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법원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지상파 3사로 낸 양자 TV토론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대선을 40여일 앞두고 공영방송 등 지상파에서 열리는 첫 TV토론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안철수 후보가 토론에서 배제되면 선거과정에서 불리함을 겪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다자 TV토론 진행 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토론에 참여하지 않아 토론회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상파 3사 주장에 대해 "윤석열을 제외한 나머지 대선후보들 상호간 토론회를 진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자 토론을 거부한 국민의힘은 법원 판결 이후 다자 토론 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14일 정의당 대표단과 의원단이 개최한 '기득권 양당의 양자 TV토론 합의 규탄' 기자회견(아래)과 20일 국민의당 당원들이 개최한 '기득권 야합 불공정 TV토론 규탄대회' (사진=정의당, 연합뉴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박병태 부장판사)는 26일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2022 대선후보 양자토론' 개최는 재량권을 벗어난 행위라고 판결했다. 언론기관이 주관하는 토론회는 공직선거법상 방송토론회와는 달리 횟수, 형식, 내용구성, 대상자 선정 등에 있어 규정된 바가 없다. 하지만 방송토론회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언론기관이 주관 토론회라고 해도 대상자 선정에 있어 재량권의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게 서부지법 판단이다.

서부지법은 공직선거법상 TV토론 참가자격에 비춰 안철수 후보의 참가자격을 인정했다. 공직선거법상 TV토론 참가자격은 ▲국회 의석수 5석 이상 정당의 후보 ▲직전 대선 3% 이상 득표 ▲ 이전 총선 또는 지방선거 비례대표 선거에서 3% 이상 받은 정당의 후보 ▲선거 운동기간 시작 전 한 달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5% 이상 등이다.

서부지법은 "국민의당은 직전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서 6.97%를 득표한 정당으로 안철수는 법정토론회 초청 대상에 포함된다"며 "더욱이 안철수는 선거기간 개시일전 30일부터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이 13.175%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되는 후보자임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서부지법은 "이 사건 토론회는 우리나라의 국가기간방송, 공영방송을 포함한 모든 지상파가 공동해 주관하는데다 방송일자는 대선일로부터 불과 4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며 "대선후보 상호간에 열리는 첫 방송토론회로 국민적 관심도가 매우 높고, 방송일자가 최대 명절인 설연휴 기간인 점 등에 비춰보면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된다"고 했다.

특히 서부지법은 이번 TV토론에 안철수 후보 등을 포함시킬 경우 윤석열 후보가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토론회가 무산될 수 있다는 지상파 3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부지법은 "지상파의 선거방송준칙에는 '후보자가 토론 방송에 출연하지 않을 경우 출연에 응한 후보자들만으로 토론방송을 실시할 수 있다'는 취지의 규정이 존재한다"며 "윤석열을 제외한 나머지 대선후보들 상호간 토론회를 진행할 수도 있는 점, 나머지 대선후보들이 제시하는 정책 등에 대한 토론도 유권자의 알권리에 해당하는 점 등에 비춰보면 지상파 3사의 이 부분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법원 판결 직후 민주당 선대위 방송토론콘텐츠단은 "이재명 후보는 이미 다자 토론의 성사와 참여 입장을 밝혔다. 법원의 판단이 나온만큼 지상파의 다자 토론 주관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은 다자 토론도 관계없다"며 "여야 협상을 개시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지지율 10% 이상 후보만 초청하겠다는 KBS·MBC '빅3' 대선 후보 토론회가 법원 결정으로 무산된 선례가 있음에도 양자 토론을 고집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TV토론을 거부하고, "어이가 없다. 같잖다"는 막말까지 내뱉었던 윤석열 후보는 지난 6일에 이르러서야 법정토론 이외의 토론을 하겠다고 입장을 뒤바꿨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정작 방송사로부터 4자 토론 요청이 쇄도하자 '당대당' 협상을 주장했다. 결국 거대 양당이 양자 TV토론에 합의하면서 지상파 3사가 이에 따르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등 양당 TV토론 협상단이 19일 국회 성일종 의원실에서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의 TV토론 날짜 등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국민의힘은 설 연휴 전 양자 TV토론이라는 양당 합의내용을 파기하는 등 방송일자를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지상파 3사는 양당 합의에 따라 27일을 제안했지만 국민의힘 반대로 다시 양당 협상이 이어졌다. 양당은 양자 TV토론 날짜를 설 연휴 기간인 31일(1안) 또는 30일(2안)으로 정했다.

국민의힘은 다자 토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과 협상을 진행한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후보 몸이 10개가 아니지 않나. 선관위가 주재하는 법정토론 3회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잇단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에도 국민의힘은 양자 토론을 고수했다.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지난 23일 "공중파(지상파) 방송이 설 연휴 편성에 어려움이 있다면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지상파3사 주관 양자 TV토론에 대해 법원이 방송금지를 결정하더라도 종편을 통해 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서부지법 판결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거대양당의 사과를 촉구하고 4자 TV토론을 즉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안철수 후보는 "한마디로 사필귀정이다. 기득권 두 당이 힘으로 깔아 뭉개려던 공정과 상식을 법원 판결로 지켜내게 됐다"며 "두 당의 후보만 토론하겠다는 기득권 양당의 담합과 불공정, 비상식에 국민적 일침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정의당 이동영 수석대변인은 "양당의 전파 독점, 방송의 독립성 훼손, 민주주의 파괴,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불공정 양자토론은 방송이 불가하다는 재판부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양당 후보가 당당하다면 설 연휴 전에 국민의 요구대로 다자 토론의 링에서 만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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