런 반응이 비이성적으로 보이게 시민을 괴롭힌 건 언론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송 기자는 “언론은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시민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송승환 기자는 “언론중재법 개정이란 징벌적 방식의 언론개혁이 힘을 얻는 이유는 언론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답답한 마음 때문”이라면서 “그런 마음을 알면서도 언론인과 인권단체가 반대하는 것은 위축 효과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송 기자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통합형 언론자율규제기구’가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면서 “결국 언론사 내부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송승환 기자는 “각 언론사 단위에서 자율규제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상급 기구를 통한 자율규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자율규제의 시작은 재교육이다. 논란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여러 언론사 담당 기자를 불러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송 기자는 신뢰도 확보를 위해 언론의 취재 과정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란은) 신뢰를 얻지 못한 언론이 자초한 바가 크다”며 “그와 별개로, 입법적 규제가 능사가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내 ‘보도 견제 시스템’”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회사마다 공정보도위원회,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같은 내부적 기구가 있다”며 “각 언론사가 내부적인 비판 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언론은 통렬한 반성을 통해 시민들이 납득하고 이해할만한 자율규제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성권 KBS 노조위원장이 지난해 8월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언론자유, 당위적인 것 아니다”

언론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선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낙원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기득권 집단으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어렵다”며 “언론이 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신뢰도가 떨어지고, 언론개혁 논의가 공적영역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사실 보도로 피해를 본 시민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하게끔 해 언론의 기본의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취지”라면서 “(언론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섞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정낙원 교수는 “자율규제만으론 목표를 완성할 수 없다”며 “현재 자율규제기구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자율규제기구는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하고, 공적 규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낙원 교수는 ‘언론자유’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언론자유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라는 목적하에서 유효하다”며 “언론사가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반하는 행태를 보인다면 제재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언론자유는 특별한 기능 수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당위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 교수는 “의료계나 검찰의 독립성·자율성은 언론만큼이나 중요하지만 개혁의 대상이 된다”며 “시민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언론이 있다면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장윤미 변호사는 “기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한 조항은 그대로 둔 채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병과하여 부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은 이중 페널티를 주는 것”이라면서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 조항을 개정하고,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는 것이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상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라면서 “실무에서 중과실은 고의에 준하는 경우로 한정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포섭되는 기사는 극히 일부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장 변호사는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을 삭제해야 한다고 했다.

16일 열린 <언론자유와 규제, 자율과 타율의 정책적 조화> 토론회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 화면 갈무리)

통합형 자율규제기구 초안 작업에 참여했던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국제기구와 인권위원회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권력 감시기능을 수행하는 언론보도를 국가 권력이 평가하고 규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언론 위축을 초래한다”며 “자율규제 강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일단 그런 시도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방관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율규제가 잘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태 교수는 “자율규제 관련 논의 과정에서 일부 학자나 언론인, 시민단체 등은 ‘언론에 대한 자율규제가 가능하겠느냐’는 등의 회의적 발언을 적지 않게 했다”면서 “자율규제가 잘 안되니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규제를 폄하하기보다, 자율규제가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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