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권진경] 지난 4일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총연출자로 주목 받은 장예모 감독의 신작 <원 세컨드>(2020)는 각자의 이유로 필름을 사수 혹은 빼앗고자 하는 중년 남성과 여성 청소년의 실랑이를 다룬 로드무비다.

중국 거장의 '시네마천국'으로 알려진 <원 세컨드>는 문화대혁명 당시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을 고스란히 전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당시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영화는 중국 공산당의 활약상을 다룬 전쟁물이 대다수였고, 상영 전 과거 '대한뉴스'와 같은 국정홍보물 '중화뉴스'를 의무 관람해야 했다.

영화 <원 세컨드> 스틸 이미지

영화 관람 기회가 극도로 적었기에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날은 그야말로 동네잔치 분위기였다. 지금이야 언제 어디에서든 편하게 영상물을 볼 수 있고 영화 외에도 즐길거리가 수두룩하지만, 그 당시에는 영화만 한 오락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영화 그 자체에 매료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19 장기화로 극장가의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극장을 가득 메운 <원 세컨드> 속 군중은 극장 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는 <원 세컨드>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비단 영화 속 상영 작품이 중국 공산당의 활약상을 다룬 <영웅아녀>(1964)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201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지만 갑자기 출품이 취소된 이력이 있는 <원 세컨드>는 현 중국 정부는 물론 전 세계 영화 관객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태도가 역력하다.

영화 <원 세컨드> 스틸 이미지

그래서 영화는 코미디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화뉴스에 등장했다는 딸을 보기 위해 필름을 사수하고픈 탈옥수와, 시력이 좋지 않은 동생을 위한 전등갓을 만들기 위해 필름을 훔치고픈 소녀의 애틋한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이렇게 필름을 둘러싸고 두 주인공이 좌충우돌 쟁탈전을 벌이는 사이, 극장으로 활용되는 마을회관에서는 손상된 필름을 복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국 인민들의 분투가 펼쳐진다.

중화뉴스에 단 1초 등장하는 딸을 보기 위해 강제노동수용소를 탈옥한 장주성(장역 분)은 패싸움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고 가족들과 생이별했다고 한다. 그것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주성의 과거의 전부다. 그러나 그저 조용히 뉴스필름 속 딸을 보고 싶었을 뿐인 장주성의 꿈은 역시나 가족을 위해 필름이 필요했던 류가녀(류 하오춘 분)에 의해 깊은 소용돌이에 빠진다.

영화 <원 세컨드> 스틸 이미지

그토록 보고싶던 딸의 얼굴을 스크린에서나마 볼 수 있었지만 그 대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장주성을 통해 장예모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보고 싶은 한 장면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주인공이 완벽한 비극을 맞는 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재의 중국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원 세컨드>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해 세상에 공개한 장예모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동시에 장예모의 또 하나의 최고작이 될 수 있었지만 애매모호한 범작으로 남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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